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 된 시월드, 못된 시어머니들의 활약상
[이정희 기자]
요즘은 '시댁', '시가'라는 말보다 '시월드'라는 말이 더 일상적으로 쓰인다(시집살이, 시댁을 뜻하는 신조어). 예전보다 덜해졌다고 하지만 결혼한 주부들에게 다가오는 명절은 여전히 스트레스이다. 결혼 후 시댁에 가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밥만 먹고 왔는데도 체해버렸다는 지인의 토로처럼, '시월드'는 그 존재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여주인공들의 활약을 앞세운 드라마에서 '시월드'의 존재감이 만만치 않다. 다양한 버전의 시월드, 그 중에서도 시어머니의 '활약'이 극을 흥미진진하게 이끄는 주요 동력이 된다.
▲ JTBC <끝내주는 해결사> 한 장면. |
ⓒ JTBC |
'악질 배우자 처단 전문 활극'을 내세우며 1월 31일 시작된 JTBC <끝내주는 해결사>는 해결사 김사라(이지아 분)와 그의 팀이 아들을 볼모로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을 찾아가 멋들어지게 아들을 구출해 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통쾌한 해결 장면을 본 아이 엄마가 묻는다. 김사라가 누구냐고. 그러자 손장미(김선영 분)가 말한다. 최고의 이혼해결사, 하지만 한때는 변호사였고, 전과자라고.
김사라는 차율로펌의 안주인이었다. 하지만 로펌 회장이었던 시어머니 차희원(나영희 분)에게 가진 것 없는 집안의 김사라는 '잘못된 거래'일 뿐이었다. 친정에 다녀온 사라에게 대놓고 '냄새난다'며 멸시한 시어머니는 사라에게 '어머니' 소리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틈만 나면 바람을 피우는 남편의 팬티를 다려주지 않는다며 악을 쓴다.
변호사로서 사라의 능력은 로펌의 온갖 굳은 일을 처리하는 데 쓰일 뿐이다. 그녀의 지인 성형외과 의사가 이혼 소송(그의 아내가 손장미였다)에 놓이자 김사라에게 딜을 한다. 이 불가능한 미션을 해내면 이사 자리와 어머니라는 말을 허락하겠다고. 하지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김사라에게 돌아온 건 로펌의 이사자리와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를 수 있는' 권한 대신, 이혼과 감옥 행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무사히 이혼하고 재혼할 수 있도록 며느리를 범죄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자식을 외국인 학교에 불법으로 입학시킨 죄목으로 말이다. 형기를 다 마칠 때까지 보석도 허용치 않았다.
다양한 캐릭터의 시어머니 역할을 섭렵한 나영희가 이번에는 머리를 잔뜩 세우고 차율 로펌 대표로 등장했다. 로펌이라는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도 마다않는 시어머니. 그래서일까, 매번 어머니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아들 노율성(오민석 분)도 자신과 밀회를 나누던 여성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처치해 버리란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덕분에 해결사가 된 김사라에게 확실한 타깃이 생겼다.
▲ 내 남편과 결혼해줘 |
ⓒ TVN |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인생 2회차를 사는 주인공들의 '복수'를 그린 드라마다. 죽음으로부터 시간을 거슬러 10년 전으로 돌아온 강지원(박민영) 앞에 벌어진 일들이 여전히 복잡하기만 하다. 그 중에서도 끔찍한 건, 자신을 죽인 남편 박민환(이이경 분)과 정수민(송하윤 분)이 여전히 자신의 애인이자, 절친이라는 것. 그래서 결심한다. 이번에는 자기 대신 정수민과 박민환을 결혼시키겠다고.
다시 돌아온 생에서도 박민환은 강지원에게 청혼한다. 다이아몬드인 척하는 유리 반지를 내밀며, '가족'을 운운하다. 인생 2회차에서도 예비 시어머니 김자옥(정경순 분)은 달라지지 않았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만난 김자옥은 "나때는 남자가 주방에 들어오는 건 상상도 못했어"라며 아들 박민환을 하늘처럼 모시는 며느리를 원한다.
하지만, 강지원이 이번엔 그 시어머니의 고질적 '시월드' 병을 역이용한다. 남자가 주방에 들어오는 건 상상도 못했다는 김자옥에게 "지금은 그때가 아니니까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가 하면, 자신과 결혼하길 원하는 박민환의 결심을 바꾸기 위해 상견례 자리를 이용한다.
자기 아들이 최고라고, 자기 아들만 사람처럼 여기는 예비 시어머니 김자옥 앞에 달라붙는 도발적인 복장을 하고 나타난 강지원은 말대꾸하는 것도 모자라 이 결혼을 엎겠다고 말한다. '빌런' 시어머니에게 통쾌하게 한방 먹인 것이다.
▲ 밤에 피는 꽃 |
ⓒ MBC |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김자옥이 현대판 고루한 시월드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MBC <밤에 피는 꽃>의 유금옥(김미경 분)은 가문과 명예와 체면을 앞세운 시어머니의 전형이다.
그녀는 하나뿐인 아들을 혼롓날 잃었다. 15년째 수절 과부인 며느리만 남은 옆에 남은 처지이다. 그래도 기댈 것이라면 그 며느리로 인해 '열녀문'을 하사받아 가문의 영광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다.
<밤에 피는 꽃>은 낮에는 15년차 수절과부이지만, 밤만 되면 검은 복면을 하고 담을 넘어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의적 조여화(이하늬 분)의 이야기이다. 드라마는 조여화의 선행과 그녀와 얽힌 박수호의 관계를 그리지만, 이야기는 그런 두 사람을 넘어 선왕의 독살 사건과 거악의 척결을 주요 서사로 삼는다.
매회 사람이 죽어나가고 아이들이 납치되는 심각한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가운데, 묘하게도 유금옥과 조여화의 해프닝이 드라마의 숨통을 틔여준다. 덩치 좋은 며느리에게 하루 한 끼만 먹도록 하고, 매일 사당에서 곡을 시키며, 그도 모자라 가마에서 내리는 연습까지 시키는 깐깐한 시어머니의 모습이 웃프다.
담을 넘고, 무리 지어 덤비는 왈짜들도 겁내지 않는 여화가 유일하게 이 시어머니 앞에서만은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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