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日·유럽 흔든 美 상업용 부동산…금융권 부실 폭탄 터지나

뉴욕=권해영 2024. 2. 2.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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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RE 손실' 日·스위스銀 CEO 사임
상업용 부동산 부실, 금융위기 뇌관 우려
WSJ "3개 대륙이 타격"…블룸버그 "고통 이제 시작"

미국 상업용 부동산 침체로 인한 은행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금융권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 독일 은행까지 미 상업용 부동산 대출과 관련된 손실을 발표하자 1일(현지시간) 미국 현지 언론들은 이를 비중 있게 보도하면서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세계 각국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상업용 부동산 손실로 3개 대륙 은행이 타격을 입었다"며 "사무용 부동산 문제의 고통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짚었다. 블룸버그통신도 "뉴욕에서 도쿄 은행까지 타격을 입었다"며 "고통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전했다.

美 상업용 부동산 냉각에 日·유럽 은행장 사임

주요 외신에 따르면 전날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 손실을 발표한 일본 아오조라은행은 최고경영자가(CEO)가 오는 4월1일 사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은행이 15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순손실을 기록한 가운데 이뤄진 경질성 인사다.

스위스 은행인 줄리어스 베어도 상업용 부동산 부실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필립 리켄바허 CEO가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이 은행은 파산한 오스트리아 부동산 기업인 시그나그룹에 제공한 7억달러 규모의 대출을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며 순이익이 50% 넘게 급감했다고 밝혔다. 문책 차원에서 시그나그룹 대출에 관여한 조직은 폐지하기로 했다.

일본과 스위스 은행장이 물러나기로 한 공통적인 배경에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이 자리하고 있다. 2022년 3월부터 시작된 고강도 금리 인상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재택근무 확산으로 공실률이 치솟자 미 상업용 부동산 가치는 빠르게 급락했다. 로스앤젤레스(LA) 소재 에이온센터의 경우 최근 1억4780만달러에 매각돼 2014년 대비 가격이 45% 급락했다. 반면 기준금리는 2022년 초 0%대에서 현재 상단 기준 5.5%까지 치솟았다. 차입 비용이 급등하고 공실률 확대로 매매 시장까지 얼어붙자 차주들이 원리금을 갚지 못하기 시작했다. 미 상업용 부동산 시장 냉각이 관련 대출을 공급한 금융권으로 본격 전이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아시아, 유럽 지역 은행들은 미 상업용 부동산 대출과 관련한 손실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전날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는 지난해 4분기 2억5200만달러의 순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직전 분기에는 1억7200만달러의 순이익을 달성했지만 1개 분기 만에 적자 전환한 것이다. 이 은행은 두 건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로 1억8500만달러의 손실을 보았고, 추가 손실에 대비해 5억달러 이상을 대손충당금으로 쌓았다. 독일 도이체방크도 미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을 우려해 대손충당금을 1억3300만달러로 2022년 말과 비교해 5배 늘렸다.

은행 주가는 폭락했다. NYCB 주가는 전날 37.6% 급락한 데 이어 이날도 11% 넘게 하락했다. 일본 아오조라은행은 전날 도쿄증시에서 20% 넘게 급락하며 하한가를 찍었다.

2027년까지 2조2000억달러 만기 도래…"상업용 부동산 위기 이제 시작"

문제는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은행 재무제표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금융권 부실로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대출 부실로 파산하는 은행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미 국채 투자 손실로 인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로 지난해 3월 문을 닫았던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재연될 수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렙에 따르면 2025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5600억달러다. 2027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 규모는 2조2000억달러에 이른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무디스는 만기가 도래하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3건 중 1건꼴로 대출 연장이나 재융자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한다. 상업용 부동산 디폴트(채무불이행)는 대출을 공급한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진다.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미 상업용부동산저당증권(CMBS) 시장은 이미 부실이 표면화되고 있다. 트렙은 8000억달러 규모의 미 CMBS 시장의 연체율이 지난해 11월 기준 6%로 1년 전(1.7%)보다 크게 올랐다고 집계했다.

대출 부실 우려가 커지자 일부 은행들은 지난 2년간 만기가 도래한 대출을 단기 연장하는 방식으로 부실이 드러나는 시기를 인위적으로 늦춰 왔다. 구겐하임파트너스의 앤 월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난달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사무실 부문에서 상업용 부동산발 고통은 이제 막 시작됐다"며 "중소형 은행들은 향후 2년 이내에 재융자를 받으려는 차주들에게 상당한 규모의 대출을 하게 될 것이고, 이는 '순차 침체(rolling recession)'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상업용 부동산 침체가 시차를 두고 은행권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 같은 대출 부실은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대형 은행보다 중소형 은행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JP모건에 따르면 미 중소형 은행은 전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28.7%를 보유하고 있다. 대형 은행이 보유한 비중은 6.5%에 그친다. 미 상업용 부동산 손실에 노출돼 은행장이 사임한 일본 아오조라은행도 자산 규모 550억달러의 중형 은행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더 큰 폭으로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IMF는 지난해 10월 글로벌 금융 안정 보고서를 통해 "잠재적으로 자금조달 조건 강화,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 은행 손실과 함께 거시금융 안정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세인트제임스플레이스자산운용의 저스틴 오누에쿠시 CIO는 "상업용 부동산과 지역은행 사이의 관련성이 2024년의 '꼬리 위험'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며 "상업용 부동산, 주택, 은행 부문에 걸쳐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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