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과 결혼"…가슴속 불길 따라간 두 영웅은 돌아오지 못했다
혹시라도 건물에 남아 있을지 모를 근로자를 찾기 위해 화재 현장으로 들어갔던 두 명의 젊은 영웅은 주검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시 신기동 제2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4층짜리 육가공업체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순직한 두 영웅은 경북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김수광(27) 소방교와 박수훈(35) 소방사다.
공장 건물에 불이 난 건 이날 오후 7시47분쯤. 소방서 11곳에서 장비를 동원하고 대응 2단계가 발령될 만큼 큰불이었다. 건물 4층에서 시작한 불은 삽시간에 건물 전체를 집어삼켰다. 순직한 두 소방관은 “건물 내에 고립된 근로자가 있을 수 있다”는 다른 근로자의 얘기를 전해듣고 4인 1조로 수색에 나섰다. 수색 중 불이 급격히 번져 두 소방관은 건물에 고립됐고, 건물이 무너지면서 변을 당했다.
소방본부 “3층 튀김기서 최초 발화 추정”
소방관 한 명이 1일 0시21분쯤 건물 3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어 오전 3시54분쯤 다른 한 명도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지점은 5m 정도 떨어져 있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가 두껍게 쌓여 수색에 시간이 걸렸다. 2020년 5월 사용 허가가 난 이 공장은 건물 전체가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져 불이 삽시간에 번졌고, 잔해가 많이 떨어졌다.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는 인력 348명, 장비 63대가 동원됐다.
순직한 두 소방관 중 김수광 소방교는 2019년 공개경쟁 채용을 거쳐 소방에 입문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소방공무원 사이에서도 취득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인명구조사 시험에 합격했고, 구조대에까지 자원했다. 박수훈 소방사는 특전사에서 근무하다 ‘사람을 구하는 일에서 지금보다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고 여겨 2022년 구조 분야 경력자 경쟁채용을 거쳐 임용됐다. 미혼인 박 소방사는 평소 “나는 소방과 결혼했다”고 말할 만큼 자기 일에 자부심이 강했다고 한다. 태권도 5단으로 사범 경력자이기도 한 그는 평소 인근 학교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지도하는 재능기부 봉사도 해왔다고 한다. 두 소방관은 특히 지난해 7월 경북 북부 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문경시와 예천군에서 실종자가 발생하자 68일간 수색활동에 참여했고, 실종자 발견에 공을 세우기도 했다.
배종혁 문경소방서장은 이들의 순직 소식을 전하며 울먹였다. 배 서장은 “희생된 대원들은 인명 수색과 화재 진압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소방 당국은 두 소방관의 시신 훼손이 심한 만큼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한 뒤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경북도는 장례를 경상북도청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영결식은 3일 문경실내체육관에서 거행하며, 5일까지 경북도청 동락관과 문경·구미·상주소방서에서 분향소를 운영한다. 경북소방본부는 이들의 국립현충원 안장, 1계급 특진, 옥조근정훈장 추서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문경시 산양면에 차려진 빈소에도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유족들은 몸을 가누지 못해 부축받거나, 두 소방관 이름을 부르며 부둥켜안고 울었다. 침통한 표정의 소방관들은 두 동료의 희생을 안타까워했다. 두 소방관과 함께 근무했던 팀원 김태웅(30) 소방사는 “(박)수훈이 형은 동기였고, (김)수광 반장은 나이는 어리지만 선배였다”고 소개했다. 이어 김 소방교에 대해 “퇴근하고도 계속 남아 훈련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로프를 올라탄다든가, 장비를 묶어서 옮기는 훈련을 한다든가”라고 기억했다. 박 소방사에 대해서는 “수훈이 형은 교육받을 때도 다 힘든데 먼저 장난을 치며 분위기를 더 좋게 하려고 했다”며 “‘힘든 거는 내가 형이니까 먼저 한다’고 말하던 동료였다”고 말했다.
경찰청 주도 화재 원인 수사전담팀 꾸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을 통해 “비보를 듣고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두 소방 영웅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빌고 유족 여러분께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또 “공동체를 위한 희생은 고귀하다”며 “두 소방 영웅의 안타까운 희생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할 이유”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수사도 본격화했다. 경북경찰청은 경북청 형사과장이 팀장인 수사전담팀을 꾸렸다. 경북소방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기관과 함께 진행할 합동 감식은 건물 안전진단을 마치는 대로 진행한다. 화재 발생 건물이 추가로 붕괴할 가능성이 커 당장 들어갈 수 없어서다. 경북소방본부는 브리핑을 통해 “3층의 튀김기에서 최초 발화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문경=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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