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살다 간.... 천재 아티스트의 데뷔 앨범 '티저' [B메이저 - AZ 록 여행기]
[최우규 기자]
13살에 밴드 시작, 24살 때 세계적인 밴드 가입, 25살 사망. 딥 퍼플(Deep Purple)에 몸담았던 토미 볼린(Tommy Bolin)의 인생 한 줄 요약이다. 최고의 연주자들마저 탐내던 재능을 가졌지만, 콤플렉스와 약물중독에 무너졌다. 그의 막판 10년은 영화보다 극적이다.
미국 아이오와 수 시티(Sioux City) 출신인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등 로큰롤 스타를 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처음에는 드럼 스틱을 잡았고, 건반악기를 배우다가 11살 때 기타를 독학했다. 콩과 옥수숫대만 보이는 아이오와의 척박한 음악 환경은 볼린을 낙담케 했다.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두 번 정학을 당하자, 그는 자퇴와 독립을 선언했다. 부모는 100% 지지하며 콜로라도 주 볼더 시로 향하는 편도 버스표를 끊어줬다.
29번, 80번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달린 볼린은 볼더에 닿았다. 1969년의 일이다. 여성 보컬 캔디 기븐스(Candy Givens)를 내세운 밴드 제퍼(Zephyr)에 들어갔다. 음반을 두 장 내고 볼린은 탈퇴하고 만다. 음악 성향 차이다.
볼린은 이 백수 시절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블루스 거장 앨버트 킹(Albert King)을 1년간 따라다니며 블루스를 배웠다. 재즈 록과 글램 록(glam rock, 화려하면서도 중성적 패션과 중독성 있는 전자 음악을 도입한 록)에 맛을 들인다. 100여 곡을 만들었다. 안타깝게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하루는 빌리 코범(Billy Cobham)이 볼린 아파트 문을 두드렸다. 그는 재즈 록 밴드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Mahavishnu Orchestra) 드럼 주자다. 밴드 멤버인 건반 주자 얀 해머(Jan Hammer)가 볼린을 소개했다. 코범 솔로 앨범 <스펙트럼(Spectrum)>에서 볼린은 거침없는 재즈 록 연주를 선보였다. 제프 벡(Jeff Beck)은 이 앨범을 듣고 감명을 받아, 자신의 앨범 <블로우 바이 블로오(Blow By Blow)> <와이어드(Wired)>에서 재연했다.
볼린 아파트 문을 다른 이들도 두드렸다. 1973년 하드록 밴드 제임스 갱(The James Gang) 멤버들이다. 볼린은 제임스 갱 본거지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시로 옮겼다. 볼린은 앨범 <뱅(Bang)> <마이애미(Miami)> 두 장을 내고 1972년 탈퇴했다.
1975년 볼린은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해를 보낸다. 난데없는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딥 퍼플(Deep Purple) 오디션 제안이었다.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가 탈퇴한 때였다.
딥 퍼플 드럼 주자 이언 페이스(Ian Paice)는 빌리 코범의 광팬이다. 페이스가 코범 앨범 <스펙트럼>을 듣고 딥 퍼플 보컬 데이비드 커버데일(David Coverdale), 건반 주자 존 로드(Jon Lord)에게 소개했다. 로드는 "엄청난 앨범이다. 기타가 미쳤다"라고 극찬했다.
딥 퍼플 오디션에는 2명이 응시했다. 볼린과 험블 파이(Humble Pie) 출신 데이브 클렘프슨(Dave Clempson)이다. 클렘프슨도 연주는 뛰어났다. 리치 블랙모어를 대신해야 한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단지 뛰어나서는 안 된다. 독창성과 견고한 음악적 자아를 가져야 했다. 딥 퍼플 멤버들은 볼린과 4시간 동안 잼(즉흥 연주)을 하고는 그를 택했다.
▲ 토미 볼린 데뷔 앨범 티저 앞면 커버 음악 신동 토미 볼린이 25살에 낸 데뷔 음반에는 그가 섭렵한 음악적 성취가 잘 들어있다. |
ⓒ 최우규 |
볼린 앨범 <티저>는 그간 익혀온 음악의 집대성이다. 로큰롤, 사이키델릭록, 하드록, 재즈록, 블루스록에 라틴 음악, 자메이카의 레게까지. 넘치지 않고 꼭 필요한 감정을 회칼로 치듯 썰어내 제시한다. 오마카세(주방장 특선) 요리 한 상 같다.
A면 첫 곡은 강렬한 기타 리프로 시작한다. 로큰롤 '더 그라인드(The Grind)'는 볼린 음악의 뿌리를 들려준다. 짱짱한 베이스 라인 위에서 볼린 기타는 부기와 글램 록 사이를 오간다. '홈워드 스트러트(Homeward Strut)'는 연주곡이다. 엇박으로 이어지는 드럼이 두드러지는 펑키한 재즈록. 리드 기타뿐만 아니라 리듬 기타에서 선보이는 볼린의 기타 스트로크가 감칠맛 난다. 아련한 피아노로 시작하는 발라드 '드리머(Dreamer)'에서는 노래와 기타 솜씨를 뽐낸다. 중반의 기타와 피아노 솔로는 발라드도 드라마틱하게 구성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라틴 록 '사바나 우먼(Savannah Woman)'에서는 재즈 기타 연주자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 영향이 느껴진다. 국내에서는 1989년 소피 마르소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비누 광고 배경음악으로 써 친숙하다. 아주 요염한 곡이다.
B면 첫 곡 '피플, 피플(People, People)'은 레게 틀 위에 하드록, 라틴 박자, 솔-재즈를 담았다. 데이비드 샌본(David Sanborn)의 색소폰과 얀 해머 키보드는 소리를 낮춘 듯하지만, 화려한 기교를 뽐낸다. '마칭 파우더(Marching Powder)'에서도 해머, 샌본과 의기투합한다. 초반부터 강렬한 기타 연주로 시작해 "달려보자"라고 선언한다. 베이스 솔로, 드러밍 등 멤버들이 기량을 뽐내도록 곡이 구성돼 있다.
▲ 토미 볼린 데뷔 앨범 티저 뒷면 커버 음악 신동 토미 볼린 데뷔 앨범 뒷면. 라이선스 앨범 뒷면이다. |
ⓒ 최우규 |
볼린은 이 앨범을 내고도 딥 퍼플에 집중했다. 그게 문제였다. 공연 때마다 관중들은 "리치 블랙모어는 어디 있느냐"면서 야유를 퍼부었다. 뻔뻔하지 못하고 예민했던 이 청년은 약물에 더 기댔다. 연주가 잘 될 리가 없었다. 딥 퍼플은 1976년 7월 해산했다.
볼린은 두 번째 솔로 앨범 <프라이비트 아이스(Private Eyes)> 작업에 들어갔다. 실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공연장을 찾아다녔다. 1976년 12월 3일 마이애미에서 열린 제프 벡 공연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호텔에서 파티를 하다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마약과 알코올 과다 복용이 사인이었다.
신동에서 거장으로 거듭나지 못했지만, 음악계는 그를 잊지 않았다. 동료와 후배 아티스트들은 그를 추모하는 앨범 발매와 공연을 지속한다. 볼린은 콜로라도와 아이오와 음악 명예의 전당에 모두 들어갔다. 자격은 차고 넘친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