[오후 3시의 헌책방] 한겨울의 벽돌책 독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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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정보기술(IT) 회사에서 몇 년 근무했던 경험이 의외로 헌책방 일에 유용하게 쓰인다.
책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벽돌책은 존재 자체가 의문일 수 있다.
춥거나 날씨가 고약한 지역일수록 벽돌책의 인기가 높다는 말이 있다.
벽돌책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문호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가 모두 러시아 작가인 것만 봐도 일리 있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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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정보기술(IT) 회사에서 몇 년 근무했던 경험이 의외로 헌책방 일에 유용하게 쓰인다. 판매 중인 책을 전부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해 놓고 나중에 컴퓨터로 매출 분석을 해보면 때때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는데 이게 내겐 하나의 놀이처럼 즐겁다.
헌책방은 책을 파는 곳이지만, 책이라고 다 같은 책이 아니다. 시, 에세이, 소설, 철학, 자서전, 자연과학, 종교 등 내용에 따라 책을 분류하여 다루는 게 책방 일의 기본이다. 분기별로 이 책들의 판매 기록을 컴퓨터로 분석해보면 앞으로 가게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힌트를 얻게 된다. 지금처럼 추운 겨울은 아무래도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기에 책 매출도 다른 계절에 비하면 조금 는다. 많은 사람이 보통은 봄, 가을처럼 날씨가 좋을 때 책이 많이 팔릴 거로 생각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날씨가 좋으면 야외 활동이 많아지니까 오히려 독서율은 떨어진다.
계절별로 어떤 책이 잘 팔리는지 살펴보면, 봄과 가을엔 역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류의 판매량이 많다. 여름은 추리소설, 스릴러물, 하드보일드 문학처럼 시원시원한 작품이 인기를 끈다. 겨울은 다양한 책이 잘 팔리는 계절인데, 특이한 점이라면 이른바 ‘벽돌책’이라 불리는 책을 찾는 손님이 제법 있다는 거다.
벽돌책은 말 그대로 책이 두껍고 무거워 마치 벽돌 같다고 하여 붙은 별명이다. 책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벽돌책은 존재 자체가 의문일 수 있다. 도대체 저런 두껍고 무거운 책을 누가 찾는 걸까? 하지만 벽돌책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기였다.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도 벽돌책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춥거나 날씨가 고약한 지역일수록 벽돌책의 인기가 높다는 말이 있다. 혹독한 날씨는 사람에게 신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안겨주고 생각이 많아지게 만든다. 벽돌책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문호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가 모두 러시아 작가인 것만 봐도 일리 있는 얘기다.
실은 얼마 전에도 어떤 손님에게 제임스 조이스의 벽돌책 ‘율리시스’를 팔았다. 번역서 기준으로 1000쪽을 훌쩍 넘기는 이 방대한 소설은 겨울이 아니라면 판매가 거의 안 된다. 어디 그뿐이랴. 마르셀 프루스트 필생의 역작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추운 날씨에 방 안에 틀어박혀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좀 더 도전정신이 있는 독자라면 로베르트 무질이 쓴 미완의 대작 ‘특성 없는 남자’, 토마스 만 ‘마의 산’, 로베르토 볼라뇨 ‘2666’, 허먼 멜빌 ‘모비 딕’,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등도 이 계절에 노려볼 만한 벽돌책 목록이다.
책은 도전하는 자에게 늘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 보여주는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다. 그리고 겨울은 부담스럽게 여겼던 벽돌책을 집어들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아니겠는가. 사는 게 그렇듯 책도 겁부터 먹지 말고 일단 펼쳐보면 별 것 아닐 때가 많다. 오늘 밤 잠들기 전, 이불 속에서 스마트폰은 잠시 내려놓고 벽돌책 독파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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