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품평은 NO! 모녀지간을 갈라놓는 구시대적 발언

2024. 2.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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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 생각해왔던 모든 것에 의문을 던진다.
「 엄마, 이제 그런 말씀은 마세요 」
당신이 딸이라면, TV 속 연예인들의 외모를 품평하고, 살을 빼라 독촉하고, 그런 옷은 입지 말라는 엄마의 호된 질책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엄마도 아실 때가 됐다. 엄마, 지금은 2024년이잖아요.

엄마에게 절친의 예비 신랑이 별로 잘생기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가 된통 털린 일이 있다. “남자 외모가 뭐가 중요해? 능력이 중요하지!” 엄마의 목소리 볼륨이 한껏 높아졌다. 일상적으로 나와 언니에게 TV 속 연예인들, 이웃과 사촌,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외모 품평을 해대던 엄마를 떠올려봤다. 사실 엄마의 날카로운 평가는 여자에만 해당됐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여자의 외모에 엄격한 엄마는 남자 외모에는 한없이 너그러운 구석이 있었다. ‘여자는 외모, 남자는 능력’이라는 구시대적 발상을 떨치지 못한 것이겠지. 내가 어릴 때부터 살이 찌는 걸 경계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20대 후반이 된 지금, 엄마는 여전히 내게 ‘여자치고’ 키가 너무 커 보인다는 이유로 부해 보이는 옷이나 머리를 높게 올려 묶는 스타일을 지적한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추구미’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대외적으로는 깨어 있는 척 떠들지만 실은 누구보다 코르셋을 꽉 조이고 사는 여성이 돼 있었다.

우리 집만의 일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 친구 M은 1학년 당시 엄마가 밤마다 빨래집게로 코를 집는다고 했다. 콧볼이 넓고 콧대가 낮아서다. 중학교 때는 엄마가 말하는 ‘체모가 적은 여성’이 되기 위해 2차 성징 후부터 몸에 나는 털들을 족집게로 뽑아야만 했던 친구도 있었다. 중학생 동창 J는 진한 색조 메이크업을 즐긴다. 짙은 화장을 말리고 싶은 J의 엄마는 늘 “남자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해”라는 말로 당신의 생각을 관철하곤 했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엄마로부터 성형수술을 종용받는 친구도 있다. 쌍꺼풀이 있으면 인기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게 친구 엄마의 주장이었다. TV 속 여자 연예인들의 외모를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는 캐스터 마냥 깎아내리는 엄마도 있었다. “살이 엄청 쪘네", "너무 말랐네”부터 “성형을 너무 많이 했네”, “시술을 좀 받지”에 이르기까지.

‘결혼’이라는 난제로 관계가 틀어진 모녀의 이야기는 TV 밖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교 동기 I는 엄마와 원치 않는 ‘손절’ 상태다. 살을 빼고 엄마가 원하는 남자와 선을 보기로 약속한다면 다시 연락을 받아주겠다고 했단다. 참고로 I는 결혼하고 싶은 남자와 장기 연애 중이고 부모님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 자리를 주선해 곤란하게 한다든지, 오랜만에 만나도 안부 인사보다는 그 남자와 헤어지라는 말부터 꺼내는 엄마의 등쌀에 I는 엄마와 감정의 골이 끝도 없이 깊어진 상태다. 돈만 보고 결혼한 여자를 간사하다고 평가하면서 딸에게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길 바라는 것도 엄마들의 클리셰다.

엄마로부터 그릇된 가치관을 주입받은 딸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애증이라는 단어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심리적으로 지배당하고 조종당하는 가스라이팅 피해자가 되는 것. 〈가스라이팅〉의 저자이자 임상심리 전문가 스테파니 몰턴 사키스는 가스라이터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 중 하나가 당신의 외모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스라이터가 ‘부모’로 좁혀지면 자녀의 개성을 좋아하지 않으며, 자녀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에 이른다. 스테파니 몰턴 사키스는 가족 간에 일어나는 가스라이팅에 대해 “유독 짜증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럴 땐 가족과 거리를 두거나 확실한 경계를 설정하고 되도록 빨리 새로운 삶을 찾는 것이 답이다. 할리우드 배우 제넷 맥커디도 엄마에게 시달린 지난날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제넷 맥커디는 엄마와의 병적인 애착 관계에 대해 쓴 회고록,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를 출간했다. 우리 같은 일반인도 시달리는 외모 강박증인데, 하물며 아역 배우 출신? 제목만 봤는데 책을 다 읽은 것 같았다. 엄마의 지독한 통제 아래 십수년을 섭식 장애, 거식증, 외모 강박증에 시달렸고 17살 때까지 유방과 질 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소상히 쓰인 에피소드들을 읽고 있으니 숨이 막혔고 제넷이 걱정됐지만 이내 엄마의 사랑이 사실은 ‘후진 집착’이었다고 용감하게 공론화할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달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가끔 엄마를 보면 미운 감정이 들었다. 그러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싫어졌다.” 모든 딸은 엄마로부터 외모 지적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고,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고, 그 때문에 엄마를 미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제넷이 체중 강박증 때문에 거식증에 시달리고, 내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엄마는 내가 사회에서 특출난 여성이 되길 바람과 동시에 사회가 바라는 여성상에 완벽하게 들어맞길 원한다. 삼시 세끼 든든하게 챙겨 먹으면서도 날씬한 몸매는 유지하길 바란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되 결혼과 임신, 출산을 하길 원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길 바라면서도 돈을 많이 버는 남자와 결혼해 안락하게 살길 원한다. 그 안락한 패키지엔 가사와 임신, 출산, 육아, 경력 단절 등등이 있다는 사실은 묵인한 채. 여성 심리학자인 가토 이쓰코가 펴낸 책 〈나는 나, 엄마는 엄마〉에 따르면 엄마들은 딸에게 ‘풀&푸시’ 메시지를 보낸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는, 직업인으로서 꿈을 키우되 결혼을 권유하는 식의. 결국은 엄마가 당신 세대에서 성장하며 익히고 배운 젠더 규범이 모녀 사이를 갈라놓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병적인 모녀 관계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의구심도 들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엄마가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할까?

짧은 글을 쓰는 동안 제넷 맥커디가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에 썼던 대목처럼 엄마를 향한 증오를 되새기며 동시에 속으로는 ‘엄마, 정말정말 사랑해’를 되뇌었다. 이 애증은 마치 동화 속의 라푼젤 같기도 했다. 라푼젤은 마녀 고델이 저지른 만행(예를 들면 납치, 감금, 가스라이팅 등)을 모두 알고도 탑에서 추락하는 고델을 구하기 위해 손을 뻗는다. 우리 엄마의 후진 점, 내게 하는 만행을 익히 알고 있지만 끝끝내 미워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딸들의 숙명이니까. 그래도 엄마, 이제 그런 말씀은 마세요.

Writer_김미나

젠지 그 자체, 〈코스모폴리탄〉 막내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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