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구한다’ 뛰어들었다 주검으로… 소방 청년들 또 비극

김재산,장신영 2024. 2. 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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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들이 1일 경북 문경시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진 순직 소방관들의 빈소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평소 소방관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청년들이 화재 현장에서 주저 없이 사람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하늘의 별이 됐다.

지난달 31일 경북 문경시 육가공 제조업체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김수광(27) 소방교와 박수훈(35) 소방사는 평소 동료들 사이에서도 신망이 두터웠다.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두 사람은 화재가 발생한 건물에서 사람이 대피하는 것을 발견하고 내부 인명 검색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수색에 돌입했다. 이들은 건물 안을 수색하던 중 급격한 연소 확대로 고립됐고, 이어 건물이 붕괴되면서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소방교는 2019년도에 공개경쟁채용으로 임용돼 재난 현장에서 위기에 처한 국민을 구하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화재대응능력 취득 등 꾸준히 자신의 역량을 키워온 6년차 소방관이다.

20대 초반에 소방공무원이 된 그는 2023년 소방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취득하기가 어렵기로 소문난 인명구조사 시험에 합격해 구조대에 자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박 소방사는 특전사 중사로 근무하던 중 ‘사람을 구하는 일이 지금보다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2022년도 구조분야 경력경쟁채용에 지원해 임용됐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그는 태권도 지도자로서 양식조리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하는 등 ‘종횡무진’ 인생을 살았다. 미혼으로 비교적 늦은 나이에 소방에 투신했지만 평소 “나는 소방과 결혼했다”고 이야기할 만큼 조직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문경소방서의 한 동료는 “지난해 7월 경북 북부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 당시 문경시, 예천군 실종자를 찾기 위한 68일간의 수색 활동에 두 사람은 누구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실종자 발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배종혁 문경소방서장은 “일상 훈련과 화재 현장에서도 매우 모범적인 대원들이었다”고 말했다.

경북도 소방본부는 순직한 이들에게 애도와 경의를 표하고 ‘경상북도 순직 소방공무원 등 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른 장례와 국립현충원 안장, 1계급 특진 및 옥조근정훈장 추서를 추진한다.

이들의 합동분향소는 1일에서 5일까지 4개소(경북도청 동락관, 문경·구미·상주소방서)에서 운영되며 영결식은 3일 경북도청 동락관에서 경북도청장으로 엄수된다.

소방대원들이 31일 화재가 발생한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육가공제조업체 내부에 잔불처리 작업을 위해 진입하고 있다. 경북도소방본부 제공


정부는 소방관 순직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매뉴얼 강화, 첨단 장비 도입 등의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소방관 출신인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실질적인 출동 인력이 부족하다는 근본적인 문제는 개선할 의지 없이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겉핥기식 대책만 나오고 있다”며 “현장 교육 부족이나 장비의 노후화만을 순직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방관의 안타까운 희생을 막기 위해선 고질적 인력난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5년간 2만여명의 소방관이 충원됐지만, 여전히 지방을 중심으로 현장 출동하는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소방관 한 명이 교육이나 휴가로 자리를 비우면 나머지 대원들은 인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화재나 사고 현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기존 가용 인력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치를 하느냐의 고민이 가장 중요하다”며 “현재 소방에서는 불도 끄고 행정업무도 보는 멀티 소방관 양성을 목표로 한다. 지역과 개인 특성을 고려해 전문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도 이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방관의 안전보다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관들이 부담감을 느끼고 현장에서 무리하게 진압 전술을 펼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지 못했더라도 소방관에게 책임을 묻고 징계하기보다 그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믿고 관대하게 바라보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도 “화재 현장의 붕괴 가능성이 예측되는 데도 인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는 때도 있다. 소방관은 죽을까 봐 못 들어간다고 말할 수가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지휘관도 자유로워야 한다. 붕괴 위험 건물은 출입을 자제하는 등의 내용이 매뉴얼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경=김재산 기자, 장신영 기자 jskimkb@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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