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의 장애인 질투하던 여성의 반전…편견 깬 '세기말의 사랑'
나원정 2024. 2. 1. 18:28
영화 '세기말의 사랑' 임선애 감독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사랑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헌신하다 헌신짝이 되는 사람도 있다.
영화 ‘세기말의 사랑’(1월 24일 개봉)은 이런 사랑의 권력관계를 장애인‧비장애인 여성과 한 남자의 기발한 삼각관계로 풀어낸 작품이다. 눈치 보는 성격과 외모 콤플렉스 탓에 만년 ‘왕따’인 경리직원 영미(이유영)가 아내 때문에 공금 횡령을 한 직장 동료 도영(노재원)을 짝사랑하다 그의 아내 유진(임선우)과 얽히는 여정을 감각적으로 펼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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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 장애인 질투하던 비장애 여성의 반전
세상이 끝날 지도 모른다는 '썰'이 돌았던 1999년 12월 31일 그는 용기를 짜내 도영에게 고백하지만, 다음날 도영의 횡령을 방조한 죄로 경찰에 수감된다. 도영이 빼돌린 자금을 영미가 사비로 메꿔왔다는 게 들통난 것이다.
이듬해 새천년을 맞은 세상에 출소한 영미를 마중 나온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인 유진이다. 명품을 휘감은 우아한 유진은 턱 아래론 온몸이 마비된 장애인이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것도 잠시, 남편과 바람 난 불륜녀와 사치로 남편을 파산시킨 악처란 오해 속에 두 여자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칙칙한 흑백이던 영화 화면이 이때부터 총천연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이듬해 새천년을 맞은 세상에 출소한 영미를 마중 나온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인 유진이다. 명품을 휘감은 우아한 유진은 턱 아래론 온몸이 마비된 장애인이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것도 잠시, 남편과 바람 난 불륜녀와 사치로 남편을 파산시킨 악처란 오해 속에 두 여자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칙칙한 흑백이던 영화 화면이 이때부터 총천연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데뷔작 ‘69세’(2020)에서 젊은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 당한 여성 노인의 구명 과정을 다뤄 부산 국제영화제 KNN관객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박남옥상 등을 받은 임선애(47) 감독이 12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작품으로 쓴 시나리오를 다시 꺼냈다.
개봉 다음 날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임 감독은 “장애 소재 영화들을 보면 부자 장애인과 서민을 짝 짓거나, 장애를 극복하는 대단한 성공담, 주위의 희생으로 점철된다”면서 “극 중 유진처럼 20대 초반에 갑자기 근육병이 찾아온 막내 이모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유진을 자신만의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장애인으로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2012년 당시 시나리오 제목은 ‘이쁜 여자’로, 개성 있는 외모의 비장애인, 연예인에 버금가는 외모의 장애인 여성이 서로 질투하는 얘기였다. 임 감독은 “다시 보니 낡은 이야기로 느껴졌다”면서 “영미 역시 나름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지만, 결핍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하루하루가 꼭 불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공교롭게 한 남자를 좋아하게 되고 같이 살게 되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따뜻한 반짝거림을 발견해내는 이야기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개봉 다음 날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임 감독은 “장애 소재 영화들을 보면 부자 장애인과 서민을 짝 짓거나, 장애를 극복하는 대단한 성공담, 주위의 희생으로 점철된다”면서 “극 중 유진처럼 20대 초반에 갑자기 근육병이 찾아온 막내 이모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유진을 자신만의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장애인으로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2012년 당시 시나리오 제목은 ‘이쁜 여자’로, 개성 있는 외모의 비장애인, 연예인에 버금가는 외모의 장애인 여성이 서로 질투하는 얘기였다. 임 감독은 “다시 보니 낡은 이야기로 느껴졌다”면서 “영미 역시 나름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지만, 결핍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하루하루가 꼭 불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공교롭게 한 남자를 좋아하게 되고 같이 살게 되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따뜻한 반짝거림을 발견해내는 이야기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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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갈 곳 없는 영미는 까칠한 성격 탓에 돌봄 도우미가 그만두기 일쑤인 유진을 잠시 돌보며 더부살이 하게 된다. 티격태격하던 둘은 서로 감추고 싶은 밑바닥을 보게 되며 점차 솔직해진다. 자존심 강한 유진은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옷에 소변을 흘린다. 영미는 사촌오빠가 나 몰라라 하는 치매 큰어머니를 억척스레 모셨지만, 수감된 사이 함께 살던 집을 사촌오빠가 일방적으로 처분하며 전 재산을 잃게 된다.
