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영운 "젊은 인재 살려야 '국가 성장력' 회복"
"젊은 세대 도전할 혁신의 장 마련하겠다"
"정쟁 멈추고 신성장 모멘텀 역량 모아야"
먼저 질문을 꺼낸 것은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사장(59)이었다. 자리에 앉기 전부터 '젊은 세대가 정치를 바라보는 인식', '2030세대가 정치에 실망한 이유', '젊은 친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문제' 등 물음을 쏟아냈다. 그는 '젊은 인재'를 살려야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면서 "청년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도전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주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공영운 전 사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나 '정치 입문'의 계기로 두 가지 수치를 제시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유를 숫자로 답한다면 1.4%의 문제에 대한 3%라는 대안"이라며 "1.4%까지 떨어진 경제 성장률을 3% 수준의 질적 성장으로 이끄는데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4%는 지난해 경제 성장률이다. 코로나19 사태 등 외부 요인이 있던 시기를 제외하면, 6·25전쟁 이후 최저 수준으로 평가된다. 공 전 사장은 "지갑은 얇아지는데 물가는 오르고, 젊은 사람들은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 고민"이라며 "자영업자는 여러 사람과 교류하며 영역을 넓혀야 하는데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경제가 어렵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의 거듭된 다툼,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 등 이슈가 터지면서 정치권에 대한 불만과 실망이 폭발했다고 공 전 사장은 진단했다.
그는 "처참한 경제 성적표보다 충격적인 건 책임 있는 사람들의 태도"라며 "보통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정작 중요한 (민생) 문제는 따로 있는데 여야 할 것 없이 정쟁에 치중했다"고 비판했다. 경제 악화 등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대해서는 '에너지를 국가적 어젠다에 집중시켜 국론을 모으는 리더십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당을 향해서도 "정부를 견제하지 못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여당과) 함께 정쟁에 매몰된 모습만 보여준 건 반성하고 돌아봐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 이끈 '전략기획통'…"경제 대전환 이뤄야"
공 전 사장은 1964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진주 동명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문화일보 공채 1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05년 현대차 전략개발팀 이사대우로 자리를 옮겼고, 특진을 두 차례나 거듭하는 기록을 세우면서 '전략기획통'으로 자리매김했다. 저성장 탈출의 해법으로 미래차 등 신기술 확보에 기반한 '혁신 성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글로벌 연결망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로 '해외정책팀 신설'을 기획한 게 성과로 꼽힌다. 국가별 정책·규제 등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막대한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현대차가 진출한 9개 국가의 수도마다 팀을 만들어 현지 변호사·전문가·자동차 회사 간 연결망을 조율하도록 했고, 현대차가 세계 무대로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했다.
공 전 사장은 "신경망처럼 세밀하게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며 "단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이런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테면 미·중 갈등, 공급망 재편 등을 두고, 장기적 차원에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대응할지 전략을 짜는 것이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며 "그런 역할을 해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차 재임 기간 55개 국가를 다녀본 경험을 소개하며 "여러 선진국의 카운터파트를 상대하며 절실하게 피부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우리 인재들이 세계 무대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며 "경제 구조의 대전환이 필요한 이 시점에서 우리가 돌파구를 만들어 줘야 한다. 청년과 미래세대가 올라설 수 있도록 발전의 동력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R&D 예산 오히려 늘려야…신기술이 곧 돌파구"
공 전 사장은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감축을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 R&D 시스템은 정부가 투자하는 과제에 민간 예산이 결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컨대 국가 예산을 줄이면 민간 측의 예산까지 2~3배의 감축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물론 낭비를 줄이면서 효율성과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면서도 "산업의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 기술 확보를 위해 획기적으로 투자를 늘려야 한다. 돌파구를 먼저 찾는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의제 전환'을 당부했다. 공 전 사장은 "경제 시스템에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며 "미래세대를 위한 의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고 했다. 공정한 분배와 복지를 이야기하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신성장 모멘텀' 확보를 위해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권에서 정책·경제 이야기를 하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이슈가 될 만한 일을 건드려야 주목을 받는 것 같다"며 "민주당이 그런 현실에 휘둘리지 않고 청년들을 위해 역량을 집중한다면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사장과의 일문일답
-정치 입문을 결단한 계기가 있나.
