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유가족 "참을 만큼 참았다, 총선 때 온몸으로 심판"
[김성욱, 유성호, 권우성 기자]
▲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과 관련해 "1년 3개월 동안 참고 또 참았다"라며 "다가오는 총선에서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유가족들이 온몸으로 싸울 것이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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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62)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과 관련해 "1년 3개월 동안 참고 또 참았다"라며 "다가오는 총선에서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유가족들이 온몸으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간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윤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시위 참여 요청에 불응하고, 1주기 추모제 때 윤 대통령을 공식 초청하는 등 반정부 활동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이번 거부권 행사를 계기로 이 위원장은 "더 이상 윤 정부엔 애원하고 호소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위원장은 "이미 단식, 삭발, 삼보일배, 오체투지 등 목숨을 내놓는 것 빼곤 다 했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낙선운동을 한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지금까지와 달리 가족들이 직접 윤 대통령을 규탄하고, 이 정부가 '살인 방조' 집단이라는 것을 알리면 자연스럽게 낙선운동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유가족협의회 측이 4월 총선에 대한 방침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주영씨의 아버지다.
▲ 이태원 유가족 "참을 만큼 참았다, 총선 때 온몸으로 심판" ⓒ 유성호 |
- 1월 30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잔인하다. 큰 배신감을 느꼈다. 우리는 그동안 정말 자제해왔다. 우리가 언제 작은 몸싸움이라도 낸 적 있나. 유가족들 중에도 '윤 대통령 탄핵하자, 끌어내자'는 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제가 억누르고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촛불행동' 같은 데서 윤 대통령 탄핵 촉구 발언을 해달라고 요청이 와도 우린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끝이라고 봤다. 뭔가를 끌어내기 위해선 참아야 한다고 봤다. 우리가 할 것은 애원하고 호소하는 길밖에 없다고 봤다. 그렇게 1년 넘게 호소만 한 이유가 바로 이 특별법이었다. 인간이라면 이 정도로 사정하면 한번은 돌아볼 줄 알았다. 아니었다."
-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거부권 행사 소식을 듣고 "우리를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 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참사 초기를 돌이켜보면 이렇게 일이 오래 갈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100명 넘는 국민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죽었는데 이게 예삿일인가. 당연히 국가가 알아서 설명도 하고 조사도 하고 발표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상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냥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내 상식으로는 국정조사 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게 어느새 유가족들이 무릎 꿇고 제발 국정조사 좀 열어달라고 울고불고 있었다. 바짓가랑이 붙잡으면서 한편으로는 이게 맞나 싶었다. 그렇게 지난 1년 동안 가족들이 5만 명 서명을 받으러 다니고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하고 삼보일배를 하고 오체투지를 해 만든 게 특별법이다. 더 이상 할 것도 없다. 목숨을 내놓는 것 외에는. 이제 우리는 이 정부에 기대를 걸지 않겠다. 더 이상 이 정부에 애원하고 호소하지 않겠다."
- 이 정부 내 단체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아니다. 특별법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려면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해야 한다. 다시 입법 과정을 거치려면 그 방법뿐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진짜 제대로 된 싸움을 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와 다를 것이다. 이 정부가 얼마나 포악하고 야비했는지 몸으로 알리겠다. 몇 명 안 되는 유가족들이 뭘 할 수 있냐고 가볍게 볼 수도 있겠지만, 자식 잃은 부모가 얼마나 무서운지 못 느껴서 그렇다."
- 낙선운동을 하겠다는 건가.
"총선에서 여당이 지대한 타격을 받을 방법이 뭘까 고민하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 후보 하나하나의 낙선 운동을 한다기보다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대했는지, 이 정부가 왜 살인 방조 집단인지, 우리의 목소리로 직접 알린다면 자연스럽게 낙선운동이 되지 않겠나."
▲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 촉구, 15,900배 철야행동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는 유가족과 시민들이 1월 22일 오후 서울시청앞 분향소에서 15, 900배 철야행동을 시작했다. |
ⓒ 권우성 |
- 정부가 특별법을 거부한 대신 피해자 지원 대책을 내놨는데.
