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왕따로 전락한 한국 증시, 앞으로가 더 두렵다
[송두한 기자]
▲ 코스피가 2500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 종가는 전장보다 1.84포인트(0.07%) 내린 2,498.81로 집계됐다. 지수는 전장보다 23.03포인트(0.92%) 오른 2,523.68로 개장해 상승하다 장 마감 직전 내림세로 돌아섰다.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0.28포인트(0.03%) 내린 818.86으로 거래를 마쳤다. 2024.1.30 |
ⓒ 연합뉴스 |
최근 정부는 증시 부양을 위해 공매도 금지는 물론, 주식양도세의 대주주 기준을 종목당 1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상향했고, 심지어는 여야가 합의해 유예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마저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증시는 맥을 못춘다. 반면 정부가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미국과 일본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바람을 타고 나는 형국이다. 미·일 증시는 나는데 한국 증시만 기는 이유를 알아보자.
▲ 최근 3개월 코스피 추이. 1월 들어 부진을 거듭하다 2월 1~2일 상승 추세다. |
ⓒ 네이버 |
글로벌 유동성 장세에서도 수익률 낮은 한국 증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 환경이 지속되면서 세계 증시는 유례없는 글로벌 유동성 장세에 진입하게 된다. 먼저 증시 버블의 바로미터인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자산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살펴보자.
연준 자산은 양적완화 등 확장적 통화 정책에 힘입어 2008년 이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2007년 0.9조 달러에서 2009년 2.2조 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는데, 이후 2019년까지 10년간 다시 2배 증가해 4.2조 달러로 늘어났다. 더욱이 2019년에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면서 2022년에 다시 2배 증가해 8.8조 달러로 증가했다. 버블의 크기로만 보면 2008년 금융위기 직전보다 최소 4배 이상 부푼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이 기간에 세계 증시는 유례없는 대호황 국면을 누렸으며, 그 기세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대세 상승장에서 주식시장에 투자한 주체들이 거둔 성과를 비교해 보자. 아래는 2009년을 100으로 했을 때 한·미·일 증시의 이후 추세를 비교한 도표다.
▲ 한미일 증시 장기 추세 비교 |
ⓒ 금융투자협회, FED, Bloomberg |
이 도표에 따르면 미국의 데이비드가 2008년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넘기고 2009년에 '다우지수'에 투자해 지금까지 장기투자했다고 가정하면 데이비드의 누적수익률은 303%로 3배 이상의 막대한 자본 이득을 거두었을 것이다. 지난 15년간 4배 증가한 연준 자산과 얼추 비슷한 수치다.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조건하에서 일본의 와타나베가 '니케이225'에 투자했다면 283%의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즉, 미국과 일본의 개인투자자들은 주식시장 성장에 편승해 근로소득 공백을 자본소득으로 메울 기회가 충분하게 주어진 셈이다.
이번에는 한국의 홍길동이 지난 15년간 코스피 지수에 장기투자했다면 약 49%의 자본이익을 거뒀을 것이다. 물론 올해 단타로 큰 손실이 발생한 개인투자자와 비교하면 이 정도 수익을 낸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홍길동이 3%짜리 은행 정기예금 상품에 15년 동안 투자했다면 약 56%에 달하는 무위험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즉, 국내 주식시장의 수익력이 은행 예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증시 버블은커녕 장기투자의 가치도 실현하기 어렵다. 이러니 부동산 자금이 증시로 유입될 리도 만무하다.
정부의 무질서한 졸속 대책에 무너진 시장 신뢰
안 그래도 한국 증시는 수익 실현이 약한데 저성장 충격으로 경제의 기초 체력이 소진되는 가운데 본질과 괴리된 졸속 대책으로 시장 질서를 교란하다 보니 증시 사정은 더 안 좋다.
졸속 대책이 맥락도 없이 멀쩡한 제도나 정책을 밀어내는 정책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국내 증시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지극히 떨어지는 후진성을 보인다. 이번 닥치고 '공매도 금지' 사태가 그 시발점이다. 국내 증시는 외인이 주도하는 공매도를 금지해야 할 만큼 공매도 피해가 심각한 게 현실이다. 외인과 기관들이 시장 하락에 투자하기보다는 주로 인위적인 시세 조종을 통해 시장 가격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코스피 지수가 '2000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적정가격을 망가뜨리는 공매도의 역기능과 무관치 않다.
문제는 윤 정부의 질서 없는 공매도 금지 조치가 시장 질서만 교란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공매도 금지와 맞물려 기다렸다는 듯이 내려가기 시작하는 증시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제대로 된 공매도 혁신은 제도 개선을 먼저 시행한 후 정책 효과를 평가해 공매도 금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정부의 공매도 금지 조치가 뒷문 열어놓고 앞문만 잠근 부실 대책인 이유다.
구체적으로 무차입 공매도 방지를 위한 전산화, 기한의 정함이 없는 상환 기간, 시장 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의 공매도 장사 등 관치(官治)에 뿌리내린 친자본·친기업 편향부터 바로 잡았어야 했다. 이러한 선행 조치들을 뒤에 남겨 두고 성급하게 공매도를 금지한 것은 답부터 먼저 쓰고 문제를 푸는 격이나 다름없다. 그 많은 세월 뭐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공매도 사태를 일으킨 것인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도 떠나고 내국인도 떠나는 형국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내년 상반기에 공매도 금지 조치가 풀리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내국인 투자자가 걱정하는 것은 엉터리 제도 개선을 추진한 이후에 공매도 전면 허용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다. 현행 '제한적' 공매도 제도는 광범위한 공매도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공매도 가능 종목을 350개(코스피 200과 코스닥 150)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6월 이후에는 모든 종목에 공매도 투자가 가능한 '공매도 완전 개방'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공매도 제도 개선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했다고 하니, 공매도 완전 개방을 반대할 명분도 사라진 상태다.
