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 프롬 어웨이'가 노래하는 기적의 이름 '인류애'

김종성 2024. 2. 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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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

[김종성 기자]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 유튜브 화면 캡쳐
ⓒ 컴프롬어웨이
 
2001년 9월 11일 오전, 테러범들이 납치한 비행기 (4대 중) 2대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다. 뉴욕의 상징, 미국의 자존심, 자본주의의 심벌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비상 상황이 선포됐고, 미국 영공(領空)이 완전히 폐쇄됐다. 그 말은 미국 내 모든 공항에 착륙이 금지됐다는 뜻이다. 날아다니는 모든 물체가 공포였기 때문이다. 하늘이 텅 비었다. 

9.11 테러 당시 하늘을 날고 있던, 그 많은 비행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당시에는 충격적인 이미지에 시선을 뺏겨 미처 생각하지 못했고, 그 이후에는 '테러와의 전쟁'이 뿜어내는 도파민에 노출되어 신경쓰지 못했다. 마냥 하늘을 배회할 수 없으니 분명 어딘가에 착륙해야 했다. 연료에 한계가 있으니 회항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갔을까. 

테러의 위험이 상존하는 만큼 조심스러웠으리라. 이무 곳에나 갈 수 없었고, 어떤 곳도 쉬이 공항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때 비행기 38대가 캐나다의 작은 마을 뉴펀들랜드 갠더 공항으로 비상 착륙했다. 잃을 게 많지 않다는 판단에 의한 결정이었으리라. 그리하여 약 7000명에 달하는 승객들이 갠더 마을에 불시착했다. 이것이 바로 일명 '노란 리본 작전(Operation Yellow Ribbon)'이다. 

승객 숫자보다 적었던 갠더 마을 주민들은 합심해서 승객들을 맞이했다. 공간을 마련해 잘 곳을 마련했고, 음식, 옷, 이불, 생필품 등을 모아 제공했다. 갠더 마을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승객들은 힘겨운 시기를 넘기고 무사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담아낸 작품이 바로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Come From Away)>이다. 

닫힌 하늘길... 자기 집 내어준 사람들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 유튜브 화면 캡쳐
ⓒ 컴프롬어웨이
 
최근 브로드웨이를 대표하는 명작 중 하나인 <컴 프롬 어웨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인류애'이다. 갠더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노란 리본 작전이 반가울 리 없다. 어쩌면 폭탄 돌리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일상이 망가진 상황 속에서도 갠더 주민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이방인들을 보살폈다. 의식주를 공급하는 한편 지친 심신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테러의 충격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비극의 씨앗은 곳곳에서 피어났고, 우울의 향을 진하게 풍겼다. 가족과 연락이 끊긴 사람들은 동요했고,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들은 좌절했다. 그중에는 테러 현장의 화재 진압에 나섰던 소방대원의 가족도 있었다. 순식간에 평온한 일상을 상실한 그들은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하늘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갠더 주민들은 자신의 집을 기꺼이 홈스테이로 제공했다. 아낌없이 나눠 주었다. 또, 레크리에이션을 열어 비극에 잠긴 이들의 마음을 치유했다. 물론 갈등도 있었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뒤섞인 상황은 (테러 직후인 터라) 이성적 판단을 어렵게 했고 불안을 가중시켰다. 그 갈등의 불씨를 해소한 건 결국 인류애였다. 당시의 갠더 마을은 진정한 의미의 '용광로'와 다름없었다. 

<컴 프롬 어웨이>는 비극의 현장을 다루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다양한 감정들을 잘 풀어내는 동시에 설득력 있게 담아냈다. 12명의 배우는 마을 주민과 승객을 모두 연기하며 이른바 '다역 연기'를 펼치는데, 그 순간적인 전환에 이질감과 어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배우들의 합이 좋다고 볼 수 있는데, 그걸 가능하게 한 건 엄청난 양의 연습이리라.

남경주, 최정원, 최현주, 차지연, 신영숙 등 대한미국을 대표하는 주연급 배우들이 참여했고, 서연철과 고창석 등 실력파 배우들도 매력을 더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다른 뮤지컬과 달리, <컴 프롬 어웨이>에서는 주연급 배우들도 앙상블을 겸하며 무대를 가득 채웠다는 점이다. 훨씬 더 풍성한 느낌이랄까. 유기적인 무대가 감탄을 자아내는 동시에 색다른 재미를 줬다. 

1월 30일 공연의 출연진은 남경주, 최현주, 신영숙, 고창석 등이었는데, 닉 역의 남경주는 1세대 뮤지컬 배우답게 여유롭고 안정감 있는 연기를 펼쳐보였고, 다이앤 역의 최현주는 매력적인 음색으로 관객의 마음을 휘감았다. 최초의 여성 기장 비벌리 역을 맡은 신영숙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시장 역의 고창석은 능수능란한 연기를 펼치며 관객들을 순식간에 무대에 몰입시켰다.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 유튜브 화면 캡쳐
ⓒ 컴프롬어웨이
 
12명의 배우 모두 훌륭한 무대를 꾸며주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배우를 뽑으라면 한나 역을 맡은 이현진을 선택하고 싶다. 그는 소방대원인 아들과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과 슬픔을 탁월한 감정 연기로 표현해냈다. 한나 그 자체가 되어 연기하고 노래하는 이현진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눈물을 흘리는 관객도 많았다. 

음악은 비극을 치유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기도 한다. <컴 프롬 어웨이>에서도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뉴펀들랜드에는 영국에서 온 어부들이 정착하며 켈틱(Celtic) 음악도 자리잡게 된다. <컴 프롬 어웨이>는 만돌린, 바우런, 휘슬 등을 활용한 켈틱 음악을 통해 갠더 주민과 승객들이 하나되는 장면들을 구현하는데, 그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대목은 그야말로 백미이다. 

요즘처럼 인종 간의 갈등이 첨예하고, 각 국가의 구성원 간의 대립이 극심하고, 세대와 성별의 반목이 극심한 때 <컴 프롬 어웨이>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답은 결국 인류애가 아닐까. 혹자는 이상에 가깝다고 할지 모르지만, 9.11 테러 당시의 실화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인류애로 가득한 <컴 프롬 어웨이>는 서울시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2월 18일까지 공연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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