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저주? 테니스 코트를 뒤흔든 차세대 스타들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브레이크 포인트 시즌 2> 포스터. |
ⓒ 넷플릭스 |
2024년 테니스 그랜드슬램의 첫 단추를 호주오픈이 화려하게 열어젖혔다. 2023년 우승자들인 노박 조코비치와 아리나 사발렌카가 나란히 4강까지 진출했지만, 조코비치는 이탈리아의 신성 야닉 시너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고 사발렌카는 2연패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럼에도 로저 페더러가 은퇴하고 라파엘 나달이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는 사이 조코비치가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사발렌카는 2023~2024년 잠재력을 터뜨려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며 이가 슈피온텍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브레이크 포인트 시즌 2>가 2022년을 다뤘던 시즌 1의 성공에 힘입어 2023년 테니스의 차세대 스타를 다뤘다. 남자부 한정 BIG 3(페더러, 나달, 조코비치)의 뒤를 이었던 Small 3(다닐 메드베데프, 스테파노스 치치파스, 알렉산더 즈베레프) 이후 세대들이 주인공이다. 여전히 조코비치가 절대적 포스를 풍기는 가운데 그에게 도전하는 양상이다.
반면 여성부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다. 2022년, 2023년 그랜드슬램에서 이가 슈피온텍(유일 3회), 애슐리 바티, 엘레나 리바키나, 아리나 사발렌카,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 코코 가우프가 나눠가졌다. 같은 시기 남자부에서 조코비치가 4회, 나달이 2회, 그리고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2회 우승을 차지한 것에 비해 큰 차이가 난다. 2020년대 들어 테니스계에 본격적으로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활약이 시작되었다는 걸 알 수 있고, 넷플릭스가 기막히게 캐치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2023 호주오픈부터 윔블던까지
2023년 호주오픈, 상위권 선수들이 대거 탈락하는 이변이 연이어 발생한다. 들여다보니 넷플릭스의 <브레이크 포인트>에 출연했던 차세대 기대주들이 거의 모두 탈락한 것, 일각에서 '넷플릭스의 저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리아 사카리, 닉 키리오스, 캐스퍼 루드, 마테오 베레티니, 온스 자베르, 아일라 톰리아노비치, 펠릭스 오제 알리아심 등 이른바 '브레이크 포인트' 스타들이 모두 탈락했다.
와중에 아리나 사발렌카만이 홀로 살아남아 꿋꿋하게 저주에 맞선다. 압도적인 파워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스타일인 그녀는 결정적일 때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고 가장 높은 곳에 오르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각성했다. 호주오픈 우승 이후 승승장구한다. 넷플릭스의 저주를 풀어 버린 건 물론이다.
한편 '왕자' 카를로스 알카라스와 그의 오래된 친구이자 동료 홀게르 루네를 필두로 차세대 스타들이 베테랑을 상대로 도전에 나선다. 그 꼭대기에는 당연히 조코비치가 있다. 루네는 로마 오픈 8강에서 조코비치를 물리치고 알카라스는 윔블던 결승에서 조코비치를 물리친다. 그리고 루네와 알카라스는 윔블던 8강에서 만났었다.
루네는 테니스를 향한 열정이 어느 누구보다 강하다. 승리를 향한 집념 또한 강하다. 때로 너무 지나쳐 자신을 해쳐 경기를 망치곤 한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자신을 제어할 줄 알아야 한다. 반면 알카라스는 프로 중의 프로다. 승리를 향한 집념도 강하고 자신을 제어할 줄 알며 경기를 즐기기도 한다. 역대 최연소 세계랭킹 1위를 경신하며 2003년생에 불과하지만 이미 그랜드슬램 2회 우승 타이틀을 보유하게 되었다. 현재 유일무이한 조코비치 대적자이자 후계자라는 평이다.
알렉산더 즈베레프의 투혼
2022 프랑스 오픈, 라파엘 나달과 알렉산더 즈베레프와의 4강전에서 즈베레프가 끔찍한 부상을 입는다. 오른쪽 발목이 완전히 꺾이며 인대가 끊어졌고 뼈가 으스러졌다. 선수 인생을 뒤흔들 만한 큰 부상, 그는 부상을 입은 직후 자신의 테니스 인생이 '끝났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 최강자 그룹의 일원으로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수술 후 재활원에 들어가 재활을 시작한다.
눈물겨운 재활을 마친 후 몬테카를로 마스터즈에 출전하지만 메드베데프에 막힌다. 충분히 이길 수 있었지만 메드베데프의 전매특허인 심리전에 철저히 휘둘렸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을 수 없었다. 이후 부상 후 1년 만에 프랑스 오픈에 다시 출전한다. 트라우마가 엄습하지만 이겨냈고, 3라운드에서 강적 티아포를 무찌르며 다시 한 번 4강까지 진출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춘 전성기의 선수가 끔찍한 부상을 당해 코트에서 오랫동안 떠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 코트로 돌아가 좋은 성적을 냈다는 사실 그 자체로 드라마다. <브레이크 포인트 시즌 2>가 6개 에피소드밖에 없음에도 한 개를 온전히 즈베레프의 이야기에 할애한 이유다.
부정적인 생각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
미국의 제시카 페굴라와 그리스의 마리아 사카리는 세계 랭킹 10위권 내를 유지하는 실력자들이다. 하지만 그랜드슬램 결승전에 오른 적이 없고 WTA 투어 대회에서도 거의 우승한 적이 없다. 20대 후반 나이이기에 성과를 내야 할 때지만 쉽지 않다. 2023년 들어서도 한계를 넘어서는 데 실패한다. SNS에서 무늬뿐인 톱텐이라는 조롱을 듣는다.
그런 그들이 중요한 길목에서 맞붙는다. 서로 존중하며 최선을 다해 싸운다. 누군가는 올라가고 누군가는 떨어졌을 테지만 둘 다 얻는 게 있었다. 이후 그들은 각각 준메이저급인 WTA1000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증명했다.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부정적인 생각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한편 2023년 마지막 그랜드슬램 US오픈이 어느 때보다 미국인들의 기대를 받으며 시작되었다. 남녀 미국인 상위 랭커가 대거 출전했기 때문이다. 남자부의 프란츠 테일러, 프랜시스 티아포, 토미 폴 등과 여자부의 제시카 페굴라, 코코 고프, 매디슨 키스 등. 홈의 이점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하지만 남녀 모두 기대했던 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 와중에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벤 셸턴이 티아포를 꺾고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고 코코 고프는 우승을 차지해 버린다. 신예들의 반란이었다. 이른바 '네임드'는 아니었으나 오히려 미국 테니스의 앞날이 밝아 보인다. 나아가 테니스를 보는 재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브레이크 포인트> 시리즈도 < F1, 본능의 질주 >처럼 꾸준히 선보였으면 좋겠다 싶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스포츠, 우리나라에선 접하기 힘든 스포츠를 들여다보는 건 너무나도 흥미로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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