▲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 증권ㆍ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2024.1.2 |
ⓒ 연합뉴스 |
허약한 경제 체질에 발목 잡힌 증시
주식시장이 바닥을 잡고 돌아서기 위해서는 경제의 기초 여건이 뒷받침해야 가능하다. 정부는 연일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는 등 경제의 역동성이 살아나고 있다며 장밋빛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경제지표를 선행하는 증시 환경은 정부의 전망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성장률 하강 추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성장률은 2021년 4.3% 반등 이후 2022년 2.6%, 2023년 1.4%로 하락하며 추세 전환에 실패했다. 글로벌 복합위기로 인해 다른 나라들도 사정이 마찬가지라고 강변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최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성장률 추이(21년~23년)를 보면 미국 경제는 "5.8%→2.1%→2.5%"로 반등에 성공했고, 일본 경제도 "2.1%→1.0%→2.0%"(IMF 전망치)로 바닥을 잡고 상승 전환에 성공했다.
또 대중국 수출 충격에 발목이 잡힌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이나 일본은 수출의 역동성을 회복하는 흐름을 보인다. 반면, 우리나라 수출 경제는 최근 2년간 대규모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이제는 불황형 흑자를 넘어 불황형 적자 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는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중국도 일본도 아닌 우리나라다. 대중국 무역 흑자는 2021년 242억 달러에서 2022년 12억 달러로 쪼그라들더니 급기야 2023년에 180억 달러로 엄청난 적자로 전환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사상 처음으로 대중국 무역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주력 교역국인 대중국 수출 비중은 2021년 25.3%에서 2023년 19.7%로 줄어들었다. 미국 수출이 아무리 증가했다 하여도 결코 대중국 수출 공백을 메울 수 없다. 차이나 리스크는 과도한 정치와 신념이 미·중 갈등에 끼어들어 빗어낸 참사다.
어느 나라든 주식 시장은 경제지표 레벨을 가늠하는 기반이 되고, 기업의 실적이 성장 추세를 결정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내 증시는 저성장 충격의 직격탄을 맞아 물가상승 정도도 반영하지 못하는 시장으로 전락했다. 정부가 증시 부양을 위해 아무리 이런저런 세금을 만지작거려도 백약이 무효인 이유다.
자본 흐름 충격에 취약한 국내 증시
외인 자본은 국내 증시를 견인하는 동력인 동시에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적 리스크다. 우리 주식시장은 외인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 자본 유출로 인한 증시 폭락, 환율 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 증시는 외국인 투자 비중이 30~40%를 유지할 정도로 높은데, 점유율로만 보면 신흥국 증시 중에서도 단연 최고 수준이다.
일례로 코스피 지수는 외인 비중이 37%까지 늘었던 2021년에 3300선을 찍고 31%까지 떨어진 2022년에 2100선으로 밀렸다가 올해 33%까지 소폭 상승하며 2500선을 넘나들고 있다. 코스피 지수와 외인 증시 비중이 높은 상관성을 보이는 이유다. 이처럼 외국인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내국인 투자자를 축으로 시장 질서를 재편하기란 어렵다.
더 큰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입되는 외인 자본의 질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10년간 단기성 투자자본이나 투기자본이 급증하면서 국내 증시는 외국인의 단타 놀이터로 변질되어 버렸다. 국내 증시에서 장기투자 시장이 사라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외인이 주도하는 공매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 코스피 외인 비중 추이 |
ⓒ 금융투자협회, Bloomberg |
▲ 일본 성장률·환율·순매수 추이 |
ⓒ 한국은행, Bloomberg |
최근 신흥국 전반에 걸쳐 자본 이탈 우려가 커지면서 국내 증시 및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는 흐름을 보인다. 신흥국 시장에서 자본 유출 압력이 높아지면서 달러 강세 속 신흥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는 '나 홀로 달러 강세'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올해 들어 1300원 초반까지 상승하며 추가적인 증시 자금 이탈 압력을 높이고 있다. 바닥을 잡지 못한 성장률 충격, 무질서한 증시 부양책, 수출 경제 부진 등 원 환율을 둘러싼 리스크 환경을 고려하면, 글로벌 자금이 국내 증시를 떠나 일본 증시로 이동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일본 증시는 그동안 엔화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했음에도 견고한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2021년 100엔 선에서 올해 150엔까지 상승하며 약세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엔화 약세 속에서도 일본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이유는 성장률이 상승 반전에 성공하면서 엔화 강세 전망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일본 증시의 경우 2023년 외인 순매수 규모가 3.4조 엔 수준인데, 올해 1월에만 1.5조 엔 이상이 들어올 정도로 자금 유입세가 가파르다. 앞으로도 글로벌 자금은 원화 약세로 환차손 우려가 있는 국내 증시보다 엔화 강세 전환으로 환차익 기대감이 살아나고 있는 일본 증시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 송두한 국민대 특임교수(전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
ⓒ 송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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