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맛 나서 몰래 못먹여"…30년형 니코틴 남편살인 무죄 반전
남편에게 니코틴 원액이 든 음식물을 먹여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부인이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과 항소심은 부인에 대해 유죄를 인정해 중형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에 이어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피고인이 남편을 살해했다고 볼만큼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이어 파기환송심도 살인 혐의 ‘무죄’
2일 수원고법 형사1부(박선준 정현식 강영재)는 부인 A씨의 파기환송심에서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컴퓨터 등 사용 사기 혐의에 대해선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구속 상태였던 A씨는 이날 선고에 따라 석방됐다.
A씨는 지난 2021년 5월 26∼27일 남편 B씨에게 세 차례에 걸쳐 치사량 이상의 니코틴 원액을 넣은 미숫가루와 흰죽, 찬물을 먹도록 해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26일 미숫가루 등을 먹고 통증에 시달리던 B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상태가 호전돼 퇴원했는데, A씨가 추가로 건넨 찬물과 흰죽을 먹은 뒤 27일 오전 3시쯤 사망했다는 것이다. 숨진 B씨의 체내에선 치사량의 니코틴이 검출됐다.
A씨는 또 남편 사망 후 남편 명의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금융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한 다음 자신이 마치 남편인 것처럼 본인 인증을 거쳐 300만원을 대출받은 혐의(컴퓨터 등 사용 사기)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미숫가루와 흰죽, 찬물을 이용해 남편을 살해했다고 인정했고, 2심은 찬물을 이용한 범행만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대법원은 “니코틴 복용 방법에 대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며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 “맛·향 있는 니코틴, 먹게 할 수 있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범행 동기와 준비·실행 과정 등을 다시 심리했다. 이 과정에서 재판장과 수사 검사가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니코틴의 냄새를 맡고 극소량을 시음해 니코틴에서 박하향과 아린 맛이 나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A씨가 B씨에게 니코틴을 음용하게 해 사망하게 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지난달 11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말초혈액에서 검출된 니코틴 농도에 비춰보면 시중의 일반적 액상 니코틴 제품이 아닌 고농도 원액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수사기관은 피고인으로부터 압수한 니코틴 함량 실험을 하지 않았다”며 “피고인에게 니코틴을 판 업주는 ‘원액이 아닌 희석액을 줬다’고 진술하고 있어 (수사기관에) 압수된 제품이 범행에 사용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전문가들도 한결같이 ‘니코틴에서 냄새가 나고 자극적인 맛이 나서 음용하기 어렵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의식이 뚜렷한 피해자에게 발각되지 않고 다량의 니코틴을 먹인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씨 변호인이 주장했던 남편 B씨의 극단적 선택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B씨가) 부인이 몰래 대출을 받고 오랜 기간 내연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고, 경제 문제와 부친과의 불화 등으로 불안정한 정서 상태가 심화했을 수 있다”며 “이전에도 니코틴에 의한 다른 사망 사건이 알려졌던 점을 고려하면, B씨의 다른 행위가 (사망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에 의문점이 많다”고 했다.
또 “A씨가 여섯 살 아들을 두고 가정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을 감내하며 남편을 살해했을지도 의문”이라며 “피해자의 사망으로 피고인이 얻을 재산이 압도적으로 많은 금액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범행 동기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A씨 변호인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범인 잘못 지정”
민트색 수의에 하얀색 마스크를 쓴 A씨는“진실이 꼭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며 오열했던 결심 공판과 달리 담담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인 채 선고 결과를 들었다.
A씨 측 배재철 변호사는 선고 후 취재진에게 “처음부터 수사기관이 피고인을 범인으로 잘못 지정해서 수사했다”며 “살인의 경우 범행 동기가 가장 필요한데 피고인은 뚜렷한 살해 동기가 없고, 모진 성격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 원리에 의해 재판부가 무죄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엄마, 식당 차리게 도와줘요” 아들에 세금 없이 5억 주는 법 | 중앙일보
- 3040이 급격히 늙어간다, 이젠 병상서 환갑 맞을 판 | 중앙일보
- 50대가 20대 피부 돌아갔다, 마침내 밝혀진 '노화의 비밀' | 중앙일보
- 스님 떠나자 기이한 일…매화 100송이 피던 금둔사 무슨일이 | 중앙일보
- 독수리 사진까지 내건 '비둘쥐' 전쟁…스페인선 불임 사료 뿌렸다 | 중앙일보
- "세기의 프로젝트" 피라미드 복원 공사…네티즌 조롱받는 까닭 | 중앙일보
- 연기 그만둔 최강희, 환경미화원 됐다…새벽 출동 뒤 "내 체질" | 중앙일보
- 집에 감금하고 "성인방송 찍어"…아내 죽음 내몬 전직 군인 | 중앙일보
- 10조 들이는 '尹케어'…지방 "당장 인건비 급하다" 속도전 호소 [尹정부 필수의료 종합대책] | 중
- '차 수출 세계 1위'에도 못 웃었다…싸게 팔던 중국의 자책골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