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식당에서 영상 보여주는 부모님들, 마음은 알지만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박순우 기자]
몇 년 전 친구네 가족과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였다. 그때 우리 아이들은 4살, 6살이었는데, 음식점에서 영상을 보지 않고 식사하는 모습을 보더니 친구가 내게 놀랍다는 말을 전했다. 식당에서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지 않는 부모를 처음 봤다는 것이다.
친구에게도 당시 3살짜리 아이가 있었는데, 친구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아이가 원하는 영상을 볼 수 있게 했다. 아이는 익숙하게 영상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친구가 건네는 밥을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 식사는 단지 영양소만 섭취하는 행위가 아니라, 공감각적인 경험을 하는 시간. |
ⓒ unsplash |
친구의 말을 듣고 곰곰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아이들이 음식점에서 돌발행동을 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친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이 특별히 얌전한 건 아니었다. 아들만 둘인 데다 한창 다투고 화해하고 뛰어다니며 노는 개구진 나이라, 함께 있을 때면 늘 혼이 쏙 빠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음식점에서 만큼은 심한 장난을 치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돌아다니지도 않는다.
내가 특별히 아이들에게 한 건 그리 많지 않다. 외식이 흔한 시대이니 만큼, 하루빨리 아이들이 음식점 에티켓을 익히길 바랐을 뿐이다. 장난이 심해지거나 목소리가 커지면 제지하고, 엉덩이를 들썩이면 자리에 가만 앉아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식당에서 아이들이 실수를 하려 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말해준 게 다였다. 아이들은 금세 에티켓을 숙지하고, 그에 맞게 행동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아기였을 때는 외식 자체가 힘들어 거의 하지 않았지만, 말이 통하고부터는 외식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물론 아이들이 아직 어려 뜨거운 걸 조심해야 하고, 음식들을 작게 잘라 그릇에 덜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했지만. 그걸 제외하곤 특별히 신경 쓸 게 없었다.
함께 메뉴를 고른 뒤 음식을 기다리며 다른 테이블에서는 무얼 먹는지,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는지, 어떤 냄새가 흐르고 있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우리 앞에 음식이 차려졌다. 그러면 다 함께 맛있게 식사를 즐겼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영상을 보여줘야 한다는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식사 시간만큼은 시선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컸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온전히 맛과 향과 분위기에만 몰입하며, 가족과 함께 즐기기를 바랐다. 밥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영양소를 섭취하는 행위를 넘어서는, 공감각적인 경험이니까. 가족이 눈을 마주치며 즐겁게 대화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친구는 자극을 받았는지 나와 헤어진 뒤 곧바로 아이와 함께 '영상 없이 식사하기' 연습을 시작했다고 전해왔다. 아이가 적응하는 데까지 꽤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을까 염려했던 마음이 무색할 만큼, 친구의 아이는 너무나 빨리 영상 없는 식사에 익숙해져 갔다.
초반에는 아이가 반발하기도 했지만, 충분히 설명해 주고 직접 떠먹도록 하니 아이가 금세 적응을 했다고 한다. 식당에서 지켜야 할 예절도 갈 때마다 언급하니, 아이가 잘 따랐다고 했다. 친구는 이렇게 쉬울 줄 몰랐다면서, 지난날 영상에 의존했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불안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떠올리고 처음부터 아예 차단하기 위해, 쉬운 방법만 고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칭얼대지 않아도, 돌아다니거나 타인을 방해하지 않아도, 식당 자리에 앉자마자 우선 영상부터 보여주는 건 적어도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음식점 등에서 지켜야 할 예절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책이나 영상으로 예절을 배우는 것과 직접 부딪히며 현장에서 배우는 건 다르다. 쉽게 가려다 너무나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유연하다. 쉽게 배우고 금세 적응한다. 반성도 빠르고 사과도 잘한다. 고마운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어른보다 훨씬 열린 마음으로 표현하는 게 바로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어른들이 좀 믿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가진 말랑한 유연함과 성숙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정작 준비되지 않은 건 어른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오감을 열고 가족과 눈을 마주치며 즐겁게 식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불안을 조금만 내려놓고 영상을 꺼보는 건 어떨까. 아마 어른인 보호자에게 더 소중한 시간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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