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사진까지 내건 '비둘쥐' 전쟁…스페인은 불임 사료 뿌렸다

정은혜 2024. 2.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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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낮 서울 합정역 교차로 인근을 배회하는 비둘기의 모습. 정은혜 기자

정오가 되고 교차로에 볕이 들자 비둘기 무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강공원 쪽에서 날아온 39마리의 비둘기는 인도와 가로등 사이를 오가며 일광욕을 하거나 먹이를 찾았다. 인도는 흰 배설물 자국으로 가득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교차로의 풍경이다.

합정역은 최근 비둘기의 역사 내 진입을 막기 위해 출입구에 비둘기 천적인 독수리 사진을 붙여 화제가 된 곳이다. 6년째 합정역사 내 매장에서 일했다는김모씨는 “최근 한두 달 사이, 비둘기가 역사 안을 걸어 다니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1월까지 합정역에서만 비둘기 관련 민원이 8건 접수됐다. 공사 측 관계자는 “합정역 근무자들이 ‘이거라도 해 보자’는 마음으로 사진을 20일쯤 붙였는데, 시간이 좀 더 지나야 효과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hatGPT의 DALL-E를 이용해 비둘기가 지하철 역사 내에 들어온 모습을 AI이미지로 만들었다.(왼쪽) 지난달 30일 낮 12시 합정역 1번 출구에 비둘기 진입을 막기 위해 부착된 흰머리독수리 사진(오른쪽). 정은혜 기자

비둘기 민원 급증…개체수 증가 영향


지난달 30일 낮 12시 서울 합정역 교차로 앞 비둘기. 정은혜 기자
비둘기와 인간의 불편한 동거는 최근 들어 더 심해지고 있다. 길거리는 물론 지하철 승강장 안까지 도심 어디에나 출몰하면서 불편함과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늘고 있다. 한때 평화의 상징으로 불렸던 비둘기가 ‘비둘쥐(비둘기+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가 접수한 비둘기 관련 민원은 2018년 1931건에서 2022년 2818건으로 4년 사이에 46%가 늘었다. 특히 서울 시민의 민원이 폭증했다. 2018년 434건이던 민원은 2022년 1315건으로 3배가 됐다.

이렇게 민원이 폭증한 건 사람과 부대끼는 비둘기의 개체 수가 세 배 가까이 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민원 발생지를 조사한 결과 2018년 3267마리였던 비둘기는 2022년 9498마리로 2.9배가량 증가했다.

김경진 기자

6000→29만 마리 ‘비둘쥐’된 평화의 상징


도시 비둘기는 1980년대 후반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 등의 행사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방사된 외래종 집비둘기 6000마리의 후손이다. 2021년 11월 국립생물자원관 연구 결과, 전국에 서식하는 집비둘기는 18만~29만여 마리로 추산됐다.

비둘기는 2~9월 사이 주택·건물·나무 등 다양한 곳에서 번식하면서 1년에 5개에서 최대 10개의 알을 낳는다. 환경 당국은 집비둘기가 도시에서 음식물쓰레기와 사람이 주는 모이 등을 먹으면서 개체 수가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집비둘기는 하루 1~2㎏을 먹어치울 만큼 먹성이 좋다, 잘 먹은 집비둘기는 한 해 5번까지 알을 낳는 등 번식력이 우수하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합정역 4거리 인근 비둘기가 자주 출몰하는 골목. 음식점 뒤편에 음식물쓰레기가 나와 있다. 정은혜 기자

비둘기는 강한 산성의 배설물로 건축물과 구조물 등을 부식시킨다. 집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려는 사람과 비둘기로 인해 불편감을 호소하는 사람 사이의 갈등도 크다. 이에 환경부는 2009년 비둘기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했지만, 먹이 급여 행위를 금지하는 법적 근거가 없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기 어려웠다.


먹이주기 금지법 통과…동물단체 “아사 정책” 반발


지난달 30일 낮 12시 서울 마포구 합정역 4거리 앞 비둘기. 정은혜 기자
그러다 지난해 12월 20일 이른바 ‘먹이주기 금지법’(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올해 12월부터는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특정 지역에서 특정 기간 동안 비둘기 등에 먹이를 주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환경단체는 이를 “이미 도심 생태계에서 사람에 의존하는 비둘기들을 굶겨 죽이자는 결정”이라며 개체 수 조절을 위한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국장은 “인간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이 들여온 동물의 생존권을 박탈하기보다는 공존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둘기 불임 사료를 도입해 비둘기에게 굶는 고통을 주지 않고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공공장소 34곳에 불임 사료를 뿌리는 자동급여기를 설치한 결과, 2019년 말 비둘기의 개체 수가 55% 줄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비둘기도 배고픔으로 인한 고통을 느낀다. 이미 효과가 확인된 불임 사료 도입을 열린 시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불임 사료를 비둘기가 아닌 다른 동물이 먹을 수도 있고,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 확인된 바 없어 중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먹이주기 금지가 ‘아사 정책’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환경 당국의 입장은 다르다. 최유성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는 “도심에 사는 참새 등 많은 조류가 인간의 도움 없이 살며 개체 수가 조절된다. 비둘기도 그렇게 살아야 생태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진격의 집비둘기에 야생 양비둘기 보존 어려워


토종 텃새 양비둘기. 도시가 아닌 야생 환경에 주로 거주하며 주로 처마 밑에 둥지를 튼다. 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국내에 100여 마리가 남은 야생 텃새 양비둘기(멸종위기 2급) 보존을 위해서도 집비둘기를 퇴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집비둘기와 달리 야생에 사는 양비둘기는 서식지를 잃으며 개체 수가 급감했다. 여기에 양비둘기가 집비둘기와 경쟁에서 밀리거나 함께 지내며 혼종이 늘어 보존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최 연구사는 “생태적으로는 집비둘기를 보호해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독수리 사진 효과 없어” 환경부가 권고한 비둘기 퇴치법


박경민 기자
환경부는 지자체에 배포한 집비둘기 대처 가이드라인에서 민원이 빈발하는 지역에 먹이를 주지 말고, 음식물쓰레기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안내문을 설치하라고 조언했다. 또, 조류기피제·시각적 장치(맹금류 모형) 등 퇴치제를 설치한 뒤에도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전문가 등과 협의해 비둘기 알 제거, 포획 절차를 수립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포획된 비둘기는 안락사 된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합정역 출입구에 맹금류 사진이 부착되어 있다. 연합뉴스

합정역에 붙인 ‘독수리 사진’은 퇴치 효과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유성 연구사는 “처음에는 비둘기가 사진을 보고 놀랄 수 있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비둘기 퇴치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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