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새 사고 2건…중처법 유예 결렬, 중소기업들 "속탄다"
50인 미만(5~49인)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적용이 시행된 후 사흘 만에 두 건의 중대재해 사고가 터진 것으로 확인됐다. 1일 국회에서 중처법 적용 유예를 놓고 진행된 여야 협의가 끝내 결렬되면서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두 건의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했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폐알루미늄 수거·처리업체(상시근로자 10인)에서 30대 근로자가 작업 중 끼임 사고로 숨졌고,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축사(상시근로자 11인)에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다가 지붕이 무너지면서 40대 외국인 근로자가 추락사했다. 중처법에선 사고 예방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리고 있다.
“다음은 우리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국회 상황을 초조하게 지켜본 50인 미만 중소기업들은 합의 결렬 소식에 혼란스러워했다. 경기도에서 근로자 15명 규모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는 김동경(65) 대표는 “마지막까지 기대했는데, 유예 불발 소식을 듣고 정신이 몽롱해질 지경”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안전 대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준비 기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하는 것인데, 이게 그렇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냐"며 "정치인들이 기업인들, 밑바닥 경제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직원 25명 규모의 식품 포장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최봉규(66) 대표는 “행여라도 내가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자리를 비워야 할 일이 생기면 회사 운영은 어째야 할지 막막하다”라고 말했다. 중처법은 사업주의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중소기업은 대표가 대부분의 일에 관여해야 하므로 처벌로 대표 부재 시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울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당장은 안전보건 관리자를 찾아야 한다. 최 대표의 사업장은 20~50명 미만 사업장 중 제조업 업종에 해당해 안전보건관리담당자를 선임해야 한다. 최 대표는 “추가 인원 채용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안전·보건관리자 자격을 갖춘 전문가에게 수수료를 주고 맡기는 방식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이 표심을 의식해 샅바 싸움을 하고 있어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마음이 타들어 가는데 정치권에선 서로 표를 의식하고 간만 보고 있다. 완전히 협상이 엎어졌다고 보기에도 어려워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산안청 설립과 중처법 적용 유예를 맞바꿀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국민의힘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여야 협상이 결렬되자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체감 경기가 급속하게 얼어붙는 와중에 처벌에 따른 폐업 공포를 더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라며 “남은 2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이 다시 논의되어 처리되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중처법 유예법안 처리 무산에 유감을 표한다”며 “향후 50인 미만 사업장에 큰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국회는 중처법 적용 유예 입법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반면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유명무실한 허울뿐인 조직 하나를 받고 중처법을 유예해선 안 된다”라며 “앞으로도 50인 미만 사업장 중처법 적용을 유예시키는 당에 대해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도 “정부와 여당의 중처법 개악 시도가 무산된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의 대부분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재해조사를 보면 50인 미만 회사의 사망자 비중은 2021년 63.7%, 2022년 60.2%, 2023년 1~9월 58.2%(267명)로 여전히 10명 중 6명의 중대재해 사망자가 50인 미만 회사에서 발생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오늘 본회의에서 중처법 유예안이 처리되지 않아 안타깝다. 정부는 법 적용에 따른 부작용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 대진단 및 컨설팅, 재정지원 등을 통해 영세 사업장이 사고 예방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우림·이수정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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