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유예 급물살 탔지만…민주당 강경파가 의총서 틀었다
더불어민주당은 1일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2년 유예하자는 국민의힘 제안을 거부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후 기자들에게 "민주당은 산업현장에서 노동자의 생명, 안전이 더 우선한다는 기본 가치에 더 충실하기로 했다"며 "정부·여당 제안을 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일어났을 때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으로,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지난달 27일부터 이 법이 확대 적용됐다.
1일 오전만 해도 여야는 극적인 합의를 이루는 듯했다. 민주당이 그간 협상 조건으로 내건 산업안전보건청(산안청) 설치 요구에 대해 대통령실이 이날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피력한 데 이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명칭을 산업안전보건지원청으로 바꾸고 조사 권한을 제외한 예방·지원 조직으로 설치하는 것을 협상안으로 제시했다”고 밝혀서다.
꽉 막혔던 물밑 협상도 전날 밤부터 급진전을 보였다고 한다. “오후 본회의에서 중대재해법과 산안청 설치를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처리될 수 있다”(국회 관계자)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협상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무산됐다. 이날 오후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정부·여당 제안을 거부하기로 했다”는 결론이 도출돼서다.
당초 민주당은 산안청 설치를 유예 조건으로 내걸었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말 “유예 논의를 위해 산안청을 포함한 계획을 여당이 갖고 오라”고 협상 카드를 제시했고, 전날(1월 31일)에도 “(유예 협상의) 핵심은 산안청 설치”, “(유예 시) 2년 간 가장 중요한 것은 산안청 설립”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의 입장이 급변한 건 의총에서 강경파의 거센 반발이 나왔기 때문이다. 노동계 출신 의원은 “노동자가 현장에서 너무 많이 죽어간다. 즉시 시행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자”고 했다. “산안청의 조사 권한을 빼자는 여당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3선 의원)라거나 “현장에서는 중대재해법으로 처벌되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수도권 의원)는 주장도 이어졌다. 반면 “모든 사안을 노동과 자본의 대립으로만 보지 말고 현실에 맞춰 법 적용을 유예하자”(수도권 재선)는 타협론은 소수에 그쳤다.
한 참석 의원은 “전날까지 산안청을 고리로 밤샘 협상을 벌였던 원내 지도부가 상당히 난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의총장 앞에서 정의당·민주노총 등 관계자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며 민주당 의원을 붙잡고 “유예는 안 된다” “민주당이 막아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4·10 총선이 다가오면서 민주당이 오히려 강경파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선거를 코앞에 앞두고 이런 협상을 걷어차면 어쩌자는 거냐”라며 “경선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의총만 열면 강경파가 주도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초선 의원은 “공천을 앞둔 예민한 시기에 당 여론을 쥐락펴락하는 노동계의 반발을 무릅쓸 의원이 있겠나”라고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중대재해법 유예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이 대표는 2022년 11월 한국노총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산업재해 사고와 관련해 현실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움직임이 있다는 점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개악 저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 입장은 당 대표가 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야권 관계자는 “최근 이 대표는 원내 지도부에 합의를 만류하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 유예 불발에 윤석열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직접 입장을 표명했다. 윤 대통령은 “끝내 민생을 외면했다”며 “여당 원내대표가 민주당이 그동안 요구해온 산업안전보건청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거부한 것은 결국 민생보다 정략적으로 지지층 표심을 선택한 것 아니냐”라고 밝혔다고 김수경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이어 “83만 영세사업자의 절박한 호소와 수백만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어떻게 이토록 외면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국회 로텐더 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윤 원내대표는 “조건을 내걸며 유예해줄 것처럼 하더니 83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 800만 근로자의 삶의 현장을 인질 삼아 희망 고문하고 기만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총선 악재’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한 수도권 의원은 “우리가 제시한 협상안을 스스로 걷어찬 모양새”라고 말했고, 중진 의원은 “산업 현장은 외면하고 노조 눈치만 보는 당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손국희ㆍ강보현ㆍ김정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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