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속 ‘코리안 팀 켈러’ 다음세대에 복음의 꽃을 피우다
류인현 뉴프론티어교회 목사의 ‘행복한 목회’
세계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불리는 미국 뉴욕은 인종뿐 아니라 ‘종교의 용광로’이기도 하다. 미국 공공종교연구소(PRRI)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뉴욕 자치구 중 3곳인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는 미국에서 가장 종교적으로 다원화된 지역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정 종교에 적을 두지 않는 ‘넌스(Nones)’ 비율도 높다. 고층 빌딩과 각종 문화시설이 즐비한 맨해튼이 특히 그렇다. PRRI 2016년 조사에서 맨해튼 주민 10명 중 4명(38%)은 종교가 없다고 응답했다. 뉴욕 전체(25%)보다 높은 수치다.
류인현(51) 뉴프론티어교회 목사는 인종도 종교도 다양한 이곳 맨해튼에서 2030세대 한인을 중심으로 2007년부터 17년간 목회 중이다. 뉴저지초대교회의 ‘맨하탄젊은이예배’로 출발한 교회는 찾는 이들이 늘면서 3년 만에 분립했다. 20여명의 청년으로 시작한 교회는 1000명 가까이 모이는 신앙공동체로 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학생이 줄면서 현재 교인 수는 800여명 정도다.
교인 수보다 주목할 만한 건 원래 신앙이 없던 이들이 회심(回心)해 기독교를 받아들인 경우가 적잖다는 것이다. 맨해튼 한가운데서 금융·예술계 등에 몸담은 한인에게 개혁주의 신앙을 변증하는 류 목사가 ‘코리안 팀 켈러’로 불리는 이유다. 예수의 구속사에 초점을 맞추는 ‘그리스도 중심 설교’를 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팀 켈러(1950~2023) 뉴욕 리디머교회 설립목사는 ‘가장 세속적 도시에서 복음을 전한 21세기 CS 루이스’란 수식어로 유명하다. 저서 ‘춤추는 고래는 행복하다’(두란노) 출간 차 방한한 류 목사를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났다.
‘춤추는~’은 류 목사의 두 번째 저서로 지난해 11월 출간해 한 달 만에 3쇄를 찍었다. 10년 전 펴낸 첫 책 ‘거북이는 느려도 행복하다’(두란노)에 이어 이번에도 현대인의 행복을 주제로 다뤘다. 전작이 ‘속도와 경쟁을 우선하는 토끼 대신 자신의 색깔로 꾸준히 완주한 거북이’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찾았다면 이번 책은 혹등고래의 특성에서 깨달음을 도출했다. 주변 생물을 즐겨 돕는 혹등고래처럼 정의와 평화를 추구한 예수의 이타적 삶을 닮아가자는 게 요지다.
“두 책 모두 제목에 동물이 들어가다 보니 다들 ‘바다 생물에 관심이 많으냐’고 묻더라고요. 하하. 공교롭게도 동물에게 통찰력을 얻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현대인이라면 많든 적든 누구나 품고 있는 불안과 조급함이 있거든요. 기독교인이 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이야기하고자 삶의 속도와 행복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행복은 거대한 부와 화려한 경력으로 대표되는 세간의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류 목사는 책에서 “자족의 마음이 있으면 삶의 과정에서 행복을 충분히 잘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진학과 진로가 막히고 취업과 사업이 불분명해지는 건 하나님이 참신하게 내 인생을 인도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우회하는 삶이 인생의 묘미요 재미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건 언제나 나를 성장시키고 성장은 내게 행복을 준다”고 적었다.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듯한 행복론임에도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건 류 목사가 실제 이런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골 개척교회 목사인 아버지를 보며 목회자의 꿈을 키웠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경남 창원의 50㎡(15평) 규모 상가 지하에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교회 인근 무덤가에 초가집을 얻어 온 가족이 지냈는데 지붕엔 쥐가 들끓었지요. 아버지는 매일 아침 가정예배를 인도했는데 자주 우셨습니다.”
