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기술’ 수소환원제철 첫발 뗐지만… 정부 뒷받침이 없다
포스코가 ‘꿈의 기술’로 불리는 수소환원제철 공법 개발에 첫발을 뗐다. 최근 포항제철소에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를 만들고 시험설비 구축을 위한 연구·조업·설비·엔지니어링·건설 전문인력을 한데 모았다. 2027년 연산 30만t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시험설비 준공을 1차 목표로 세웠다. 최근 관련 시행령 개정으로 수소환원제철이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돼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 적용이 가능해진 덕분에 급물살을 타게 됐다. 신기술 개발에 목말라 있던 국내 정유사도 숨통이 트였다. 지속가능항공유(SAF)를 생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만들어지면서다. 기존 사업으로는 한계에 직면한 정유 4사는 SAF를 포함한 친환경 연료 분야에 6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이처럼 정부와 국회가 뒤늦게나마 산업 ‘진흥’에 힘을 보탰지만 같은 기술을 개발 중인 경쟁국과 비교하면 정책 뒷받침이 한참 늦은 데다 지원 스펙트럼도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계에서는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만들거나 일본의 현금성 지원 같은 파격적인 투자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첨단산업 분야 투자 선순환 체계를 만들기 위해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재무 실적과 무관하게 세액공제금을 환급해주는 ‘다이렉트 페이’(Direct Pay·세액공제 직접환급)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많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는 세법 개정 후속으로 수소환원제철과 SAF 등 신기술 세액공제를 골자로 한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개정안을 오는 14일까지 입법예고했다. SAF는 이번에 처음으로 ‘신성장·원천기술’에 포함됐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하기 위해 수십조원의 투자를 집행해야 한다”며 “그나마 최근 세법 개정으로 세액공제 혜택을 받게 됐는데 투자비 수조원을 현금으로 주는 일본처럼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추세로 떠오른 SAF 사업도 우리는 늦은 편이다. 유럽연합(EU)은 내년부터 탄소중립을 위해 SAF 사용을 단계별로 의무화한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사업 기회가 넓어졌다. 문제는 미국과 일본 등에 비해 부족한 현금성 지원이다. SAF는 완제품 가격이 3배에서 많게는 6배 비싸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은 공장을 짓는 순간 현금을 주던데 우리 기업으로서는 부러운 정책”이라고 전했다. 일본 2위 정유사 이데미쓰고산은 오는 2026년 상업가동을 목표로 연간 10만㎘의 SAF 제조설비를 짓는다. 총사업비 457억엔(약 4020억원) 중 292억엔(약 2570억원)의 정부보조금을 받는다.
‘제2의 반도체’로 통하며 한국 기업이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이차전지(배터리) 산업 역시 대규모 선제 투자가 필수인 산업군에 속한다. 통상 전기차용 이차전지 10GWh당 최소 1조원을 투자해야 한다. 수율을 확보해 안정적으로 생산하기까지는 또 수년이 걸린다. 지금 당장 수주해야 10년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어 초기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차전지 업계에서는 투자세액공제의 직접환급이나 제3자 양도 제도 도입 요구가 높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은 법인세 공제 방식을 택하고 있어 투자 초기이거나 수익성 저조로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기업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적자 기업에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국내 이차전지 업체뿐 아니라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 등 소재 기업은 수년간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투자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이를 상쇄하는 방법이 현금성 지원이나 제3자 양도 제도라는 게 업계의 이야기다. 제3자 양도는 탄소배출권처럼 세액공제권을 금융회사나 다른 기업에 팔아 현금을 받는 것을 말한다. 공급망 주도권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미국처럼 ‘한국판 IRA’ 제도 도입 주장도 있다. 국내 배터리 핵심광물 제련 및 가공 기업에 세액공제나 보조금을 주자는 것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기간산업안정기금 활용률이 2% 남짓이라 자금 여력이 충분하다”며 “잠자고 있는 이 기금만 활용해도 이차전지 업체의 유동성이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석유화학 업계는 중국의 과잉생산과 저가 공세에 밀려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생산원가 절감부터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 확대가 관건이다. 일단 올해 상반기까지 한시 적용한 나프타 무관세를 상시화해 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역내 경쟁국인 중국·대만·일본 등은 무관세다. 수입 나프타에 관세를 매기는 국가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며 “현재 0.5~3%인 관세를 무관세로 하면 원료 원가경쟁력이 생겨 석유화학 업체들이 해외에서 경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가경제의 근간인 중후장대를 진흥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때라고 강조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기술보호주의, 경제안보, 경제블록화, 보호무역주의를 명분으로 미국 등 선진국에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산업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정책의 틀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은 주저하고 있는데, 선택과 집중을 해서 과감한 지원에 나설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특히 이차전지는 5~10년 안에 주도 국가가 정해질 가능성이 큰 만큼 공격적인 조세 감면뿐 아니라 직접적인 현금성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며 “중국의 저가 공세에 한국이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 뒤처진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혜원 김민영 기자 m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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