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알릴 수록 좋을 텐데, 왜들 한자로만 쓸까요

정만진 2024. 2. 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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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학교의 대구여행] 비슬산 소재사와 일연스님 동상

[정만진 기자]

 소재사 일주문 앞 표지석에 '琵瑟山 消災寺'가 새겨져 있다. 꼭 한자로 써놓아야 하는가?
ⓒ 정만진
 
비슬산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 '빙하기 돌강' 자연유산이 있다. 이곳 빙하기 돌강은 산 입구 소재사에서 정상부 대견사터 턱밑까지 이어진다. 따라서 비슬산 빙하기 돌강 유적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소재사를 출발 지점으로 잡아야 한다.

여러 대의 자동차가 동원된 집단 답사 경우에는 호텔 아젤리아(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일연선사길 10) 주차장에서 만난다. 호텔 주소가 잘 말해주듯 이 길은 '일연선사길'이다. 일연이 비슬산에서 장장 37년이나 수도 생활을 했으니 '일연선사길'이라는 이름을 길에 붙인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지나치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100m쯤 포장도로를 따라 산 쪽으로 들어가면 '琵瑟山 自然休養林' 표지석이 나타난다. 왜 '비슬산 자연휴양림'이라 한글로 쓰지 않고 한자를 새겨놓았을까? 아쉬운 안타까움이 샘솟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려운 글자를 읽으려고 기웃거리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한자로만 쓰인 표지석, 힘이 빠진다 

조금 나아가면 지금껏 걸어온 포장도로를 계속 갈 것인지, 아니면 오른쪽으로 난 좁은 옛길을 선택할 것인지 묻는 지점이 나온다. 물론 왼쪽 길은 주로 차도로 사용되는 까닭에 위험하니 오른쪽 좁은 길, 즉 옛길로 걸으라는 안내판 덕분에 망설일 일은 없다.

좁은 길로 들어서자마자 '비슬산 산림 치유 센터'가 오른쪽에 나타난다. 센터 건물 옆으로 곧장 입산하거나, 조금 더 직진해 가서 길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등산로 진입 이정표를 따라 올라서면 '포산2성' 설화에 등장하는 두 성인 중 관기의 성함을 이어받은 관기봉(992m)에 닿는다. 그 길은 관기봉 등정을 원하는 경우 가장 빠르게 닿을 수 있는 첩경이다.

다만 지금은 관기봉 정상이 목적지가 아니므로 그 길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비슬산 돌강이 흐르는 계곡을 향해 망설임 없이 전진한다. 작은 다리가 나타난다. 소재교이다. 소재사(消災寺)라는 이름의 신라 고찰이 계곡 바로 너머에 있는 까닭에 그런 이름이 붙어졌다. 소재사에 문화재로 지정된 대웅전과 목조지장보살좌상이 있다. 

결정할 일이 한 가지 있다. 비슬산 고위평탄면에 올랐다가 현 위치로 하산할 계획이면 지금은 소재사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쳐야 한다. 세계 제일의 빙하기 돌강 유적이 오늘 답사의 핵심이라는 점도 있지만, 산을 오르는 출발 시각에 지나치게 시간과 체력을 소모해서는 곤란하다. 소재사는 하산 후 일정을 보아가며 답사 여부를 결정할 일이다.

하지만 유가사 쪽으로 하산할 것이면 소재사를 지금 둘러보아야 한다. 앞에서, 빙하기 돌강 중 세계 최장의 것이 비슬산에 있다고 했다. 비슬산에서는 당연히 빙하기 돌강 답사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소재사 대웅전·목조 약사여래 좌상, 대견사터 3층석탑 등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유산들을 둘러보아야 한다. 소재사에 문화재가 있으니 빼놓지 않고 찾아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소재사 일주문 앞에 선다. 그런데 사찰 표지석에도 '琵瑟山 消災寺'라 새겨져 있다(비슬산 소재사).  '琵瑟山 自然休養林' 표지석과 마찬가지로, 한자를 알지 못하면 읽을 수 없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는 것이 표지석 건립의 목적일 텐데, 왜들 이렇게 한자 사용만을 좋아할까? 
 
 소재사 대웅전(대구시 문화재자료)
ⓒ 정만진
  
일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제법 널찍한 뜰을 지나 저 멀리 대웅전이 정면으로 보인다. 2006년 4월 20일에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문화재청 누리집은 이 불당이 1673년 건립되어 1857년 중수를 거쳤다고 설명한다.  신라 고찰이라고 하지만 당시 건축술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는 말이다.

대웅전은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다포계라는 용어는  처마 아래에 처마 무게를 받치기 위한 목재를, 기둥 위만이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까지 많이 설치해 두었다는 뜻이다. 맞배지붕은 건물의 앞뒤에만 지붕이 있고 좌우에는 없는 형태를 가리킨다.

대웅전 건물을 문화재청 해설에 맞춰가며 요모조모 살핀 후 오른쪽에 있는 명부전으로 간다. 명부(冥府)는 사람이 죽은 뒤에 가는 곳이고, 명부를 관리하는 보살이 지장(地藏)보살이다. 지장(地藏)이 땅(地) 속에 있다(藏)는 뜻이니, 지장보살이 대지(大地)의 덕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윤회에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해주는 존재임을 알겠다.

명부전 안에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인 '소재사 목조 지장보살 좌상'이 있다. 대웅전과 같은 날인 2006년 4월 20일에 문화재로 지정을 받았다. 목조는 나무로 만들었다는 의미이고, 좌상은 앉아 있는 불상이라는 뜻이다. 이 불상은 현종 15년(1674)에  조성되어 영조 17년(1741)에 고쳐졌다.
  
 비슬산 소재사 목조 불상(대구시 문화재자료)
ⓒ 정만진
 
불상은 중생을 굽어 살피는 듯 머리를 숙이고 있고, 민머리이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부처에 절로 예의를 표시한 후 절 밖으로 나와서 일연선사길로 본격 진입한다. 입산하는 길은 일주문에서 왼쪽으로 뻗어 있다.

좌회전을 해서 얕은 오르막 첫머리에 발을 내딛자마자, 바로 왼쪽에 누군가의 동상이 보인다. 누구지?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普覺國師 一然 紀念碑'가 새겨져 있다.  또 한자다! 비슬산 들어가는 길이 온통 '琵瑟山 自然休養林'으로 시작해서 '琵瑟山 消災寺'를 거쳐 '普覺國師 一然 紀念碑'로 끝나는구나!

왜 이토록 한자를 좋아할까? 사람들이 읽지 못하면 표지석도, 동상도, 법당도 건립한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는데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1000m 높이에서 출발해 돌강 속 숨은 길을 따라 콸콸콸 흘러내려온 세계적 비슬산 빙하시대 골짜기 물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본다.

산으로 들어가면 좋은 것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겠지! 과연 맑고 푸른 자연 덕분인가! 금세 몸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야호! '소리 없는 아우성'을 일연선사길에 메아리치며 천천히 비슬산 돌강 자연유산을 향해 나아간다.
 
 한자로 설명을 새겨놓은 일연스님 동상
ⓒ 정만진
 

덧붙이는 글 | 대구 출신 소설가 현진건은 첫 소설 <희생화>의 남자 주인공을 대구 사람으로 설정했습니다. 대표작 중 하나인 <고향>과 후반기 대표작 <신문지와 철창>은 "대구" 또는 "T시"로 시작합니다. 그만큼 고향 대구를 사랑했습니다. 현진건을 연구하고 현창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 '현진건 학교'는 현진건의 그와 같은 마음을 계승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 '대구 여행'을 실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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