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넘어 세계까지? DJ 슈보스타의 일대기
Q : 방콕, 멕시코시티, 베를린에 이르기까지 세계 다양한 도시에서 DJ로 활약 중이다.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활동한 계기가 있나?
A : 태국 투어 중 친해진 DJ들이 큰 집을 빌려 함께 살면서 활동하자고 제안해 당시 마침 대학을 졸업한 시점이라 고민 없이 출국했다. 방콕에서 2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하루하루 긴장감 없이 지루하더라. 해외에서 살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칸쿤의 여행사에서 사진가를 구하길래 지원해서 칸쿤으로 갔다. 거기서 만난 DJ 친구들이 멕시코시티의 파티에서 디제잉을 제안해 평소 좋아하던 음악을 틀었고, 좋은 반응을 얻어 사진가 일을 그만두고 멕시코시티로 이사했다. 그 후 지금의 매니지먼트와 일하게 됐고, 대표의 권유로 2년 전 베를린에 왔다. 돌이켜보면 계획 같은 건 없었다. 물 흐르듯 다가오는 기회를 잡으며 함께 흘러왔을 뿐.
Q : 한국을 떠날 때 두렵진 않았나?
A : 전혀. 지긋지긋한 10년의 대학 생활을 드디어 마치고 자유인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태국에서의 삶을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구나’ 싶었다.
Q : 머물렀던 도시마다 클럽 신은 어떻게 달랐고, 일하기엔 어땠나?
A : 방콕은 클럽의 주 고객층이 관광객이기 때문에 시즌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새로 생겼다가 다음 해 사라지는 클럽도 많다. 그래서 현지 인맥을 적극적으로 쌓는 것이 중요했는데, 내향적인 나로서는 다소 버거웠지만 거주자 입장에서는 행복한 도시였다. 로컬 시장에서 장 보는 게 낙이었고, 망고스틴 시즌이 되면 날마다 한 봉지 가득 사와서 먹곤 했다.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멕시코시티다. 일 년 내내 기온이 일정한 데다, 어딜 가나 공원과 나무가 있는 곳이다. ‘요기니’로서 경험한 요가원들의 수준도 내가 다녀본 그 어떤 도시보다 높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요 클럽도 많아, 유럽에 살고 있는 지금도 1년에 3개월 이상은 멕시코에 머물며 디제잉을 한다. 베를린은 전자음악의 수도이기에 DJ로서의 이점에 대해선 말이 필요 없다. 베를린의 클럽 신은 독보적이다. 금요일 밤에 오픈해 월요일 아침까지 파티와 음악이 멈추지 않는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휴대폰 카메라 사용이 금지되는데, 휴대폰은 잠시 넣어두고 현재를 맘껏 즐길 수 있는 것은 덤. 거주자 입장에서도 베를린을 사랑하는 이유는 많은데, 가장 큰 이유가 다른 도시에 비해 자본주의와 동떨어진 삶을 영위하기 좋다는 것이다. 베를린 지하철에서는 옥외 상업광고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기차역이나 높은 건물들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빈티지 패션도 보편화돼 새 옷을 입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나와 잘 맞았다.
Q : 그야말로 노매드의 삶이다. 다음엔 어느 도시로 갈 예정인가?
A : 올해 여름은 이비자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는 빌딩들이 즐비한 대도시에서 살아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과 가까이 살고 싶더라. 이비자는 클럽 신이 잘 형성된 동시에 매일매일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Q : 프리랜서 비자로 여러 도시를 전전하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오나?
A : 편한 삶보다는 모험적인 삶을 살고 싶다. 너무 편안한 나머지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위험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내 삶의 모토는 ‘조금 불편하게 살자’인데, 긴장감은 삶을 더 재미있게 만든다. 가슴이 뛰는 건 설렘 때문만은 아니다. 불안감도 가슴을 뛰게 한다. 도전하는 불안감, 이겨낼 때의 쾌감을 몇 번 맛보며 삶이 자유로워졌다.
Q : 한국에서 사는 것과 여러 국가를 오가며 사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A : 비행기를 자주 타다 보니 이젠 전 세계가 하나의 나라처럼 느껴진다. 페스티벌에서 디제잉하려고 15시간 날아가 인도에 이틀 들렀다가 다시 18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 가는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우동 한 그릇 먹으러 일본 간다는 우스갯소리는 오히려 편하게 들린달까.(웃음) 삶의 반경이 넓어지면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편견이 무너진다. 8년 정도 해외 생활을 하다 팬데믹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이 내 옷차림과 외모에 대해 평가하듯 얘기하는 것이 어색하더라. 젠더나 인종 이슈에 대해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놀라기도 했다. 모든 연예인의 잡티 하나 없는 피부, 지하철에 도배된 성형외과 광고 모두가 생소했다. 멕시코시티나 베를린에서는 화장을 하고 나갔다가 괜히 부끄러웠던 적도 몇 번 있었다. 남의 옷차림이나 외모에 대해 지적하면 큰 실례기도 하고. 내겐 그런 분위기가 편하고 만족스럽다.
