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잡는다더니…'정책 충돌'에 주담대, 한달새 4조 늘어

임철영 2024. 2. 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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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담대 한달새 0.8%↑…가계대출 잔액 9개월째 증가
정책대출 상품·서비스 잇달아…금융권 '경쟁적 금리인하'
가계부채 총량관리 vs 가계 이자부담 완화
상반기부터 '스트레스 DSR' 시행

"가계대출이 증가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 수준일지 예상 못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100%를 웃돌면서 한국경제의 뇌관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가계부채 규모가 정부의 관리 의지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규모는 지난해 5월부터 증가세로 전환한 이후 9월부터 더욱 가파르게 늘어났고 올해 들어 다시 3조원가량 불어난 것이다.

올해 1.5~2% 증가율로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고 공언한 정부와 금융권의 목표가 연초부터 위협을 받으면서, 일각에서는 목표가 서로 다른 가계 이자부담 완화 정책과 총부채상환원리금(DSR) 규제 강화 정책 간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95조 3143억원으로 전월 692조 4094억원보다 0.42%(2조 9049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가계대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529조 8922억원에서 0.83%(4조 4329억원) 늘어난 534조 3251억원을 기록했다.

9개월째 이어진 가계대출 증가 추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더욱 가팔라졌다. 지난해 1월 688조 6478억원에서 4월 677조4691억원까지 떨어졌던 가계대출 잔액은 5월 677조 6122억원으로 증가한 이후 지난달까지 9개월 동안 17조 8000억원 늘었다. 전월 대비 증가율로 보면 9월부터 증가세가 확연하다. 지난해 10월 잔액은 9월에 비해 0.54% 늘었고, 11월은 이보다 0.1%포인트 높은 0.64%를 기록했다.

잇단 정책대출 상품·서비스…대출 갈아타기로 '경쟁적 금리인하'

가계대출 증가의 배경에 각종 정책대출 상품과 금리 하락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디딤돌대출과 보금자리론 등 정책대출 상품을 출시한 데 이어 지난해 5월부터 금융권과 함께 가계 이자부담을 낮추겠다는 목표로 신용대출 갈아타기 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 1월에는 갈아타기 서비스를 주담대와 전세대출로 잇달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권 금리경쟁이 촉진, 일반 신규 주택담보대출에서도 최대 1.4%포인트까지 금리가 떨어지는 사례가 확인되기도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디딤돌대출, 보금자리론을 비롯한 정책대출 상품 영향으로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늘었다”면서 "시중금리가 이미 ‘고점’을 지났다는 기대감도 반영돼 대출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은행의 고정금리 대출(혼합형)상품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 5년물의 금리가 하락하면서 해당 대출을 찾는 경우가 많다"면서 "새학기가 시작할 때 자녀 교육 등으로 이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 수요,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 등도 일부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올해 상반기부터 시행되는 '스트레스 DSR'을 앞두고 미리 대출을 받아 놓으려는 수요도 유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늘어난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면서 오는 26일부터 은행권 주담대에 '스트레스 DSR'을 우선 적용하고, 6월에는 은행권 신용대출과 저축은행 등 2금융권 주담대로 확대하기로 했다. 하반기부터는 금융권의 모든 대출에 적용한다. 다만 급격한 한도 축소에 따른 부작용을 감안해 상반기에는 과거 5년간 최고금리와 현재금리 차이로 산출된 스트레스 금리의 25%를, 하반기에는 50%만 적용한다. 내년부터는 산출된 가산 금리를 100% 반영한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DSR 규제를 강화하기 직전에도 대출 수요가 급증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면서 "이번 '스트레스 DSR' 시행을 앞두고 대출액 축소를 우려한 수요도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가계부채 총량관리 vs 가계 이자부담 완화 '정책 충돌?'

지난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5%로 국제금융협회(IIF)가 가계부채를 조사하는 34개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까지 9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계대출 증가세가 올해까지 계속된다면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가 내놓은 가계빚 관리계획도 지켜질지 미지수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들은 지난달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1.5~2%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금융당국에 전달했다.

규제 강화를 앞두고 막판 대출 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정책 효과로 시중 금리가 하락해 되레 수요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 DSR 규제에서 빠지는 27조원 규모의 신생아 특례대출이 올해 추가 시행됐고,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 대책까지 나와 예의 주시해야 하는 변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요 금융지주가 올해 가계부채 증가폭을 2% 이내로 제시를 했는데 일부 지주의 경우 1월만 보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며 "그간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 정부 정책이 대출 수요를 일부 자극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서민 실수요를 위해 전세대출 규제는 풀었지만 분할 상환 비율을 높이는 등 강력한 가계부채 보완대책을 내놓을 예정인 24일 서울 강남구 한 시중 은행 앞에 대출 관련 안내문이 걸려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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