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비효율적으로 만든 책은 처음... '오히려 좋아'
[김경훈 기자]
'어… 내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1월 중순 출간된 대담집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했던 솔직한 생각이다. 원래 나는 조기현 작가님이 <오마이뉴스>에 쓰신 '영 케어러'라는 연재 기사를 묶어서 책을 내자고 제안했는데(이매진 출판사에서 <새파란 돌봄>이란 제목으로 2022년 2월에 출간됐다), 조 작가님은 내게 방문진료 의사인 홍종원 작가님과 돌봄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대담집을 제안하셨다. 둘만 아는 이야기로 빠지지 않도록 진행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하셨다.
조 작가님이 쓰신 <아빠의 아빠가 됐다>, 홍 작가님이 <한겨레>에 연재하신 '남의 집 드나드는 닥터 홍'을 인상 깊게 봤던 터라 두 분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지만, 대담 진행을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었다. 대담집 작업이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다른 누군가에게 진행을 맡긴다는 생각 자체를 못 했고, 자연스레 혹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진행을 맡게 됐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많이 부담스러웠다. 진행자로 질문을 만들고 대담을 이끌어가야 했는데, 당장 질문부터 막막했다. 내가 두 분처럼 돌봄 현장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문제를 깊게 공부해본 것도 아닌데, 뭘 안다고 돌봄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좋은 질문을 해야 판이 제대로 깔리고 두 분도 잘 말씀하실 수 있을 텐데, 좋은 질문은 고사하고 대체 무엇을 물어야 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표지. |
ⓒ 한겨레출판 |
핵심을 꿰뚫는 질문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멍청한 질문만 면하자는 마음으로 돌봄에 대한 자료를 찾아 읽었다. 두 작가님이 쓰신 책과 기사를 시작으로 신문 기사, 논문, 단행본 등을 가리지 않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선에서 여러 자료를 봤다. 그렇게 읽다 보니 간신히 돌봄 관련한 주요 현안과 정책, 그에 대한 논의를 아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질문을 짰다.
그렇게 첫 번째 대담을 진행한 뒤 생각했다.
'최대한 많이 개입해보자.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의문이 드는 부분은 계속 묻자.'
편집 과정에서 대담을 대폭 재배치해 독자들이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첫 대담 이후로 나는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질문만 던지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했다. 탈시설이 반드시 최선은 아닐 수도 있다고, 돌봄을 말하려면 결국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고,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내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우리가 '왜' 지금 돌봄을 이야기해야 하는지부터 '어떻게' 돌봄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까지, 돌봄을 둘러싼 여러 쟁점에 대해 5번(실제로는 보강 대담을 포함해 6번)의 대화를 나눴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은 아닐지, 자칫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닐지 내심 걱정하면서도 적극 의견을 낸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자료를 읽고 두 분과 대담할수록 내 의견이 생겼다.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아졌다. 돌봄 문제를 현장에서 고민하고 실천하신 분들이 봤을 때는 어설프고 때론 부적절한 의견일지 모르지만, 대담 과정에서 조금씩 생각이 정리되면서 적어도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견해가 생겼다.
두 번째는 두 분과의 대담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돌봄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지, 가족돌봄이란 미명하에 가족 내의 약자가 어떻게 착취당하는지를 말하면서 우리는 자주 탄식했다. 어떻게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를 진심으로 함께 고민했다.
돌이켜보면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비효율적으로 작업했다. 일단 돌봄 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나 활동가들에게 대담 진행을 맡기지 않고 편집자가 직접 질문을 짜고 진행을 맡았다는 점부터 그랬다. 질문을 짜기 위해 자료를 읽는 과정도 비효율적이었다.
효율적으로 일하려면 여러 자료를 펼쳐 놓고 그중에 필요한 부분만 빨리 훑어봤어야 했는데, 그게 잘 안됐다. 기사를 읽다가, 책을 읽다가 자꾸만 멈춰서 한숨을 쉬게 됐고, 훑어보는 대신 정독하게 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 비효율적 방식에 여러 장점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게 이 책의 매력이라고 믿는다.
극한의 비효율성, 그게 더 매력인 이유
첫째, 다른 사람에게 진행을 맡기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겠지만, 그것도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문제의 전문가가 꼭 그 문제에 대한 대담을 잘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연구자가 대담을 진행했다면 대담이 너무 이론에 치우쳤을 위험이 있다. 오히려 내가 돌봄을 이론적으로 잘 몰랐기에 현학적인 이야기로 흐르지 않았고, 돌봄을 잘 모르는 독자의 눈높이에서 대담이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둘째, 두 작가님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도 워낙 다양해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내 경험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작가와 편집자는 보통은 그리 친밀하지 않다.