영미의 몸에 있는 심한 화상 자국도 사촌오빠의 방화 때문이다. 사정을 알게 된 유진은 영미가 창피해하는 그 흉터를 두고 “맨드라미꽃을 닮았다”고 한다. 장애 때문에 많은 걸 잃고도 늘 고고하고 당당한 유진을 영미도 점점 닮아간다. 뻐드렁 앞니 때문에 늘 화면 귀퉁이에서 푹 숙였던 고개를 들고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는다.
화상 흉터서 '맨드라미꽃' 피워낸 우정
영화에서 갈 곳 없는 영미는 까칠한 성격 탓에 돌봄 도우미가 그만두기 일쑤인 유진을 잠시 돌보며 더부살이 하게 된다. 티격태격하던 둘은 서로 감추고 싶은 밑바닥을 보게 되며 점차 솔직해진다. 자존심 강한 유진은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옷에 소변을 흘린다. 영미는 사촌오빠가 나 몰라라 하는 치매 큰어머니를 억척스레 모셨지만, 수감된 사이 함께 살던 집을 사촌오빠가 일방적으로 처분하며 전 재산을 잃게 된다.
영미의 몸에 있는 심한 화상 자국도 사촌오빠의 방화 때문이다. 사정을 알게 된 유진은 영미가 창피해하는 그 흉터를 두고 “맨드라미꽃을 닮았다”고 한다. 장애 때문에 많은 걸 잃고도 늘 고고하고 당당한 유진을 영미도 점점 닮아간다. 뻐드렁 앞니 때문에 늘 화면 귀퉁이에서 푹 숙였던 고개를 들고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는다.
흑백이었던 영미의 세계가 유진으로 인해 컬러풀해지는 걸까. 임 감독은 오히려 원래 컬러풀했던 영미의 세계가 타인에 의해, 또 스스로에 의해 ‘발견’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흑백 화면에서 빛바래 보였던 영미의 운동화가 컬러 화면에서 보면 분홍색인 것도 “영미에 대한 관객의 선입견을 한 꺼풀 벗겨주려”는 감독의 의도였다.
유진이 죽은 언니가 남긴 조카의 임신 사실을 알고 집안 유전병이 나타날까 봐 노심초사하는 부분은, 임 감독 주변 여성들의 경험을 녹여낸 것이다. 그는 “여성이 임신 후 병의 진행 속도가 빨라지더라. 특히 제왕 절개를 하면 회복기에 피 순환이 빨라져 빨리 전이된다”면서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도 위암인 줄도 모르다가 제왕 절개 후 급격히 악화했다. 막내 이모도 임신을 계기로 몸이 무너졌다. 더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걸 안 뒤 더더욱 아이를 지우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데뷔작부터 꾸준히 여성의 시선과 삶의 경험을 스크린에 담아온 그는 “아픔을 겪은 사람의 삶이 결국 재생된다는 주제에 매번 도달하게 된다”면서 “기어코 다시 살게 된다는 메시지를 영화로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유진이 죽은 언니가 남긴 조카의 임신 사실을 알고 집안 유전병이 나타날까 봐 노심초사하는 부분은, 임 감독 주변 여성들의 경험을 녹여낸 것이다. 그는 “여성이 임신 후 병의 진행 속도가 빨라지더라. 특히 제왕 절개를 하면 회복기에 피 순환이 빨라져 빨리 전이된다”면서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도 위암인 줄도 모르다가 제왕 절개 후 급격히 악화했다. 막내 이모도 임신을 계기로 몸이 무너졌다. 더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걸 안 뒤 더더욱 아이를 지우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데뷔작부터 꾸준히 여성의 시선과 삶의 경험을 스크린에 담아온 그는 “아픔을 겪은 사람의 삶이 결국 재생된다는 주제에 매번 도달하게 된다”면서 “기어코 다시 살게 된다는 메시지를 영화로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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