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윤석열표 퍼주기’가 통하지 않는 이유
여소야대 체제에선 성립 안돼
총선 앞두고 잇단 경제 대책
급조에다 내용·형식도 부실
문재인 퍼주기 비판했던 尹
초심 찾아야 국민 호응 얻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4일 충북도당 신년인사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는 권력을 갖고 있다. 우리의 정책은 현금이고, 더불어민주당(정책)은 약속어음일 뿐이다.” 집권당 정책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만 야당이 내건 안들은 말로만 그칠 것이란 얘기다. 기존 여야정 관계를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책의 실천력을 담보하는 게 입법이란 점에서 소수여당과 정부의 한계도 뚜렷하다. 극단적 대립으로 여야, 정부·야당 간 협의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은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을 앞두고 경제 대책이 남발되고 있다. 현금으로 볼 수 있을까.
1월 한 달간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민생토론회(7차례)에다 경제정책방향, 고위 당정협의회, 비상경제장관회의가 줄지어 나왔다. 굵직한 대책 20여건이 2~3일에 한 번 꼴로 발표됐다. 목록도 다채롭다. 국민의 ‘아침도 없는 삶’을 해결하기 위해 GTX를 이곳저곳에 개통하기로 했다. 1400만 개미투자자를 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을 쏟아냈다. 재건축, 소형주택과 관련한 규제도 헐어버리고 자영업자에게 각종 환급액을 안기겠다 한다.
총선용이란 지적에 대통령실은 발끈한다. 문재인정부의 퍼주기 신공과 비교하면 억울할 법도 하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등 각종 감세안과 자영업자 환급분, 규제 완화 등 지난달 발표된 대책의 규모는 10조원 안팎. 반면,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4·15 총선 직전 ‘전국 4인 가구 기준 100만원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발표했다. 여기에 든 돈만 14조여원이다. ‘현금-어음’ 비유가 아니라 실제 현금을 꽂아줬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11조700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도 이즈음 시중에 풀렸다. 현금성 지역사랑상품권이 저소득층, 노인, 아동에게 2조원가량 뿌려졌다.
하지만 윤석열정부가 형평성을 논할 처지인가. 임기 중 국가부채 400조원을 불린 전임 정부의 방만 행태를 바로잡고 건전 재정을 외치며 등장한 정부 아닌가. 상황도 차이가 있다. 4년 전에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으로 퍼주기 거부감이 적었다.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도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 지급하자”고 거들었다. 반면 지금은 나라 곳간 사정이 열악하다. 지난해 세수 손실분이 56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같은 총선용이라도 퍼주고 깎아주는 정책에 대한 비난이 지금이 훨씬 더하기 마련이다. 내로남불 비판도 필연적이다. 윤석열표 퍼주기가 호응받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정책 급조에 따른 내용과 형식의 허술함이다. 없는 살림에선 선택과 집중이 중요한데 난사 수준이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인 GTX를 충청·강원도까지 연결하고 10여년 후 착공될지 안 될지도 모를 D·E·F노선까지 꺼냈다. 금투세나 재건축 안전진단 폐지 등 야당 협조가 필요한 법 개정 사안이 다수인데 발표부터 앞세운다. ‘총선 앞두고 야당이 계속 외면하겠냐’는 식이다. 대책 발표 때마다 재원 마련이 가능할지에 대한 질문이 잇따른다.
이러니 스텝이 꼬인다. 금융위원회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던 공매도 입장을 번복해야 했다. ‘금투세’를 선진 세제라 하고 ‘대주주 양도세 완화’를 추진할 때가 아니라던 기획재정부는 난감해졌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인 주주 환원 미비와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물었는데 윤 대통령은 ‘상속세 개편’에 무게를 실었다. 한 경제 전문가는 방송에서 “상속세를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의 배경으로 설명한 부분은 (왜 그런건지)제가 공부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대통령이 온갖 증시 부양책을 들이민 1월 코스피 지수는 5.96% 떨어져 세계 최하위 수준이 됐다. 평소 같으면 시장이 들썩할 부동산 대책들이 나왔지만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1월 4주 기준 0.05% 하락했다. 대통령 지지율은 30%대 초반(한국갤럽)까지 미끄러졌다. 국민이 믿지 못하는 대책은 부도어음이지 현금이 아니다.
국민은 “방만 지출은 미래세대에 대한 약탈이다” “선거에 지더라도 재정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대통령의 신념에 환호했다. 문재인표 퍼주기를 따라하는 것은 윤석열답지 못하다고 본다. 공정과 정의를 외쳤는데 아내의 명품백 문제에 주저하는 모습에 민심이 돌아선 것과 같은 이치다. 초심이 답이라는 얘기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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