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사직구장' 정정보도 신청...한동훈에게 언론이란 무엇인가

임병도 2024. 2. 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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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자가 본 이 사건] 언중위 제소가 아니라 정확한 해명이 필요하다

[임병도 기자]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0일 오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 당원과의 만남에서 셀카를 찍고 있다.
ⓒ 연합뉴스
 
'사직' 논란이 점점 희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부산에서 한 발언을 두고 쓴 한 편의 기사가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사를 쓸 때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파장입니다. 그동안의 경과를 정리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되짚어보겠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한동훈 위원장의 입입니다. 한 위원장은 지난 1월 10일 부산시당 당원 간담회에서 자신이 민주당 정권에서 좌천당해 부산에 왔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저녁마다 송정 바닷길을 산책했고, 서면 기타 학원에서 기타 배웠고, 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습니다."

민주당은 한 위원장이 말한 2020년엔 코로나로 인해 무관중 경기였다고 지적했고, 국민의힘은 한 위원장이 과거 사직구장에서 비닐 봉지를 쓰고 응원하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기자는 1월 13일 "사직구장 봉다리 응원 사진에 더 난감해진 한동훈"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썼습니다.(관련 기사 보기 https://omn.kr/272aj )

'사직구장' 아니라 '사직'에서 야구 봤다며 언중위 제소 

언론중재위원회(언중위)에 정정보도를 청구한 신청인은 국민의힘이었고, 대표자는 한동훈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청서에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습니다'라고 발언하였고, '사직구장에서 롯데 야구를 봤습니다'라고 발언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피신청인(오마이뉴스 - 편집자 주)은 이 사건 보도를 하면서 기사 제목 하단에 '문재인정부 좌천 때 저녁에 사직구장에서 야구 관람했다'했지만 그때는 코로나로 무관중'이라고 사실과 다르게 보도하였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잘못된 허위 보도로 인하여 신청인의 명예훼손은 물론이고, 기사를 접한 일반인들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허위 사실을 발언한 것으로 오해를 하는 등 심각하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자는 '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다'는 말을 사직구장에서 봤다고 해석해 보도한 기사가 그토록 심각한 명예훼손이 되는지 몰랐습니다. 저는 부산 취재를  위해 2년 동안 서면 근처 오피스텔을 얻어 살았습니다. 그때 부산 시민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사직구장의 노후 시설 문제를 취재한 적도 있습니다. 

부산 시민들이 '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다'고 하는 건 '사직구장에서 롯데자이언츠 경기를 직관했다'는 의미로 통합니다. 사직역 근처 호프집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롯데 야구를 봤다는 것이 아니죠. 20년 넘게 1인 미디어 활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포털이나 언중위를 통한 기사 수정이나 정정보도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황당한 언중위 제소는 처음입니다. 특히 "해당 보도로 심각하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은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오마이뉴스> 신상호 기자 또한 "사직구장서 본 거 아니다? 한동훈의 황당한 정정보도 신청"(https://omn.kr/278ue)이라는 기사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고, 한동훈 위원장의 언론 대응이 과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쓸데 없는 언중위 제소로 '언론탄압 정당' 이미지 강화할 건가"
 
 김준일 뉴스톱 대표가 시사IN 유튜브에 출연해 한동훈 위원장의 언론 대응을 비판하는 모습
ⓒ 유튜브갈무리
 
방송에 출연하며 정치평론가로도 활동하는 김준일 전 뉴스톱 대표는 1월 30일 <시사IN>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김은지의 뉴스인'에 출연했습니다. 김 대표는 "일단 이거는 '한동훈판 바이든 날리면이구나'라고 말씀 안 드릴 수가 없는데. 오마이뉴스에 정정보도 신청하고 언중위 간 게 '사직구장에서 봤다'와 '사직에서 봤다' 이건데... 죄송한데 좀 ㅂㅅ(비속어라 가림 - 편집자 주)같다 대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반발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정광재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정파성을 넘어 우리 사회를 막말과 극단으로 몰아넣는 발언은 없어야 한다"며 "김 대표가 즉각 사과하고,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는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김 전 대표는 국민의힘 논평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반박했습니다. 그는 "'ㅂㅅ(비속어라 가림 - 편집자 주)같은 대응'의 대상은 한동훈 개인이 아니라 국민의힘이라는 공당"이라며 "언중위에 제소한 것이 한동훈 비대위원장 본인인지, 국민의힘 미디어국인지, 미디어법률단인지 국민의힘은 명확히 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비판의 대상도 명확해질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이 논란이 불거졌을 때 '무관중 시기 사직구장 인근에서 지인들과 함께 응원했던 것을 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다고 한 것인데 오해를 불렀다'고 해명하면 끝날 일"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쓸데 없는 언중위 제소로, 수많은 언론을 적으로 돌리고, '언론탄압 정당' 이미지를 강화하는 게 올바른 조치인가. 이게 정무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치라고 생각하는지 답변 바란다"는 충고도 했습니다.

1일 나온 한동훈 관련 판결...
"해명으로 극복해야, 소송 통한 언론 감시-비판 제한은 신중해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일 서울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국회의원 세비 삭감을 제안하고 있다.
ⓒ 유성호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착오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위원장이 사직구장에서 롯데야구를 직관한 시기를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보도 이후 한 위원장이 만약 '알아보니 그때는 직관을 가지 않았다. 그러나 사직구장을 간 적이 있으며 롯데 야구와 부산을 좋아했다'라고 해명했다면 지금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민의힘은 '사직에서 봤다'고 했지 사직구장 근처 호프집인지 사직 근처 아파트인지 등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야구를 봤다고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2008년 비닐 봉지 응원 사진까지 찾아서 배포할 정성이라면 논란이 가열될 때 충분히 설명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 보도로 인해 얼마나 심각한 명예훼손과 피해를 입었는지 구체적 증거 또한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주목할 만한 판결이 지난 1일 나왔습니다. 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 10-2부는 한동훈 위원장이 자신에 관한 허위사실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며 전직 기자 장아무개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 장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장 전 기자는 2021년 자신의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에 "그렇게 수사 잘한다는 한동훈이 해운대 엘시티 수사는 왜 그 모양으로 했대?"라는 등의 글을 올렸습니다.

1심 재판부는 한 위원장에 대한 명예훼손이 맞다고 판단했지만, 2심 재판부는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원고인 한동훈 위원장이 엘시티 수사에 있어 구체적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피고인 장 기자의 의혹 제기로 억울함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면서도 "다만 언론으로서는 수사에 대해 추상적 권한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주요 수사기관 고위공직자에게 충분히 의혹 제기를 할 수 있다"라고 봤습니다.

이어 "공직자인 원고로서는 대법 판례에 따라 그런 비판에 대해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면서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언론 감시와 비판을 제한하려고 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한 위원장이 공직자로서 이러한 법원의 권고를 어떻게 반영할지 지켜보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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