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 낮아서 학대 모른다니…" 선처 결심했던 주호민, 마음 바꾼 이유
"장애인학급 특수성 고려해 녹취록 증거 인정"
웹툰 작가 주호민 씨의 아들 학대 혐의를 받는 특수 교사가 유죄 판결을 받은 가운데 주씨가 재판에 임해온 심정을 털어놓았다. 주씨는 사건 초반 교사 A씨를 선처하겠다고 했다가 입장을 바꿔 유죄 탄원서를 제출한 이유에 대해 "선처를 결심하고 만남을 요청했는데 변호사를 통해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주씨는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선처 탄원서가 아니라 고소 취하서를 작성하라고 하더라"며 "또 몇개월 동안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정신적인 피해도 받았으니 그것에 대한 위자료를 달라고 했다"고 했다. 이어 "당황해서 답신을 못 드렸는데 다음날 두 번째 요구서가 왔다"며 "어제 했던 금전 요구는 취하할 테니 대신 자필 사과문을 쓰라는 내용"이라고 했다. 주씨는 "사과를 받은 적도 없고 아무런 연락도 없었는데 사과를 받았고 학대의 고의성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사과문을 쓰라는 요구"라며 "모두 형량을 줄이기 위한 단어들이어서 그때 선처의 의지를 접고 끝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론의 뭇매 때문에 힘들었던 심정도 털어놓았다.
주씨는 "아이의 장애 특성이 굉장히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로 나올 때, 예를 들어 '주호민 아들 여학생 앞에서 바지 내려' 이런 기사가 나오는 게 힘들었다"며 "바지를 내리는 것은 어떠한 목적성이 없는, 자폐 아동이 그냥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평소에 사타구니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런 게 기사로 나오는데 저희 아들은 사타구니 어감 자체가 재미있어서 중얼댄 것뿐"이라며 "그런데 장애가 있는 9살짜리를 성에 매몰된 것처럼 보도하는 게 너무 끔찍하더라"고 호소했다. 주씨에 따르면 당시 9살인 그의 아들은 4~6세 정도의 지능 발달 정도를 가졌다.
주씨는 "상대측 변론 중에 '아이의 지능이 학대 사실을 인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학대가 아니다'라는 논변이 있더라"며 "말 못 하는 강아지도 분위기를 읽는데 지능이 낮아서 학대를 모를 것이라니 장애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발언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사건 초기 침묵을 지킨 이유로는 "사건 초기에는 어떤 비판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입장문을 쓴다거나 하는 식의 대응을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오히려 더 많은 비난들이 쏟아지고 그 해명을 납득을 시키지 못했다"며 "그 과정에서 아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다 보니까 온전히 재판에 집중하고 판결이 난 후에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전날 수원지법 형사9단독(곽용헌 판사)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특수교사 A씨에 대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이와 관련해 백성문 변호사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1심 재판부는 아동학대가 있었다는 취지로 본 것"이라며 "선고유예는 재판단계에서 유죄 판결이 나왔으나 실질적인 처벌은 없는, 상징적인 판결로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지열 변호사는 같은 라디오에서 "선생님측은 아이들을 대하다가 나온 심한 말이 혼잣말이었을 뿐 상대가 있는 게 아니었다는 입장"이라며 "반면 재판부는 '너 싫어'라는 표현이 상대방을 특징지어 한 것이므로 혼잣말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특수교사인데 아동학대 판결을 받으면 안 되니 변호인 측이 '사실상 사회적 사망선고'라는 표현을 썼다"고 설명했다.
이번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로 작용한 것은 주씨 부부가 아이의 가방에 넣어둔 녹음테이프였다. 당초 당사자의 동의 없이 몰래 녹음한 것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으나 재판부는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예외적인 상황을 고려해 증거로 채택했다. 백 변호사는 "이 아이가 4살 때부터 자폐성 장애로 등록돼있었고 학급에 있는 아이들도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라며 "그러면 학급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라고 했다. 양 변호사는 "인터넷에 '아이 녹음기', '유치원 녹음기'를 검색하면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은 통신비밀보호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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