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대신 화합 정치...브렉시트 마지막 두통거리 해결사는 누구

전수진 2024. 2. 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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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도널드슨(왼쪽)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 대표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 정부의 조건을 받아들여 연정에 합의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촌 형이 적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소식을 제프리 도널드슨이 들었을 때, 그는 만 8세였다. 1970년, 북아일랜드에서의 일이다. 도널드슨의 사촌 형 샘은 북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하는 북아일랜드 공화국군(PIRA)의 공격에 희생됐다. 15년 후인 1985년, 그가 23세였을 땐 또 다른 사촌이 PIRA의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정치에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복수가 아닌, 화합과 통합을 위해서다. 그리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그는 영국 북아일랜드 담당 장관과 함께 나란히 단상에 섰다. 민주연합당(DUP)의 당 대표로서다.

DUP는 영국과의 통합을 지지한다. 정반대 성향의 민족주의 독립주의 신 페인(Sinn Fein)당은 가톨릭교인 반면, DUP는 개신교다. 정치성향부터 종교까지, DUP와 신 페인 당은 대척점에 서있다. 반영 신 페인당과 달리 DUP는 친영임에도, DUP와 영국 정부와의 관계는 2021년부터 삐걱댔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유럽연합 탈퇴) 때문이다. DUP는 브렉시트로 인한 무역 및 국제관계에서의 혼선이 불만이었다.

북아일랜드의 연정 불성립은 사회적으로도 불안을 가져왔다. 사진은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정치 불안으로 인해 공무원들이 임금 인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시위하는 이들의 사진. EPA=연합뉴스


이는 북아일랜드 내의 정치 갈등으로도 이어졌다. 북아일랜드는 1998년 벨파스트 평화협정에 따라 다수당 2곳이 연정하는 것을 필수 조건으로 삼고 있다. 2022년 선거에서 신 페인당이 원내 1당이 되긴 했으나 DUP로 대표되는 연방주의자들은 브렉시트에 대한 보이콧을 시작으로 연정도 거부했다. 이로 인해 북아일랜드의 의회와 정부는 비정상 체제가 이어져 왔다. 그간 7차례의 연정 관련 협의가 있었으나 불발됐다. 그러다 도널드슨 대표가 지난달 30일, 새벽까지 이어진 영국 정부와의 협의 끝에 연정에 복귀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영국 정부에 DUP의 요구 사항인 무역 보호 등의 내용을 요구했고, 부분적으로 수용이 됐기 때문이다.

북아일랜드의 의회 사진. 북아일랜드는 친영과 반영의 선명한 대립된 정치 성향을 가진 정당들의 연정을 법에 적시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슨 대표는 영국 정부의 북아일랜드 담당 히튼 해리스 장관과 함께 현지시간 자정을 넘겨 기자회견을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얻지는 못했지만 북아일랜드에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도널드슨 대표로서는 화합의 정치를 위한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그는 DUP 및 친영 성향의 일명 연방주의자들로부터 "더 버텼어야 한다"는 취지로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 "과거 시대의 분열주의적 사고방식에 근거한 비판"이라고 응수했다고 아이리시 인디펜던트 지는 31일 보도했다.

사촌들의 죽음이 아니었더라도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10대 시절부터 DUP의 청소년 당원으로 활동했다. 영국 정치에서 필수인 토론 능력을 키우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각종 대회에 나갔다. 1980년대엔 보험 중개업으로 성공을 거두는 듯했지만 1985년의 사촌 테러 사망 사건으로 인하여 정계 진출을 본격 결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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