▲4개월 전 민주당에서 연락받고 여러 번 고사했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 그것을 가장 고민했다. 당에서 집요하게 설득했고, '정치보다 경제 현장에서 경험을 갖춘 사람이 들어와서 폭을 넓혀줘야 한다'는 논리에 마음이 움직였다. 특히 1.4%라는 최악의 경제 성장률을 3%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이재명 대표의 기자회견 장면을 봤는데, 똑같이 3%라는 성장 목표를 선포하더라. 당에 이 정도 공감대가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일괄 삭감했던 걸 비판했다.
▲양적으로 성장을 밀어붙이는 시기는 지났다. 체질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혁신기술이 새로운 성장의 출발점이다. 신기술을 통해 새로운 산업으로 연결되고, 일자리가 달라지고, 우리 생활과 소통 방식까지 바뀌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격차가 발생한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전통과 저력을 가진 유럽을 십수 년 사이 얼마나 앞질렀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도 핵심 기술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혁신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할 때다.
-'경제 전문가'로 여의도에 입성했던 홍성국 의원이 정쟁에 대한 회의감을 토로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런 고민은 없나.
▲경제 시스템을 전환하기 위한 정책을 아무리 강조해도 (정치권의) 반응이 없던 것에 좌절감을 느낀 것 같다. 불출마 회견문을 잘 읽어 보니 '우리나라가 대전환을 하기 위한 골든타임이 5년 남았다'는 구절이 눈에 딱 들어왔다. 골든타임이란 건 그 시기가 지나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골든타임이 끝나기 전에 미래세대를 위해 돌파구를 뚫는 노력을 누군가는 계속 이어가야 하지 않겠나.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없지만, 도전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 2년간 투옥됐던 이력이 있다. 그때의 경험이 정치 참여를 결심하는 데 영향을 줬나.
▲83학번이다. 1986년 대학교 4학년 때 검거됐다. 이듬해 민주화가 이뤄졌다. 그 시절 대학 다닌 사람 중에 이른바 '민주화'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모든 시민이 민주화 열망으로 뜨거웠다. 투옥 경험이 특별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수년 전 '미얀마 사태'를 바라보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 국민들이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의 자녀들이, 미래를 이끌어 갈 청년들이 거리에서 운동을 하다가 비참하게 끌려가지 않았겠나.
-국민의힘으로 합류한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과 한날한시에 영입 발표가 나오다 보니, 비교 내지는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대결 구도는 맞지 않다. 고동진 전 사장도 자신의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내지 않았나. 오히려 통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삼성과 현대 회장이 젊은 분들로 바뀌었을 때 사장들이 '각 회장이 교차 방문하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 서로의 연구개발 현장을 찾아 미래산업에 관해 토론했다. 그게 언론을 통해 알려졌는데, 18년간 회사에 다니면서 대중의 반응이 이 정도로 열렬한 건 처음이었다. 삼성과 현대도 세계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위해 협력하는 시대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비례대표가 아니라 수도권 지역구 출마를 희망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당에서도 비례를 고려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사람들의 목소리, 지역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걸 바탕으로 정책을 구상하고 의제를 제시해야 한다. 어느 지역이든 평범한 일상부터 경제, 생활, 교육, 문화 등 하나의 작은 국가처럼 모든 단면이 녹아 있다. 그 속에 있는 사람들과 매일 접촉하면서 목소리를 듣고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 수도권에서 40년 정도 살았으니, 당에서 그런 부분을 반영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지역구 등) 나머지는 당에 맡겼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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