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발상의 전환 시급한 노인 무임승차
40년 전에는 국민 100명 중 네 명이 무료 탑승권을 받았다. 이제는 국민 100명 중 20명으로 늘었다. 지하철을 공짜로 탄다는 의미에서 ‘지공거사’로 불리는 이들이다. 현재 서울·부산 등 주요 대도시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 무료 탑승 혜택을 준다. 노인 복지란 한쪽만 보면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지공거사의 숫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은 고령 인구 구성비(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가 2036년에는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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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구조 변화로 비용도 급증
“무제한 무임승차 폐지” 공약도
대안 찾는 토론 더 활성화돼야
」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공짜 점심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누군가 공짜 혜택을 본다면 그 뒤에선 누군가 값을 치러야 한다. 노인 무임승차를 이대로 놔둔다면 그 부담은 갈수록 커질 게 뻔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비싼 청구서로 돌아올 것이다. 혜택은 노인 세대가 누리겠지만 결국 현역에서 일하는 세대가 이 돈을 내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문제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는데도 애써 모른 척했다. ‘내 임기 중에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님투’(Not in My Term of Office) 의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이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을 중앙정부가 메워달라고 요구한 경우가 있긴 했다. 지자체 입장에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이었겠지만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느낌이 든다. 사실 국민 전체로 보면 비용 부담의 주체가 중앙정부냐, 지자체냐는 그렇게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정작 시급한 일은 따로 있다. 노인 무임승차를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지, 불가피하게 축소한다면 얼마나 어떻게 축소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이다. 노인층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최대한 이런 논의를 피하고 싶을 것이다.
다행히 정치권 전체가 이 문제를 외면한 건 아니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지난달 18일 정강정책위원장 자격으로 발표한 정책 공약에서 이 문제가 다뤄졌다. 이 대표는 “표가 떨어지는 얘기라도 올바른 얘기를 하겠다. (노년층) 도시철도 무료 이용 폐지는 굉장히 논쟁적일 수 있지만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찬반 여부를 떠나서 정치권이 뭐라도 정책 대안을 내놓은 건 일단 긍정적이다. 노인 무임승차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의 기초로 삼을 수 있어서다. 어려운 숙제를 외면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 대표의 정책 공약을 요약하면 이렇다. 현재의 무제한 노인 무임승차는 폐지한다. 대신 노인 1인당 연간 12만원의 선불 교통카드를 준다. 서울 지하철 요금(교통카드 기준 1400원)을 고려하면 월간 7회 정도 무료로 탈 수 있다. 선불카드의 잔액이 다 떨어지면 노인도 돈을 내고 지하철을 타야 한다. 이때는 청소년과 같은 40%의 할인을 적용한다.
여기에 대한 의견은 다양할 수 있다. 월간 7회 정도 무료 탑승으로도 정책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지, 선불카드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다만 “결혼 안 하고 애 안 키워봐서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식의 공격은 명백한 잘못이다.
사회적으로는 노인이 가만히 집에 있는 것보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대중교통으로 외출하고 외부 활동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국교통연구원은 ▶노인 건강 증진과 우울증 감소 ▶노인 운전 감소로 인한 교통사고 위험 축소 ▶노인 경제활동 확대 등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노인 무임승차의 긍정적 효과다.
영국 런던의 방식도 대안으로 검토할 만하다. 평일 오전 9시 이전의 출근시간대는 유료, 그 외 시간대는 무료로 하는 식이다. 직장인이 몰리는 출근 시간대에 대중교통(지하철·버스)을 이용하려면 노인도 돈을 내라는 얘기다. 시간대별로 요금을 차별화하는 건 기술적으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 노인들의 지하철 이용 패턴이 달라지면서 출근 시간대 혼잡도는 낮아질 것이다. 혼잡 시간대가 아니면 무료 승객이 다소 늘어도 지하철 공사에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퇴근 시간대에도 출근 시간대와 마찬가지로 노인 무임승차를 제한하는 식이다.
정치권에선 이런저런 혜택을 늘리자는 얘기는 많아도 어떤 식이든 혜택을 줄이자는 얘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노인 무임승차의 정책 대안을 찾는 토론이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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