처음에 아이템을 논의하고 계약서를 쓸 때 한두 번 만나고, 작업 중에는 메일과 전화, 카카오톡으로 소통한다. 책이 나온 뒤에야 다시 북토크 등의 자리에서 얼굴을 본다. 특히 작업 중에는 실무적인 부분만 이야기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 그 이상의 깊은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은 첫 미팅 뒤에도 대담을 위해 최소한 6번은 만나야 했다. 그 몇 번의 '대면'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생각과 고민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다. 2021년 8월 24일에 진행한 첫 대담 때는 대담이 끝난 뒤 바로 헤어졌지만, 대담이 진행되면서 같이 저녁을 먹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술도 마셨다.
"시간 괜찮으시면 맥주 한잔할까요?"
▲ 1월 25일,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의 한 스튜디오에서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출간 기념으로 조기현 작가(왼쪽)와 홍종원 작가(오른쪽)가 대담을 하고 있다. |
ⓒ 한겨레출판 |
셋째, 작업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 이게 아니었다면 돌봄에 대해 이렇게 많이 생각하고, 공부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 생각도 크게 변했다. 사실 돌봄을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고통받는 사람이 있으니 중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돌봄을 내 문제로 인식하지는 못 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돌봄이 우리의 일상에 항상 존재하는, 나를 숨 쉬게 해온 공기 같은 것임을 알게 됐다.
이 책은 우리가 돌봄이라는 말에서 흔히 떠올리는 전형적인 이미지, 이를테면 요양보호사가 노인 시중을 들고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행위뿐만 아니라 평소에 남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같이 밥 한 끼 먹는 것도 모두 넓은 의미의 돌봄이라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당신도 그런 사소한 돌봄들에 위로받은 경험들이 있다. 부모의 돌봄 없이는 생존조차 힘든 어린 시절부터 흔히 '자립'했다고 여겨지는 성인 시기까지 나는 늘 돌봄 속에서 살았다. 누군가의 돌봄에 기대지 않았다면 끝내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을 순간들이 있었다. 돌봄은 특수한 행위가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행위, 우리가 관계 맺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보편적 행위임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곧 돌봄을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자 태도, 나아가 세계를 재구성하기 위한 원리로 인식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 작업 덕분에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눈이 하나 뜨였다고, 아주 가늘게나마 돌봄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됐다고 생각한다.
자주 멈춰서게 만드는 책... 편집만큼 독서도 '비효율적'이길
넷째,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그 비효율적인 작업방식이 이 책과 잘 어울렸다. 한국 사회에는 온갖 반(反) 돌봄 윤리가 작동하는데, 그중 하나가 효율의 논리다. '효율'에 따라 배제돼야 할 존재들,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지를 고민하는 게 돌봄의 윤리다. 그러니 돌봄을 이야기하는 책은 비효율적으로 작업해도 괜찮을 거라고, 아니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자료를 읽을 때도, 질문을 짤 때도 효율성을 생각하면서 적당한 선에서 멈출 수가 없었다. 자꾸 시간과 노력을 쏟게 됐다. 나는 그것을 '극진한 비효율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극진하다'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는 태도가 있다"라는 뜻인데, 효율과 정성은 애초에 양립할 수 없다. 효율의 논리를 초월하거나 거스를 때만 비로소 정성을 쏟고, 마음을 다하는 일이 가능하다.
그런 태도가 우리가 이야기해온 돌봄의 윤리와도 맞닿아 있다고 믿는다. 효율만 따지면 홍 작가처럼 방문진료하는 의사는 존재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세상에는 효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거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분명히 있다. 아니, 사실은 효율이 세상을 온통 지배해버려 너무나 많은 존재가 소외되고 고통받았다. 그러니 적어도 돌봄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이 책만이라도 '있는 힘껏' 비효율적으로 작업하는 게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바라건대 독자들에게도 이 책이 '극진한 비효율성'으로 다가갔으면 한다. 자꾸만 읽다가 멈춰야 해서 '효율적'으로 빨리 읽을 수 없는 책, 우리가 탄식했던 대목에서 독자도 함께 한숨을 쉬면서 고민하게 되는 책,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지배원리가 되어버린 효율의 논리를 의심하게 만드는 책이기를 희망한다. 편집이 '비효율적'이었던 만큼 독서도 '비효율적'이면 좋겠다고, 편집자로서 과분한 욕심을 품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에 실린 '편집자 후기'를 일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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