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제작한 검찰 마크 차량에 부착… 대법 "공기호 위조·행사 아냐"

최석진 2024. 2. 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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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문 제작한 검찰 로고가 들어간 표지판 등을 부착하고 다닌 운전자를 공기호위조죄나 위조공기호행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일반인들이 그 같은 표지판이 부착된 차량을 '검찰 공무수행 차량'으로 오인할 수 있다고 해도, 각 검찰 업무표장이 증명적 기능을 갖추지 못한 이상 이를 공기호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강씨가 주문제작한 표지판.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공기호위조 및 위조공기호행사 혐의로 기소된 강모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기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강씨는 2020년 11월 초 검찰 로고와 함께 '검찰 PROSECUTION SERVICE', '공무 수행' 등 문구와 자신의 휴대전화를 적은 표지판 등을 온라인 구매사이트에서 인터넷으로 주문 제작해 같은 해 11월~12월 자신의 승용차에 부착하고 다닌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주변에 '검사로 일하는 사촌 형이 차량을 빌려 갔다가 붙여줬다'라는 식으로 둘러대며 마치 실제 검찰 직원들이 사용하는 표지판인 것처럼 주위에 둘러댔다.

재판에서 강씨 측은 ▲검찰표장은 특정한 사항에 관한 증명성이나 특정성이 없어 공기호가 아니며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고 있는 제품을 구매한 것에 불과하므로 피고인이 '위조'한 사실이 없고 ▲차량에 부착한 것만으로는 '행사'했다고 볼 수 없고 ▲피고인에게 형사상 책임이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형법상 공기호위조·행사죄가 아니라 경범죄처벌법상 관명사칭죄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강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과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행사할 목적으로 공기호인 검찰업무 표장 표지판을 위조해 행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 같은 판단의 근거로 재판부는 ▲강씨가 제작한 업무표장은 '검찰CI(Corporate Identity, 로고)'와 '검찰CM(Communication Mark, 마크)'으로, 검찰수사, 공판, 형의 집행부터 대외 홍보에 이르기까지 검찰청의 업무 자체 혹은 업무와의 관련성을 증명하기 위한 부호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은 위 각 표지판을 차량의 앞·뒷면에 부착해 사용했는데, 이 사건 각 표지판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일반인으로 하여금 위 자동차의 검찰 공무수행차량과의 동일성 혹은 관련성을 오인을 일을키기에 충분한 점 ▲피고인은 제품을 구매한 것에 불과하고 제작한 사실이 없으므로 위조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피고인이 이 사건 각 표지판을 판매한 인터넷 쇼핑몰의 주문방식을 보면 피고인이 기성완제품을 단순히 구매한 것이 아니라 상품 판매자에게 주문을 할 때 표지판에 넣을 마크를 고른 다음 피고인의 개인 휴대폰 번호와 차량번호를 작성·전달해 이를 각 표지판에 새기도록 해 완성했다는 점에서 피고인의 상품주문 및 제작의뢰, 정보 전달 등을 통해 각 표지판이 비로소 제작·완성된 점 등을 들었다.

강씨는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먼저 "형법 제238조의 공기호는 해당 부호를 공무원 또는 공무소가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부호를 통해 증명을 하는 사항이 구체적으로 특정돼 있고, 해당 사항은 그 부호에 의해 증명이 이뤄질 것이 요구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표지판에 사용된 검찰 업무표장은 검찰수사, 공판, 형의 집행부터 대외 홍보 등 검찰청의 업무 전반 또는 그 관련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일 뿐, 이것이 부착된 차량은 '검찰 공무수행 차량'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기능이 있다는 등 이를 통해 증명하는 사항이 구체적으로 특정돼 있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일반인들이 이 사건 표지판이 부착된 차량을 '검찰 공무수행 차량'으로 오인할 수 있다고 해도 검찰 업무표장이 이 같은 증명적 기능을 갖추지 못한 이상 이를 공기호라고 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공기호위조죄는 통상 자동차번호판을 위조하는 경우 적용되는 혐의다. '국가에 정상적으로 등록된 자동차'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증명하는 번호판과 달리, 검찰 로고는 차량에 부착한다고 해서 그것이 공무수행 차량임을 증명하는 수준의 기능은 없기 때문에 이를 공기호위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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