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혁의 마켓 나우] ‘ESG’라는 명칭 피하고 그 이점은 살려라
월가에서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가 사라지고 있다.
S&P 500 지수에 속한 기업 중 실적 발표에서 ESG를 언급한 기업이 2021년 4분기에 155개였으나 2023년 2분기엔 61개에 불과했다. ESG 투자도 비슷한 형국이다. 기업의 ESG 성과에 기반을 둔 투자를 내세웠던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ESG 펀드를 아예 없애거나 펀드 이름에서 ESG를 지우고 있다. ESG 전도사로 불리며 거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기업들에 ESG 경영을 요구하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핑크마저 앞으로 ESG라는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정점에 달했던 ESG는 미국 정계를 중심으로 ‘반(反)워크(anti-woke)’ 운동이 확산하면서 금기어가 돼가고 있다. 이 운동은 환경·인종·성별 등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진보 진영의 슬로건 ‘워크’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격이다. 최근엔 행동주의 투자자 빌 애크먼이 하버드대를 상대로 반워크 공세를 펼쳐 총장의 사퇴를 끌어냈고,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워크 마인드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쓰며 워크를 전염병 취급하고 있다. 보수 진영은 ESG의 확산이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치 이념을 경영과 투자 결정에 개입시켜 미국 경제를 위기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ESG 경영과 투자를 진보적 목표 달성을 위해 주주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이렇게 보수 진영의 공세가 거세지자 재계와 투자업계는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ESG를 드러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ESG라는 용어는 정치화되면서 소멸의 위기에 처했지만, 그 개념은 생존할 것이 분명하다. ESG는 재무적 성과로 연결되기 때문에 경쟁 논리를 따르는 기업이라면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이념을 배제한 학술 연구와 실무에서 ESG는 기업의 이익 증대는 물론 위험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특히 금융위기와 코로나19 등 위기의 순간에 더욱 빛을 발하는 것으로 나타나 복원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앞으로 ESG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런던비즈니스스쿨의 알렉스 에드먼즈 교수는 ‘ESG의 종말’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에서 ESG를 특별 대우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ESG는 CEO의 자질·기업문화·혁신역량 등과 같이 기업가치 창출을 위한 무형자산의 하나일 뿐이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ESG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기대가 과도한 마케팅·규제·투자 그리고 정치화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을 우리는 이미 목격하는 중이다. 역설적이게도 ESG의 존재감이 줄어야 ESG의 순기능이 지속할 수 있다.
최정혁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자산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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