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풍경이 겹겹이 펼쳐지는 아만 르 멜레징 #호텔미감
마중 나온 운전 기사의 차에 오르자마자 구불구불한 산길이 시작한다. 날렵하게 좁은 도로를 오르는 솜씨, 높이 오를수록 멀리 알프스 풍경이 겹겹이 펼쳐진다. 프랑스 남동부 타렌타이즈(Tarentaise) 계곡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스키지역 레 트루아 발레(Les Trois Valle′es).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역인 쿠흐슈벨(Courchevel) 1850에 도착했다. 해발 1850m에 자리 잡은 것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알프스의 대표 겨울 휴양지다.
유럽의 로열 패밀리와 부유층, 많은 배우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과거 다이애나 왕세자 빈과 오드리 헵번의 파파라치 사진 속에, 그레이스 켈리가 아이들과 겨울 한때를 보대던 흑백사진 속에 빈번히 등장했던 배경이 쿠흐슈벨이다. 산과 눈만이 가득 쌓인 산꼭대기에 샤넬과 디올, 보테가 베네타 같은 부티크 매장이 즐비하다.
아만 르 멜레징 입구에 도착하니 컨시어지와 지배인이 인사를 건넨다. 〈007〉 시리즈에 나올 법한 건물. 자작나무와 녹색 벨벳 가구들,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목재 내음. 얼어붙은 손과 발을 녹이려는 스키어 몇 명이 라운지에서 위스키를 마신다. 묵직한 키를 열어 룸에 들어섰다. 침실과 워크인 클로짓, 욕실이 분리된 넓은 방 역시 오크 가구와 패널로 인해 은은한 나무 향이 풍긴다. 발코니로 나가니 거대한 설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로 어제 봄 같던 파리에서 신비로운 겨울 은신처로 진입한 느낌이다.
이렇게 도시를 벗어나는 것도 좋겠다. 가장 험하고 고립된 지역으로 들어와 스키를 타며 보내는 긴긴 겨울. 한동안 스키어들의 움직임을, 아니면 웅장한 설산만 봐도 좋을 것이다. 요리를 음미하거나 모닥불 옆에 앉아 글을 써도 괜찮겠다. 해가 저물자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엄청난 눈발이 불안하지만, 그 팽팽한 고립감이 다른 한편으론 즐겁게 느껴진다.
새벽에 쌓인 눈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고립인가 싶었는데, 동틀 무렵부터 제설차가 끝없이 오가고 스키 슬로프를 평평하게 다지는 작업이 끝나자 다시 스키어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에게 폭설은 일상이었고, 오랫동안 겨울을 다루는 데 도가 튼 사람들이었다.
아침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 아찔한 슬로프와 단정하게 치솟은 침엽수를 바라봤다. 끝없이 눈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는 스키어들의 움직임은 이 계절만 기다린 듯 리드미컬했다. 버석버석 눈을 밟고 들어와 요가와 수영, 사우나로 몸을 데웠다. 안과 밖, 어디서나 하얀 눈과 나무가 전부인 이곳의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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