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연대
영국 출신의 세계적 거장 켄 로치의 신작이 개봉했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는 2014년 ‘나, 다니엘 브레이크’와 2019년 ‘미안해요, 리키’에 이어 영화를 통해 영국 소시민의 이야기를 소재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담아낸 영국 북동부 3부작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나, 다니엘 브레이크’로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은 칸 영화제가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87세를 맞이하는 감독의 이번 작품은 그의 잠정적 은퇴작이자 15번째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이기도 하다.
한때 탄광 산업으로 활기를 누렸던 영국 북동부 더럼의 한 작은 마을. 과거 화려한 영광을 뒤로 하고 지금은 자녀 학비와 난방비 사이에서 무엇을 먼저 내야 할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의 사람들이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2016년 이 마을에 시리아 난민들이 도착하자 주민들은 히잡을 쓴 난민들의 향해 비아냥 거리면서 욕을 퍼붓는다. 난민들 사이에서 옥신각신하던 중 시리아 소녀 야라(에블라 마리 분)의 소중한 카메라가 박살이 나고 그때 유일하게 야라의 손을 잡아준 사람은 동네에서 오래된 올드 오크라는 펍을 운영하는 중년 남자 TJ(데이브 테너 분)였다. 마을 주민과 난민, 서로 다른 처지의 두 사람은 각별한 친구 사이가 된다.
영화는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켄 로치 감독은 영국을 대표하는 사회파 감독으로 주로 노동자와 서민을 주인공 삼아 사회를 통찰해 블루칼라 시인으로 불린다. 영국 북동부 3부작 ‘나, 다니엘 브레이크’가 복지의 사각지대에 몰린 노인의 비극을 그렸다면 ‘미안해요, 리키’는 노동 시스템의 맹점을 지적했고 ‘나의 올드 오크’는 난민에 대한 문제를 그려 해법은 연대의 힘에 있다고 말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메시지는 복잡하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좌우 이념, 노동계급 문제가 아니더라도 “중요한 건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거야”라고 말하며 연대를 강조한다. 영화는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최소한 버틸 수 있도록 아주 작은 힘이라도 조금씩 모아 삶의 고통을 줄이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과거의 상처를 통해 희망을 전한다. 1984년 영국 정부는 탄광을 폐업하기로 결정한다. 서로 믿고 의지하던 노동자들은 파업을 지속할 힘을 잃고 정부 정책에 순응해 지금은 낙후된 작은 마을로 전락했다. 그곳에 시리아의 난민이 찾아오고 약자와 약자는 대결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TJ는 과거 폐광에 맞서 파업으로 저항하던 때, 주민들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따뜻한 음식을 나눠 먹고 결의를 다졌던 창고를 개방해 난민과 주민을 위해 무료급식을 제공한다. 영화는 난민과 노동자의 연대와 화합을 통해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사실주의가 강조된 켄 로치의 미학도 담겨있다. 켄 로치는 노동계급과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은유와 상징 대신 직설 화법으로 담아낸다. 이른바 사회적 사실주의 영화의 연출 기법인 다큐멘터리 기법과 비전문배우를 기용한다. 이번 ‘나의 올드 오크’에서도 영화 속 인물과 유사한 비전문배우가 등장한다. 주인공 데이브 터너는 약 30년간 소방관으로 일했고 잉글랜드 더럼의 펍에서 근무했다. TJ와 영화를 이끄는 야라 역의 에블라 마리 역시 시리아 출신 배우로 감독이 어렵게 발굴한 주인공이다. 진정성을 담기 위한 노장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중동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난민들이 늘어나고 있고 혁신으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사회적 약자 또한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고물가와 저성장으로 살기 어려워진 탓으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줄어들고 있다. 영화 ‘나의 올드 오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해법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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