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결승골' 클린스만호, 호주에 극적인 역전승
[박시인 기자]
▲ 2일(현지시간) 카타르 알와크라 알자누브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전 한국과 호주의 경기. 손흥민이 연장 전반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202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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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3일 밤 12시 30분(한국 시각) 카타르 알와크라의 알자누브 스타디움에서 열린 호주와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전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120분 접전 끝에 2대 1로 승리했다.
이로써 극적으로 8강 벽을 통과한 한국은 오는 7일 요르단과 4강전에서 격돌한다.
전반전: 점유율 우세에도 슈팅 0개
한국은 4-4-2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손흥민-조규성이 최전방에 위치하고, 황희찬-황인범-박용우-이강인이 미드필드에 포진했다. 포백은 설영우-김영권-김민재-김태환, 골문은 조현우가 지켰다.
호주는 기존과 동일한 4-3-3을 내세웠다. 부상에서 돌아온 듀크가 전방에 서고, 좌우에 굿윈과 보일이 출전했다.
한국은 경기 초반 미드필드를 장악하며 점유율을 확보했다. 좌우 풀백을 최대한 터치 라인으로 붙이며 전진시키고, 중앙 미드필더 박용우가 센터백 2명 사이 공간까지 내려와 빌드업에 관여했다. 후방에서 3명의 라인을 형성해 원활한 빌드업을 위한 라볼피아나 전형을 구사했다.
김영권의 세련된 전진패스, 김민재의 전진 드리블도 활기를 띠었다. 호주 수비 라인이 높게 형성되면 뒷공간으로 롱패스를 찔러놓고, 공격수들이 빠르게 침투하는 상황을 자주 연출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드필드 지역에서의 숫자 부족과 넓은 공수 간격으로 마무리 슈팅 기회까지 엮어내지 못했다. 발이 느린 조규성에게 수비 뒷공간 침투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과 다름없었다. 뿐만 아니라 수타와의 제공권 싸움에서도 크게 열세였다.
첫 슈팅은 전반 17분 멧커프의 왼발 중거리 슛이었다. 골문 오른편으로 크게 빗나갔다. 18분에는 박스 안에서 굿윈의 슈팅이 조현우 골키퍼 선방으로 공이 흘렀다. 리바운드된 공을 멧커프가 슈팅했지만 빗맞으며 득점이 무산됐다.
하지만 전반 중반 이후 미드필드 공간이 텅텅 비면서 조금씩 호주 흐름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전반 42분 황인범의 횡패스 미스가 발단이었다. 이후 앳킨슨의 크로스를 굿윈이 왼발 발리슛으로 골망을 갈랐다.
한국은 전반 45분 동안 70%의 점유율에도 슈팅 0개에 그치며 0대 1로 뒤진 채 전반전을 마감했다.
후반전: 손흥민,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PK 유도... 황희찬 동점골
한국은 선수 교체 없이 후반을 스타트했다. 후반 초반 적극적으로 라인을 올리고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한국의 첫 슈팅은 후반 3분 이강인의 왼발에서 나왔다. 위력 없이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한국은 후반 8분 실점이나 다름 없는 위기 상황을 맞았다. 보일의 프리 헤더와 리바운드 슈팅을 모두 조현우 골키퍼가 슈퍼 세이브로 실점을 모면했다. 이어 흘러나온 공을 듀크가 발리슛을 날렸지만 골문을 벗어났다.
호주는 라인을 내리고 극단적으로 수비에 올인했다. 한국은 지속적으로 좌우에서 측면 크로스로 몰아쳤으나 피지컬이 좋은 호주 수비진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25분 조규성 대신 이재성을 넣으며 4-2-3-1로 바꿨다. 황희찬을 원톱, 손흥민-이재성-이강인이 2선에 포진하는 형태였다.
호주도 바쿠스, 멧커프, 앳킨슨, 보스 대신 오닐, 맥그리, 밀러, 보스를 넣으며 체력을 안배했다. 후반 28분 롱스로인 상황에서 듀크의 헤더가 조현우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한국은 후반 33분 황인범을 불러들이고, 홍현석을 넣으며 변화를 꾀했다. 곧바로 2선에서 이강인의 절묘한 칩패스로 이재성이 골키퍼와 맞섰지만 볼 터치 미스로 슈팅까지 가져가는 데 실패했다.
한국은 미드필드 지역에서의 소유권 상실로 역습을 허용했다. 후반 38분 보스의 크로스를 듀크가 머리로 돌려놓은 공이 골문을 살짝 벗났다.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40분 오른쪽 풀백 김태환 대신 윙어 양현준을 넣으며 마지막 도박을 감행했다. 반면 아놀드 감독은 센터백 버지스를 넣으며 수비 숫자를 늘렸다.
후반 추가 시간은 7분이 주어졌고, 한국은 포기하지 않은 채 끝까지 호주 수비를 두들겼다. 해결사는 역시 캡틴 손흥민이었다. 후반 48분 박스 안에서 여러 명 사이를 돌파한 뒤 마지막 밀러의 태클에 걸려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후반 51분 키커로 나선 황희찬이 골문 왼편으로 성공시키며 연장전으로 몰고 갔다.
