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아무것도 안할래”…주호민 판결, 교사 현실 반응
주호민, 개인 방송 통해 “죽으려 했다” 울먹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자폐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에 대해 법원이 유죄를 인정한 데 대해 현직 교사들 사이에서는 허탈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육 현장이 판결 이후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2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따르면 주호민 사건 판결 결과를 두고 전날부터 여러 의견들이 오갔다. 특히 ‘공무원’ ‘서울특별시교육청’ ‘인천광역시교육청’ 등으로 소속이 표기된 현직 교사들이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글이 이목을 끌었다.
서울시교육청 소속 A씨는 “더욱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며 “어차피 1년 보고 말 애들인데 듣기 싫은 말 안 하고 안전하게 지내야겠다. 평생 끼고 살 부모들이나 오래 괴로우시라”고 말했다.
같은 소속인 B씨는 “주호민씨는 돈 많아서 외국 나가 살 수도 있고 홈스쿨링이나 대안학교도 갈 수 있겠지만 결국 피해는 다른 특수학생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소속 C씨도 “앞으로 다른 학생 때리고 다니는 애들이 있어도 녹음기 무서우니 ‘하지마’ 말만 하고 그 이상의 교육은 하지 말아야겠다”며 “피해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부터 살아야 하니”라고 적었다.
또 다른 서울시교육청 소속 교사들도 “앞으로 특수학생들도 통합학급에서 돌발행동을 하거나 나에게 욕을 하거나 신체적 폭행을 하면 무조건 교칙대로 해야겠다. 애플워치로 항상 녹음하며 다니고” “난 특수교사는 아니지만 통합학급 되면 (장애 학생이) 다른 애들한테 피해줘도 입 다물고 손 안 댈 거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현재 특수학급 담임을 맡고 있다는 인천시교육청 소속 교사 D씨는 “정도가 심한 애들은 특수학급이 아니라 특수학교로 보냈으면 좋겠다”며 “수업 진행이 안 되고 같은 반 애들도 때리고 아비규환이다. 애들 자체가 일반학교에서의 규칙을 지키기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E씨는 “우리 반 장애아가 다른 애를 폭행했을 때 중재도 하고 치료비 지원받을 수 있게 알아봐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장애아를 도와줄 필요 없이 최대한 무시하고 학부모들끼리 처리하게 하는 게 답이라는 걸 많은 교사들이 느꼈다”면서 “장애아들은 앞으로 학교 다니기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역시 특수교사라는 공무원 F씨는 “애가 화장실 벽에 똥 칠한 거 뒤처리하고, 애들한테 밀려서 허리 물리치료 4개월 받고, 다리 등을 하도 물려 흉터도 많은데 ‘밉다’라는 말 때문에 (특수교사가) 하루아침에 전과자가 되는 걸 보니 진짜 현타 온다”고 토로했다.
이어 “불법녹음도 (특수학생은) 예외로 치부되면 수업 내내 내가 혹시 말실수했을까 봐 마음이 불안할 것 같다”며 “(주호민 특수교사의 경우) 교사로서 부적절한 언행이었지만 아동학대까지 가야할 문제였을까 싶다. 그 뒤에 교사가 짊어질 낙인과 전과기록이 너무 무거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럴거면 차라리 아동학대의 범위를 아주 구체적으로 정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임태희 경기도교육감도 전날 브리핑에서 “특수교사 유죄 판결에 대해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임 교육감은 “재판부가 여러 상황을 고려해 판단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몰래 녹음한 것이 법적 증거로 인정돼 교육 현장이 위축될까 우려된다”며 “이번 판결은 경기도 사건이지만 대한민국 특수교육 전체에 후폭풍을 가지고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 현장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라는 한탄의 말이 들린다”면서 “특수학급뿐만 아니라 장애학생과 일반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는 통합학급을 맡지 않으려는 교사들의 기피현상이 더 커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특수교육을 더 이상 확대하기 어려워지면 특수학생이 받는 공교육 혜택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교원단체들도 일제히 비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번 판결은 불법 몰래 녹음을 인정해 학교 현장을 사제 간 공감과 신뢰의 공간이 아닌 불신과 감시의 장으로 변질시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했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교육활동을 아동학대로 왜곡한 판결에 유감을 표한다. 교육 방법이 제한적인 특수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전날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특수교사에 대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교사 측 변호사는 1심 판결에 반발해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교사는 2022년 9월 13일 경기도 용인의 한 초등학교 맞춤 학습반 교실에서 주씨 아들(당세 9세)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아휴 싫어. 싫어죽겠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고 발언하는 등 피해 아동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는다. 주씨 측은 당시 아들 외투에 녹음기를 넣어 학교에 보낸 뒤 녹음된 내용 등을 토대로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한편 주씨는 이날 밤 트위치 개인 방송을 통해 “유죄가 나와서 기쁘다거나 다행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며 “아이가 학대당했음을 인정하는 판결이 기쁠 리가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아동학대 신고 사실이 알려져 비판 여론이 쇄도했을 당시 “기사가 나고 3일째 됐을 때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심하고 유서를 쓰기도 했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선처를 통해 사건을 원만히 풀어가겠다고 밝혔다가 이를 철회한 건 교사 측에서 보낸 서신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주씨는 “선생님을 만나 오해도 풀고 사과도 받으려 만남을 요청했는데 거부됐다”면서 이후 특수교사 측으로부터 고소 취하서 작성, 물질적 피해보상, 자필 사과문 게시 등의 요구사항이 담긴 서신을 받아 선처의 뜻을 거두게 됐다고 했다.
자기 아들이 특수학급으로 분리된 이유로 꼽힌 ‘신체 노출’에 대해서는 “(아들이) 좀 안 좋은 행동을 했다”면서도 “다른 여학생이 보라고 바지를 내린 것이 아니고, 아이가 바지를 내렸는데 여학생이 봤다”고 주장했다. 갑작스럽게 자녀를 전학시킨 데 대해선 특수학급이 과밀 상태로 운영되면서 학교의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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