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법안 385개 '원샷 처리'?…아르헨 트럼프 첫 승부수 스타트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제안한 대규모 개혁 법안 패키지의 승인 여부를 놓고 아르헨티나 하원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마라톤 회의에 돌입했다. 밀레이 정부는 개혁 법안 통과에 필요한 표를 이미 확보했다고 자신하는 가운데, 의회 밖에는 개혁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몰려와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385개 법 개정 논의 시작…최소 35시간 회의
현지 매체 부에노스아이레스타임스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30분 아르헨티나 의회에는 하원의원 257명 중 137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르틴 메뎀 하원의장이 본회의 개회를 선포했다. 제1 야당인 조국을위한단결(UP)의 간부 의원들이 불참한 상태다. 토론은 최소 35~40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소위 ‘옴니버스 법안’으로 불리는 개혁 법안은 당초 664개 조항이었는데, 지난주 야당과의 줄다리기 끝에 385개 조항으로 축소됐다. 해당 법안에는 공기업 민영화, 세금 인상, 노동자 권리 축소, 시장 자유 확대 등 정치·경제와 관련된 내용은 물론, 이혼 규정과 축구 클럽의 지위 등 사생활 관련 내용까지 총망라됐다.
법안엔 기업의 자유를 불필요하게 억제한다며 빙하와 숲을 보호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외국 기업이 전략적 국경지대와 천연자원을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내용도 담겼다. 호주 매체 더컨버세이션은 “이같은 규제 완화가 시행되면, 아르헨티나의 리튬 광산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나 미국 정부에 약탈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신들은 이번 개혁안에 대해 “최악의 위기에 빠진 아르헨티나 경제를 해결하기 위한 밀레이 정부의 첫번째 승부수”라고 전했다. 현재 아르헨티나 경제 지표는 문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을 가르키고 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율은 211.4%, 국내총생산(GDP) 1.7% 하락, 실질 구매력은 10% 추락했다. 국민 40%가 빈곤선 아래고, 정부 부채는 GDP의 80%에 육박하며 국제통화기금(IMF)에 진 빚은 460억 달러(약 61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밀레이 대통령은 자칭 ‘무정부 자본주의자’로, 경제학자 시절부터 옹호해온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아르헨티나 경제의 악폐를 근절하고 경제를 살려내겠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이번 법안 개정안에 ‘경제 분야에 대한 의회 입법권을 행정부에 위임해 줄 것’도 포함시켰다. 비판하는 측에선 경제 위기 회복을 빌미로 의회의 견제 없이 법을 입맛대로 만들어 시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전기톱에 연료 줄 수 없다" 야당 반대
해당 법안이 밀레이 정부의 뜻대로 의회를 통과할 지는 미지수다. 현재 아르헨티나 상·하원은 모두 여소야대 상태다. 집권당인 자유전진당은 하원 257석 중 38석을 차지한 정도다. 범여권을 모두 합해도 75석에 불과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타임스는 “정부는 중도 우파 등 중간지대 정당을 설득하는데 주력했고, 하원에서 총 134표를 얻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원에서 개혁 법안 통과에 필요한 표는 과반인 129표다.
개혁 법안이 하원을 통과하면 다음주 중으로 상원에 이송된다. 상원 역시 72석 중 범여권은 13석뿐이다. 페론주의(남미식 좌파 포퓰리즘)에 입각한 제1 야당인 UP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밀레이의 전기톱에 연료를 공급하고 아르헨티나인의 일상을 해친다고 확신하는 이 옴니버스 법안을 거부한다”고 전했다.
개혁 법안에 반대하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의회 맞은편 콩그레소 광장에 속속 집결하고 있다. 이미 수백명의 좌파 인권단체와 노조, 학생 시위대가 의회 밖에서 개혁 법안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시위대는 “개혁 법안은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연금을 축소하는 등 국가적 위기에 따른 고통을 모두 서민과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면서 “밀레이 대통령은 오랜 기간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만들어낸 정책과 제도를 한순간에 뒤엎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법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내내 의회를 둘러싸고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부에노스아이레스타임스는 현재 의회를 중심으로 거리마다 물대포를 실은 트럭과 보안차량이 배치되고 경찰들도 시위대와 대치 중이라고 전했다.
야당과 시위대의 반대에 대해 기예르모 프랑코스 내무장관은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법을 승인하는 데 다수의 합의가 있다고 믿는다”면서 “이 법은 아르헨티나 국가 전체는 물론, 지방 곳곳에도 모두 이익이 된다”고 강조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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