연장전: 손흥민, 환상적인 역전 프리킥 결승골
연장전에는 손흥민이 오른쪽, 이강인이 왼쪽으로 자리를 바꿔 플레이했다. 후반까지 졸전이었던 경기력이 연장전에서야 살아나기 시작했다.
연장 전반 4분 오른쪽에서 양현준이 돌파에 이은 크로스를 보냈고, 황희찬이 절묘하게 오른발 슈팅으로 돌려놨지만 라이언 골키퍼 선방에 걸렸다. 6분에는 손흥민이 내주고 이재성의 왼발 중거리 슈팅이 골문 오른편으로 빗나갔다.
연장전에서도 손흥민의 존재감은 빛났다. 연장 전반 14분 페널티 박스 왼쪽 모서리 지점에서 손흥민이 수비벽을 살짝 넘기는 오른발 프리킥으로 골망을 갈랐다.
호주는 평정심을 잃은 나머지 자멸했다. 교체 투입된 에이든 오닐이 연장 전반 19분 황희찬에게 거친 태클을 범해 퇴장을 당했다.
연장 후반 시작하자마자 클린스만 감독은 부상을 당한 황희찬 대신 오현규를, 박용우 대신 박진섭을 투입해 마지막 정비에 나섰다.
공격 일변도로 나선 호주는 수비진에 공간이 크게 생겼다. 연장 후반 7분 역습 기회에서 손흥민의 슈팅이 골문 왼쪽으로 벗어났다. 연장 후반 14분 이강인, 양현준의 연속 슈팅이 전부 라이언 골키퍼에게 막혔다. 마지막 정승현을 넣고, 수비수 한 명을 늘린 한국은 120분의 치열한 승부를 마무리했다.
9년 전 호주전 패배 설욕
한국은 지난 2015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호주와 연장 접전 끝에 1대 2로 패하며 준우승에 그친 아픈 기억이 있다. 이번 호주와의 맞대결은 9년전 패배를 되갚음하기 위한 복수전 성격을 띠었다.
한국은 지난달 31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전에서 1대 1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올랐다. 패배 직전에 몰린 극한 상황을 딛고 일궈낸 승리였지만 120분을 뛴 탓에 체력 소모가 극심했던 경기였다.
16강전 종료 후 단 2일의 휴식만을 취하고 호주전에 나서야 하는 것은 악재였다. 이에 반해 한국보다 2일을 더 쉰 호주는 체력적에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었다. 앞선 4경기에서 1실점만 내준 강인한 수비와 피지컬의 우위를 앞세운 강호라는 점에서 한국에겐 중요한 고비였다.
이날 호주전에서는 플랜A인 4-4-2를 다시 가동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전에서 모험수였던 스리백 카드를 버리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박용우가 선발로 다시 복귀해 황인범과 중원에서 호흡을 맞췄다. 앞선 2경기에서 후반 조커로 좋은 활약을 보인 황희찬은 처음으로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다시 기적의 드라마가 씌여졌다. 예상대로 쉽지 않은 흐름으로 전개됐다. 한국은 경기 내내 호주의 밀집 수비를 상대로 효과적으로 기회를 창출하지 못했다. 선제 실점으로 리드를 당한 상황에 직면한 것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전과 비슷한 시나리오로 흘러갔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컵에서 기대만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손흥민이 위기 순간 영웅으로 등장했다. 후반 추가 시간 환상적인 드리블 돌파로 페널티킥을 얻어내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연장전에서는 그림 같은 프리킥 역전골로 호주를 침몰시켰다.
손흥민은 9년 전 2015년 호주 아시안컵에서 눈물을 흘렸다. 당시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한국이 0대 1로 지고 있던 후반 추가 시간 3분 기적 같은 동점골을 터트린 바 있다. 그러나 연장전에서 호주에 1골을 내주며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9년 전 당한 패배의 아픔을 자신의 힘으로 되갚았다. 이날 호주전을 뛴 손흥민은 한국 선수 아시안컵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다.
2023 AFC 아시안컵 8강전
(알자누브 스타디움, 카타르 알와크라 - 2024년 2월 3일)
한국 2 - 황희찬(PK) 96+' 손흥민 104'
호주 1 - 굿윈(도움:앳킨슨) 42'
퇴장 : 오닐 109+'
선수 명단
한국 4-4-2 : GK 조현우 - 김태환(85'양현준), 김민재, 김영권, 설영우 - 이강인(121+'정승현), 황인범(77'홍현석), 박용우(106'박진섭), 황희찬(106'오현규) - 조규성(70'이재성), 손흥민
호주 4-3-3 : GK 라이언 - 앳킨슨(73'밀러), 수타, 롤스, 베히치 - 바쿠스(70'오닐) - 멧커프(70'맥그리), 어바인 - 보일(87'버지스), 듀크(92'포르나롤리), 굿윈(73'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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