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불가능한 괴물 같은 ‘과학’을 낳은… 외로운 천재들

김남중 2024. 2. 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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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문학동네, 412쪽, 1만8000원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우리와 다른 외계인” “20세기에 가장 똑똑한 사람”으로 불렸던 존 폰 노이만은 양자역학, 컴퓨터, 원자폭탄, 인공지능 등 세계를 아주 다른 차원으로 밀어넣은 과학적 발견들의 중심에 있있던 인물이다. 문학동네 제공


현대 과학을 소설로 써내려는 시도. 양자역학, 핵폭탄, 컴퓨터, 인공지능(AI) 등 세계를 완전히 바꿔버린 과학기술이 탄생하던 순간들을 그 혁명을 이끈 과학자들의 이야기로 보여준다. 이 기술들을 낳은 과학적 개념과 이 기술들이 세계에 가한 충격을 놀랍도록 우아한 문장으로 서술하면서 과학에 내재된 근본적 위험성을 오싹하게 드러낸다. 형식도 대담하다.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과학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를 효과적으로 배합한다.

네덜란드 출신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의 ‘매니악’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이런 소설도 가능하구나, 그런 느낌을 주는 소설이라고 우선 얘기할 수 있겠다. ‘매니악’은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라바투트의 작품이다. 2021년 부커상 최종 후보작인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가 앞서 번역돼 나왔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신작에서도 세상을 바꾼 천재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매니악’은 핵폭탄 개발에 참여하고 매니악 컴퓨터를 만들어낸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존 폰 노이만(1903∼1957) 이야기를 중간에 두텁게 놓고, 그 앞에는 정신병 환자로 양자역학의 탄생에 기여한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1880∼1933) 이야기를, 뒤에는 AI 시대의 시작을 충격적으로 알린 바둑기사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야기를 배치했다. 이런 구성을 통해 양자역학, 핵폭탄, 컴퓨터, AI로 이어지는 세상을 뒤흔든 과학적 발명들을 포괄하는 한편 이 발명을 주도한 과학자들의 내면을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현대 과학을 관통하는 속성을 폭로한다.

작가는 소설의 중심 인물로 폰 노이만을 선택했다. 그는 “현대 컴퓨터를 탄생시키고, 양자역학의 수학적 토대를 놓고, 원자폭탄의 내파 방정식을 쓰고, 게임이론과 경제 행동 이론을 창시하고, 디지털 생명과 자기 증식 기계, 인공지능, 기술적 특이점의 도래를 예고”한 “우리와 다른 외계인, 진정한 천재”였으며, 세계를 이전과는 아주 다른 차원으로 밀어넣은 과학적 발견들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폰 노이만 본인은 물론 동료 과학자, 친구, 부인 등 주변 인물들을 화자로 내세워 그의 내면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이를 통해 폰 노이만의 천재성에 가려진 편집증과 근시안, 도덕적 무지 등을 들춰낸다. 그것이야말로 현대 과학이 감추고 있는 위험성이다.

“폰 노이만의 발명품이 아니었다면 열핵무기는 사실상 만들어질 수 없었다. 컴퓨터의 운명은 애초부터 열핵무기와 단단히 얽혀 있었다…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은 이렇게나 소름이 끼친다. 인간 발명품 중 가장 독창적인 물건과 가장 파괴적인 물건이 정확히 동시에 탄생하다니.”

소설은 에렌페스트를 다룬 1부에서 양자역학의 등장 당시의 공포감을 묘사한다. “물리학이 근본적인 선을 넘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리학의 영혼에서 악마가, 아니 어쩌면 요정이 깨어났으며, 앞으로 그의 세대도 다음 세대도 그 존재를 도로 램프에 집어넣지 못할 터였다.”

3부 ‘세돌 또는 인공지능의 망상’에서는 체스 게임에 몰두하던 외로운 천재 데미스 허사비스가 별다른 윤리적 고민도 없이 범용인공지능(AGI)이라는 미지의 문을 여는 과정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미치광이’를 뜻하는 소설 제목 ‘매니악’은 과학의 진보가 이성의 광기일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설은 세상을 놀라게 한 과학적 발명이 숭고한 이념이나 공익적 목적이 아니라 몇몇 천재들의 호기심과 야심, 편집증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또 지나치게 뛰어난 지능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인간과 윤리의 경계를 넘어버리기도 한다고, 과학자들도 자신들이 만들어낸 결과물 앞에서 공포를 느꼈다고, 하지만 한 번 풀려난 과학은 제어되지 않으며 경계 밖으로 더 멀리 나아가게 마련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폰 노이만은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진보를 치유할 방법은 없어”라고 후회하듯 말했다. 현재의 과학기술이 인류를, 세계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수 없고 제어할 수도 없다. 이 근본적 공포야말로 이 소설의 배경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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