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대재해법 유예’ 불발…산업 현장 혼란 불가피

2024. 2. 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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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 등 3500여 명이 지난달 31일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추가 유예를 촉구하기 위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중소기업중앙회


민주, ‘중대재해법 확대 2년 유예 중재안’ 거부


“총선 노동계 표 의식 중소·영세상인 우려 외면”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재차 유예하기 위한 여야 간 협상이 끝내 불발됐다. 준비조차 안 된 채 새롭게 법 시행(1월 27일)을 맞은 5인 이상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불안과 혼란이 불가피하게 됐다. 국민의힘이 어제 1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앞두고 법 적용 확대 시점을 2년 더 늦추되, 더불어민주당의 산업안전보건청 설치 요구를 수용하면서 타결의 물꼬가 트이는 듯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이를 거부했다.

중대재해법은 일터(식당·빵집·치킨집 등도 포함)에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근로자 등에게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중형에 처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산업 현장의 안전을 강화해 2018년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참변을 당한 하청근로자 고 김용균씨 사건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법 취지 자체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보면 예방보다는 처벌 강화에 치우친 반면, 현장의 준비는 턱없이 부족해 극심한 부작용과 혼선이 우려돼 왔다. 법을 이행하려면 재해예방 인력과 예산 체계를 짜고 의무 이행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는데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닌 데다 적지 않은 준비 기간도 필요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11월 해당 기업 1053곳을 설문 조사해 보니 94%가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렇다 보니 산업 재해는 줄이지 못하면서 사업주만 무더기로 처벌받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란 불안이 확산했다. 이 같은 처지의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전국 83만7000여 곳에 달한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로 얼어붙은 현장은 극도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제는 전국 각지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 등 3500여 명이 국회에 모여 “한순간에 예비 범법자로 전락했다”며 “중소기업은 사장이 처벌받으면 폐업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고 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며 유예를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이 법이 사업주에 대한 구체적 책임 의무는 없고 형벌만 높아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안전보건법보다 처벌 수위는 높으면서도 규범적 근거는 오히려 약해 과잉 금지 원칙 위반 소지도 제기된다. 법 조항을 합리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실효성도 떨어지고 제대로 작동하기도 어렵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당초 산업안전보건청 신설 요구를 여당이 전향적으로 받아들이자 합의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의원총회에서 뒤집히자 추가 협상안도 내놓지 않았다. “노동자의 생명, 안전이 더 우선한다는 기본 가치에 충실하기로 했다”는 게 표면적 이유지만, 총선을 앞두고 거대한 노동계 표를 의식해 중소·영세 상인의 우려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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