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와 함께 온 노인 우울증, 이렇게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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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 기자]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되돌아보니 어느새 내 나이는 80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찾아오는 무력감, 노년의 몸에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병으로 인해 먹는 약도 몇 가지가 더해졌다. 그러면서 마음이 순간순간 울적해지는 때가 잦았다. 아마도 이게 우울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3년 전 즈음엔 동네 보건소에 가는 일이 많았다. 남편과 나, 부부가 함께 건강교육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에 참여하면 혈압과 당뇨 체크는 기본, 건강 수첩에 날마다 체크를 했었다. 그런데 보건소에서 남편은 괜찮은데, 내 혈압과 혈당 수치가 높다며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지켜보자고 했다.
그러다 교육이 끝나는 날, 혈당 수치가 높은 탓에 병원에 가 전문 검사를 하고 약을 먹어야 하는 단계라고 듣게 됐다. 거기다 혈압약, 콜레스테롤약까지 함께 먹어야 했다(당뇨가 오면 혈압 등은 다 따라다니는 병이라고 한다). 겪어보니, 정말이지 당뇨라는 병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고약한 병이었다.
▲ 겪어보니, 정말이지 당뇨라는 병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고약한 병이었다. |
ⓒ elements.envato |
진단을 받고 나자 일상 생활에서 소소한 주의 사항과 먹어야 하는 것, 먹지 말아야 할 것 등 온통 신경을 써야 할 일들로 가득 찼다. 사람이 살아가는 즐거움 중에 보통 먹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고들 말한다. 이전과 달리 먹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게 되면서, 울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고통이 차 올랐다.
처음 당뇨와 혈압, 고지혈증을 진단받고서는 놀라고 당황스러워 한동안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다. 내가 좋아하던 과일과 빵, 떡 종류를 비롯해 맛있는 음식들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장 우울했다. 과일 중에 감, 포도, 수박 같은 단 음식은 모두 금지됐고 중국 음식도 삼가야 했다. 매일같이 운동을 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사는 일이 즐겁지가 않았다. 남편은 곁에서 나보다 더 내 식습관에 야단을 하면서 나를 힘들게 했다. 걱정되니까 그렇겠지 하면서도, 한편으론 내심 섭섭했다. 말 한 마디 나누기 싫을 정도로 기력과 기운이 떨어졌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면 아프기도 하고, 이런저런 시련을 견디고 사는 게 인생이란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은 쉽게 용납이 안 됐다.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런 일을 나 혼자만 겪는 일도 아니련만, 그 순간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혼자서 우울했다.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출구를 찾아야 했다. 무엇인가에 몰입하며 우울한 마음을 잊어야 할 것 같았다. 우울한 게 내가 나를 놓지 못하는 욕심 때문 아닌지, 나이듦과 병듦은 누구나 찾아오는 인간의 생로병사인데 꼭 혼자만 겪는 일처럼 감당 못하고 고통스럽다 난리 치는 건 아닌지 하면서 천천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 즐거운 일이 무엇일까? 스스로 진지하게 물어봤다. 그리고 2020년 2월 어느 날, 동네 뜨개방에서 들은 한 작가의 서점 특강을 찾아가 들으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글쓰기 모임을 찾아가 이런 저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주변에만 의존하고, 사람들이 내 기대에 못 미칠 때 섭섭하고 우울했던 마음에서 천천히 헤어 나오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다시 나를 찾는 것 같았다. 수용의 자세를 배우기 시작했다.
글을 쓰자 쏟아진 공감... 살아있다고 느꼈다
▲ 2022년 낸 책 <당신 덜 외롭게 걸어요> |
ⓒ 진포 |
▲ 서점에 놓인 내 책. 내 책 에세이집이 서점 매대 맨 왼쪽에 누워있다. |
ⓒ 이숙자 |
우리 집엔 온 가족이 들어가 있는 단체 톡방이 있는데, 오마이뉴스에 보낸 글이 채택되면 나는 맨 먼저 여기에 알린다. 내가 쓰는 글은 어찌 보면 그냥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사는 이야기를 쓰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고 그 글을 읽은 남편부터 사위들, 딸들이 보내오는 응원과 격려를 받으면서 점차 자존감이 높아졌다. 나이 든 할머니의 모습이 어린 손자들에게도 교훈이 되어 줬다고 한다.
그렇게 우울증의 시기를 지나고,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나는 달라졌다. 첫째는 나를 더 수용하게 됐고, 둘째로는 감사하는 일이 늘어났다. 이제는 남편을 바라보는 눈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더 너그러이 배려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하루하루 눈을 뜨면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가족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일이 감사할 뿐이다.
우울은 어쩌면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겠지만, 우울증을 잘 지나가는 데엔 안부를 묻는 말 한마디와 따뜻한 시선 같은 주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인생은 의외로 길고 지루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찬란하기도 하다. 어떻게 살다가 생을 마칠 것인가는 순전히 내 선택에 달려있다. 어느 시인은 말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글을 써보라, 누군가를 비판하는 글보다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고백적인 글이 더 효과있을 것'이라고.
나는 앞선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한번뿐인 삶, 오늘 내 앞의 순간을 어떻게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인가는 오로지 우리의 몫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감사하고 살 때 나는 내가 나답게 산다고 느낀다. 당신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고 있으며 어떨 때 나답다고 느끼는가? 내 작은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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