"바로 그 점에서 우리가 격분했다. 우리는 진상 규명만 얘기했지 배·보상 얘기는 한 적이 없다. 마치 우리가 돈을 원하는 것처럼 정부가 프레임을 짠 것이다. 이건 (여권) 지지층에게 우리를 공격하라고 메시지를 보낸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 이번에 정부가 지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불필요한 조사로 국가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고 했는데, 벌써 '혈세 낭비하지 말라'며 가족들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10년 전 세월호 때와 똑같은 수법이다. 우리를 악마화시켜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정부는 그 틈을 타 빠져나가려고 한다. 더 이상 이 작전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례를 남겨야 한다. 우리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 발표 전 정부 측에서 사전 설명이 없었나.
"전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정부 발표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 대책이라면서 피해자는 제쳐두고 언론사 카메라에만 대고 발표했다."
- 그럼 발표 후에라도 정부 측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나.
"전혀. 정말 뻔뻔하지 않나. 이 정부는 늘 이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윤 대통령이 평생 검사만 했고 정치인 출신이 아니라 잘 몰라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은, 윤 대통령은 공감력이 전무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참사 피해자들에게 다가가 손 한번 잡아준 적 있나. 단 한 번도 없다. 카메라만 보고 얘기했을 뿐이다.
나는 대통령이면 국민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현장에 나타나 위로해 주는 것만으로도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정치 아닌가. 실무적인 행정이야 아래 각료들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정치를 안 하고 있다. 불행한 시대다. 대통령이라면 가식으로라도 제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1월 3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가운데, 청사 정문에서 유가족들이 대통령 거부권에 반대하며 즉각 공포를 촉구하고 있다. |
ⓒ 권우성 |
- 박근혜 정부 때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한 방해는 극심했지만,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2014년) 자체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없었다.
"국가가 10년 전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무리수다. 나는 이 정부가 초조해 보인다. 여유가 없어 보인다. 얼마나 초조하고 여유가 없으면 유가족들이 1주기 때 대통령을 초청했는데도 오질 않겠나."
- 무엇을 초조해한다는 건가.
"진상 규명을. 이번에 대통령이 특별법을 거부한 것은 조사 기구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가 내놓은 피해자 지원책이 사실상 특조위 부분만 빼고 특별법에 다 들어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당은 우리와 비공개로 만났을 때 '특조위만 빼면 지금이라도 바로 특별법을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거기에 우리가 '안 된다, 진상 규명이 본질이다'라고 하면 매번 무산됐다. 그리고 그 뒤에 용산이 있었다. 독립된 조사 기구는 절대 안 되고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대통령실의 초조함이 느껴졌다. 결국 칼끝이 정부로 향할 거라는 걸 아는 것이다. 심지어 참사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 각료 단 한 명도 우리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한 적이 없다."
- 정부는 거부권을 쓰면서 이미 검·경수사와 국정조사 등을 통해 진상 규명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겨우 2주 전에 기소된 것 하나만 봐도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인지 알 수 있다. 당초 수사팀에서 김 청장에 대한 기소의견을 냈음에도 검찰은 1년 동안이나 뭉개고 있다가 수사심의위원회 결정에 떠밀려 억지로 기소했다. 검찰은 수사심의위에 불기소 의견까지 냈는데, 향후 재판이 열린다 해도 김 청장 죄를 제대로 추궁할까? 국정조사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다가 조사 기간 45일 중 절반을 날렸었다. 지금까지 처벌받은 사람도 0명이다. 참사 직후 속죄한다던 박희영 용산구청장이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등은 이제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진상 규명이 됐다는 건지 정말 한번 묻고 싶다."
-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의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고 보나.
"핵심은 경찰 마약수사대 50여 명이 이태원 현장에서 5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얼 했느냐다. 골든 타임이었던 그때 실제 경찰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아직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마약사범을 잡기 위해 경찰 신분을 숨기고 사복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던 50명 넘는 수사대가 현장에 있었다. 그들이 정말 그 심각한 상황을 몰랐을까? 그들 중 정말 아무도 상부에 보고를 안 했을까? 했다면 상부는 무슨 지시를 내렸을까? 혹시 마약 수사 실적을 위해 방치한 건 아닐까? 조치가 늦어 참사를 키운 건 아닐까?
우리가 이 정부를 살인 방조 집단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정부가 억울하다면 따져보자. 그게 상식 아닌가. 왜 애초에 거부하나. 너무나 많은 목격자들이 있기 때문에,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몰라 두려운 것은 아닌가. 하다못해 50명 넘는 마약수사대 경찰 중 단 한 명이라도 입이 열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걸 너무 잘 아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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