Q :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서 게임을 만들었고, 대학교에선 화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DJ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은데 DJ가 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A : 어릴 때 난 내가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대안학교에 갈까 하다가 입시생을 모으는 전단을 보고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 컴퓨터 게임과에 진학했고, 정부에서 주최한 여성 청소년 게임 제작 대회에 나가 장관상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컴퓨터만 두드리는 건 내겐 지루한 일이더라. 중학생 때 밴드에서 기타를 쳤던 기억을 되살려 게임 음악을 만들어 졸업했다. 화학과에 진학한 건, 향수에 빠져 조향사가 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프로방스에 있는 록시땅 본사에서 일하고 싶어 록시땅 홍보 대사도 하고 프랑스어도 배웠다. 그런데 막상 화학 전공이 쉽지 않아 복수 전공으로 철학 공부에 몰두하기도 했고, 휴학하고 하루에 5시간씩 기타를 치기도 했다. 그마저 흥미를 잃고 학교에 복귀한 날, 정문에 붙은 DJ 동아리원 모집 전단을 보고 다시 가슴이 뛰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아무 고민 없이 그냥 했다. 관심 분야가 계속 바뀌다 DJ를 시작한 순간, 이거라면 질리지 않고 계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그렇게 된 셈이다.
Q : 한국인 최초로 미국 네바다주 블록 사막에서 열리는 버닝맨 ‘마얀 워리어’에 참가해 디제잉을 했던 경험은 어땠나?
A : 버닝맨은 발을 딛는 순간부터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이다. 8만 명의 사람이 일주일 동안 사막 한가운데 임시로 도시를 만들고, 기간이 끝나면 도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1년 후 다시 나타난다. ‘마얀 워리어’는 버닝맨에서도 명성이 높은 아트 카다. 대형 스피커, 레이저, 화염방사기까지 탑재된 움직이는 스테이지로 버닝맨처럼 특별한 곳, 게다가 마얀 워리어 같은 세계 최고의 스테이지에서 음악을 튼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경험이다. 사람들은 빛이 나오는 소품을 소지하는데(밤의 사막 한가운데를 다니려면 빛이 필요하니까!), 각양각색 조명을 달고 춤추는 관객들 무대에서 보면 사람들로 만들어진 은하수 같다는 생각이 들고, 눈물 날 정도로 강한 연결감을 느낀다. 지금까지 매해 참가 중이다.
Q : 이 일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면?
A : 전 세계를 여행하며 내 음악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슬픔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가끔 고단한 여행 스케줄을 견뎌야 하는데 그마저도 무대에 서면 다 잊어버린다.
Q : ‘Shubostar’라는 이름의 뜻이 궁금하다.
A : 20대 초반에 톰보이처럼 머리가 짧았는데 한 친구가 날 슈퍼보이, ‘슈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감이 좋아서 DJ Shubo로 활동하다가 곡을 발매하면서 이름을 바꿀까 싶었는데, 〈슈퍼스타K〉가 인기를 얻으며 친구가 날 ‘슈보스타 케이’라고 부르던 게 생각나서 ‘Shubostar’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도 물 흐르듯 지었다.(웃음)
Q : DJ 슈보스타만의 색깔이 있다면 무엇인가?
A : 난 내가 트는 음악에 이름을 붙여줬다. ‘Cosmic Disco’ 라고. 이탈로 디스코의 베이스 사운드가 로켓엔진 소리와 비슷한 것에서 착안했다. 내 음악을 들으면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이 나거든.
Q : 앞으로의 커리어는 어떻게 쌓아갈 생각인가?
A :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흘러가겠지? 난 ‘어디서 음악을 꼭 틀고 싶다’거나 ‘돈을 벌어서 뭘 해야지’ 같은 계획은 옛날이고 지금이고 없다. 투어하면서 시간을 쪼개 계속 나만의 음악을 만들고 싶을 뿐.
Q : 한국을 떠나려 하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A : 최대한 많이 ‘한국적인’ 것들을 버려보라. 음식, 문화 그리고 친구들마저도! 매일매일 현지 음식을 먹고, 현지 친구들을 사귀고, 심지어 현지에서 기초화장품도 사보는 거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벗어던지는 가장 좋은 연습이다.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처럼 살아보면,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경험을 얻게 될 거다. 그것이 해외에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Q :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 이제부터는 어디로 가고 싶나? 당신의 야심이 향할 곳은?
A : 착한 여자들을 구하러 갈 예정이다.(웃음) 이제 한국 클럽 신은 해외 아티스트들도 자주 왕래할 만큼 중요한 신으로 자리 잡았지만, 들여다보면 선배 DJ들의 텃세가 심하다. 특히 여자 DJ라면 일단 얕잡아본다. 외모로 무대에 섰다고 하거나, 곡을 만들면 자기가 직접 만든 게 아니라는 둥 꼭 뒷말을 만든다. 또한 클럽 문화도 엄연한 문화지만 퇴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많기에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아직도 사각지대에 있고,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취약하다. 내가 알기로 남자 DJ들이 여자 친구를 폭행한 사건만 3건이고 성폭행 혐의를 받은 이들도 몇몇 있다. 언젠가 내가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때 모든 사람이 클럽 문화에서 여성이 직면하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싶다.
Q : ‘Fun Fearless Female’을 위한 페스티벌이 열려서 DJ를 맡는다면, 첫 곡은 무엇으로 시작할건가?
A : 내 레코드 레이블 우주레코드에서 발매한 나의 첫 곡, ‘Estacion Espacial’(우주정거장)을 틀겠다. 내 손으로 레코드 레이블을 설립해 나의 곡을 직접 발매한 역사적인 EP이다. ‘Fun Fearless Female’에게 바치기에 완벽한 곡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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