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안 먹던 애가 그날따라 먹자더라" 순직 소방관 부친 눈물
건물에 남아 있을지 모를 근로자를 찾기 위해 화재 현장으로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은 두 소방관 얼굴이 공개됐다. 순직 소방관 빈소에는 이틀째 추모객 발길이 이어졌다. 경찰은 문경 식품회사 화재 현장 감식에 나섰다.
경북소방본부는 2일 "유족 동의를 얻어 순직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김수광(27) 소방장과 박수훈(35) 소방교 사진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사진 속 이들은 소방공무원 제복이 잘 어울리는 미소 가득한 젊은 소방관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들은 지난 31일 오후 8시쯤 경북 문경시 신기동 제2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4층짜리 육가공업체 공장 안에서 인명 수색 도중 불이 급격히 번져 고립됐고, 이어 건물이 무너지면서 변을 당했다.
전날 문경시 산양면 문경장례식에 차려진 빈소에는 추모객 발길이 줄을 이었다. 유족들은 몸을 가누지 못해 부축받거나, 두 소방관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순직한 김 소방장의 부친은 "함께 살기 위해 경북 문경으로 거처를 옮기지 않고 경북 구미에서 살았다"면서 "문경까지 먼 거리를 출퇴근하면서도 늘 밝게 웃고 불을 끄러 갈 때면 꼬박꼬박 어머니에게 연락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초·중·고 학생 시절부터 어느 조직에 있던 또래를 이끄는 아이였다"라며 "수광이가 원래 아침을 안 먹던 아이인데 그날따라 아침을 먹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소방관들은 동료 희생을 안타까워했다. 김태웅(30) 소방사는 “(박)수훈이 형은 동기였고, (김)수광 반장은 나이는 어리지만 선배였다”고 소개했다. 이어 김 소방장에 대해 “퇴근하고도 계속 남아 훈련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로프를 올라탄다든가, 장비를 묶어서 옮기는 훈련을 한다든가”라고 기억했다.
박 소방교에 대해서는 “수훈이 형은 교육받을 때도 다 힘든데 먼저 장난을 치며 분위기를 더 좋게 하려고 했다”며 “‘힘든 거는 내가 형이니까 먼저 한다’고 말하던 동료였다”고 말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박 소방교는 미래를 약속한 연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에 차려진 '순직소방관추모관(www.nfa.go.kr/cherish/memorial/heroes)'에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소방'이라고 표현한 한 디지털 추모객은 "당신들은 소방의 영웅입니다.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시민들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소방관님 잊지 않겠습니다." "그대들이 계셔서 저희들이 안전하게 지낼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숭고한 희생정신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겁니다." 같은 글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김 소방장은 2019년 공개경쟁 채용을 거쳐 소방에 입문했다. 지난해에는 소방공무원 사이에서도 취득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인명구조사 시험에 합격했고, 구조대에까지 자원했다. 박수훈 소방교는 특전사에서 근무하다 ‘사람을 구하는 일에서 지금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고 여겨 2022년 구조 분야 경력자 경쟁채용을 거쳐 임용됐다. 미혼인 박 소방교는 평소 “나는 소방과 결혼했다”고 말할 만큼 자기 일에 자부심이 강했다고 한다.
젊은 소방관 두 명이 순직하자 소방관 안전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방청이 내놓은 '위험직무 순직 현황'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순직한 소방관은 40명에 이른다. 순직 소방관 가운데 13명이 화재진압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지난해 12월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감귤창고 화재 당시 제주 동부소방서 소속 임성철(당시 29세) 소방장이 80대 노부부를 대피시키고 불을 끄다가 창고가 무너져 목숨을 잃었다. 전북 김제 소방서 소속 성공일(29)소방교는 지난해 3월 80 노인을 구조하기 위해 화염에 휩싸인 단독주택에 들어갔다가 숨졌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는 지난 1일 성명서를 통해 "전국의 7만 소방관들은 죽지 않고 살고 싶다"라며 "소방청장과 소방지휘부는 연속되는 순직에 대해 실질적인 안전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방예산의 안정적 확보, 철저한 진상조사, 재발 방지를 위한 외부 전문 진상조사단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대원 안전을 강화할수록 시민 구조나 화재 진압이 늦어지는 딜레마적인 상황이 생긴다"라며 "소방대원이 생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안전·생존 훈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북경찰청은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육가공업체 화재 현장에서 기관 합동 현장감식을 진행했다. 감식에는 경북도소방본부·국립소방연구원·소방기술원·경북화재합동조사단·전기안전공사 등이 참여해 참혹한 현장을 돌아봤다. 이들 기관은 감식을 통해 최초 발화 지점, 3층에서 급격하게 불길이 번진 원인, 순직 소방관들의 동선, 사고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이와 별도로 경북경찰청은 경북청 형사과장이 팀장인 수사전담팀을 꾸려, 해당 공장 관계자를 상대로 공장 안 환기 장치 작동 여부 등도 확인하고 있다.
경북도는 장례를 경상북도청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영결식은 오는 3일 오전 10시 경북 안동시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거행한다. 이어 안장식은 이날 오후 3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다. 분향소는 5일까지 경북도청 동락관과 문경·구미·상주소방서에서 운영한다. 경북소방본부는 이들의 국립현충원 안장, 1계급 특진, 옥조근정훈장 추서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김정석·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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