류 목사 아버지가 눈물을 흘린 건 목회가 힘들고 가난한 삶이 버거워서가 아니었다. ‘하나님,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같은 사람을 목회자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로 기도하던 그의 아버지가 되뇌던 기도다. 류 목사는 이 기도를 들으며 ‘행복은 조건에 달린 게 아니구나. 그리스도 안에는 세상이 헤아릴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이 있다는 게 정말이구나’란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당시 그가 가장 좋아했던 찬송은 ‘내 영혼이 은총 입어’(438장)였다. 초가집에 살던 터라 ‘초막이나 궁궐이나/내 주 예수 모신 곳이/그 어디나 하늘나라’란 가사가 특별히 와닿아서다.
전쟁고아였던 그의 부친은 술과 도박으로 청춘기를 보내다 어머니를 만나 예수를 영접했다. 구원의 은혜에 감격해 2~3년간 기차를 타고 전국을 돌며 복음을 전할 정도로 뜨거운 신앙의 소유자였다. 구령(救靈) 열정으로 뒤늦게 신학교에 진학, 전 재산을 교회 건축에 헌납하기도 했다. 모든 소유를 헌금하는 남편을 보며 어머니는 “참 잘했다”며 격려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 부부는 거제도를 거쳐 창원에 정착해 어려운 형편에도 교회를 섬겼다.
부모에게 신앙의 가치를 배운 2남 1녀 자녀들은 이웃 전도에 적극 나서는 한편 공부에도 최선을 다했다. 첫째는 연세대 철학과, 둘째는 서울대 독어교육과에 진학 후 신학대학원을 거쳐 목사가 됐다. 두 아들이 목회자가 되게 해 달라는 아버지의 기도가 이뤄진 셈이다. 둘째인 류 목사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설교 원고에서 ‘십자가’란 단어만 봐도 눈물짓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예배 후 축도 때도 항상 눈물을 흘리셨어요. 평생 주님의 은혜에 감격한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뉴프론티어교회의 비전은 ‘다음세대를 세우는 교회’다. 최근 교회는 가정을 꾸린 3040세대를 위한 ‘뉴저지 캠퍼스’를 세웠다. 부모와 자녀가 매달 한 번씩 신앙공동체에서 함께 예배하고 식사하며 신앙적 교류를 나누는 게 특색이다. ‘교육은 관계 내에서 이뤄진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됐다.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부모·이웃 간의 관계에서도 신앙을 배울 수 있다”며 “이들 관계에서 긍정적 경험을 하면 훗날 독립해서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유학생 등 외지인이 많은 한인교회 특성상 교회는 가족 같은 공동체를 지향한다. 집밥이 그리울 이들을 위해 장로들은 손수 집밥을 짓는다. 류 목사 역시 차량을 운행하며 이들의 기사를 자임한다. 장년 세대와 허물없이 지내는 청년들은 교회를 아예 ‘세컨드 홈’이라고 부른다. 곁에 가족이 없어 힘들 때 ‘또 하나의 가족’이 돼 준 교회를 향한 찬사다.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청년들은 소속감을 갈구한다”며 “이들에게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곳’이자 ‘내가 몸담고 싶은 곳’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세대에 만연한 무종교 세태를 극복하는 데 있어 초대교회가 추구했던 환대가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봤다.
교회는 뉴욕에서 살다 한국에 정착한 교포와 유학생을 위한 ‘서울 캠퍼스’를 준비 중이다. 류 목사는 “이민 목회를 하며 한국으로 돌아온 한인 디아스포라를 품어줄 고국 공동체의 필요성을 체감했다”며 “타문화 경험이 많은 이들로 구성된 교회 공동체가 탄생하면 점차 이민자가 느는 한국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한국교회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처럼 행복한 목회를 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려움이 많더라도 주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를 보며 어떤 상황에도 행복할 수 있는 게 목사’임을 깨달았다는 그의 소회가 실감 나는 당부였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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