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는 서로에게 신으로 들어가는 문"

이안수 2024. 2. 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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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모든 것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관대한 영혼, 키키

필자는 멕시코를 여행 중이다. 길 위에서 조우하는 사람을 인터뷰한다. 아래는 작년 12월 23일에 방문한 토도스 산토스에서 만난 한 예술가의 작업실과 그의 이야기이다. <기자말>

[이안수 기자]

토도스 산토스는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의 최북단 티후아나로부터 루트 1(멕시코 연방 고속도로 1)을 따라 약 1600km 남부에 위치한다. 이 도로는 20세기 중반에 공사를 시작해 수십 년 동안 여러 구간으로 나뉘어 만들어져 이어졌다. 도로가 모두 포장되기 전에는 자동차로도 한 달이 걸렸던 때도 있었다. 이 반도는 사막이라서 더 사랑 받았고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더 동경했다.

오늘날에도 그렇기는 마찬가지이다. 영감을 찾아 떠도는 예술가나 서핑이나 하이킹에 빠진 사람이 아니면 찾아오기 힘든 곳이다. 그들은 고독 속에 팽개쳐진 해변, 사막의 끝에 만들어진 야자수 숲, 사막큰뿔양이 살고 있는 바위산에 기꺼이 시간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황량함은 벗어나고 싶은 곳이지만 어떤 사람들에는 지독히 끌리는 곳이기도 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이 커뮤니티가 주는 정서에 혼미해졌다. 너무나 눈부신 햇살을 피해 돌아앉은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좁고 짧은 골목이었다.

'성지', '감사할 이유', '우울대신 에스프레소' 같은 문구들이 붙은 공간들이 나란히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큰 좌탁 앞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는 한 여성에게 꽂혔다. 이 여성에게 말을 붙여보지 않고 떠난다면 오랫동안 미련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의 집중을 깨는 실례를 무릅쓰기로 마음먹었다. 'KIKI TODOS SANTOS'였다.
 
 방황뒤에 자신의 취향이 담긴 작업을 하고 있는 토도스 산토스의 예술가, 키키
ⓒ 이안수
 
"먼저 당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신의 머리가 길지 않았다면 아마 당신을 승려로 착각했을 것입니다. 승려 같은 당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제게 시간을 내줄 수 있는 짬이 될까요?" 그녀는 그럴 나이 같지는 않지만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이지요."

그녀 앞 큰 테이블 위에는 수많은 오밀조밀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무질서하다고 얘기할 수 없듯이 그 물건들은 내가 모르는 어떤 질서에 따라 놓인 듯싶었다.

그녀가 승려 같다고 생각했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의자가 없는 공간에 가부좌로 앉은 모습뿐만 아니라 천장에 걸린 '룽다(風馬)'가 나를 착각하게 한 것이다. 자세히 보니 각종 진언을 적은 룽다도 있었지만 금잔화, 캘리포니아양귀비, 민들레, 쐐기풀, 남수련 등을 그린 사각형 천을 룽다 기도 깃발 형식으로 엮어 달았다. 십자가와 불상, 칼라베라(calaveras 삶을 포용하는 의미를 담은 해골모양의 조각), 책과 엽서 등이 선반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놓였다. 그녀의 공간은 온통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는 긍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 이 공간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제 작업실이에요. 내 마음과 영혼의 내면을 밖으로 펼쳐놓은 곳이라 할 수 있죠. 우리 모두는 어두운 자궁으로부터 왔죠. 그것이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된... 말하자면 그와 같은 공간인 셈이에요."

- 무슨 작업을 하나요?

"천연재료로 작은 마법 크리스털 파우치 목걸이, 팔찌 같은 장식품들과 기도나 의식에 사용하는 기도봉, 영적 정화나 음악을 만들 때도 사용할 수 있는 딸랑이 그리고 온갖 것들을 만들죠. 전 오래된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세계의 각기 다른 곳에서 온 것들을 좋아하고 그 모든 것을 섞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에요."
 
 키키의 작업대. 그녀는 어릴적 진흙은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해서 온 몸에 진흙을 바르고 놀거나 수영장 안에 살고 있던 개구리와 노는 것을 좋아했다. 나중에는 방으로 데려가 상자를 만들어 함께 살았다.
ⓒ 이안수
 
- 당신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제 이름은 키키(Kiki)입니다. 43살입니다. 본명은 크리스티(Kristi)이죠. 전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좀 긴 이야기이기는 한데...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나파(Napa)에서 태어났죠. 와인 제조업자였던 아버지는 제가 한 살 때 돌아가셨대요. 포도농장에서 일하시는 중에 토끼를 쫓던 사냥꾼이 잘못 쏜 총에 맞았대요. 그후 우리는 산타 바버라 외곽의 작은 동네로 이사해서 엄마와 둘이 살았습니다.

그곳도 와인 생산지였기 때문에 와이너리가 모두 집처럼 느껴졌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와인을 조금씩 마시죠. 행운이었던 것은 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를 여행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아름다운 곳들을 여행했죠. 그런 과정 속에서 자유 정신이 충만해졌고 자연스럽게 제 관심이 외부 세계에서 제 내면 세계의 탐험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저입니다."

- 이 공간이 당신의 내면을 외면으로 구현한 곳이군요. 당신이 탐험한 내면을 당신이 생각한 방식의 구체적인 물성으로 창조하는 아티스트. 외면에서 내면으로 옮겨갈 수 있었던 좀 더 구체적인 계기에 대해 들을 수 있을까요?

"저는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대학을 가는 것 말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갔고 대학 생활을 즐기려면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각예술을 전공했죠. 전 대학에서 사진, 도자기, 댄스, 비디오 등 예술의 모든 영역을 탐구할 수 있었고 그것을 좋아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무엇보다도 저는 항상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퍼머컬처(permaculture ; 자연의 체계에 따른 지속 가능한 농업)에 대해 공부를 더 했습니다. 그리고 농장에서 일하면서 식물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었죠. 더불어 요가도 공부했습니다. 인도에 가서 비로소 요가가 내 몸 안에 존재하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후 자연계의 원리와 과거에 일어났던 것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오늘의 우리와 연결되는 지 계속 공부하고 있죠.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당신은 더 큰 존재와 연결, 자연에 대한 존중, 마음챙김 같은 영적 활동에 관심을 보이는군요.

"네. 저는 항상 영적인 작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저 혼자 덤불 속에서 곤충들과 동물들과 있는 시간을 살았습니다. 그것들이 나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죠. 모두가 실제로 누구의 일부이죠. 하지만 전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외적 앎과 내적 앎 그리고 영성에 대해서 깊이를 더해야 해요. 그리고 내면과 외면은 거울처럼 서로를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미러링(mirroring)이 계속되는 것이죠."

- 주로 의자에서 생활하는 문화 속 사람들에게는 바닥에 앉는 좌식생활을 불편해하던데 당신은 어떻게 의자 없는 생활을 좋아하게 되었나요?

"제게는 더 편하고 집에 있는 느낌이 더 듭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키키의 거실'이라고 부르죠. 의자 없는 생활은 내게 'Feels Like Home'이죠."
 
 그는 외적 앎과 내적 앎 그리고 영성에 대해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긍정의 태도를 지켜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 이안수
 
- 당신에게 인도에서의 경험이 상당히 중요한 전기가 된 것 같았어요?

"2006년 아쉬탕가 요가를 공부하기 위해 갔었죠.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요가를 한 후 인생이 바뀌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몸도 바뀌고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명상수업과 그림 수업도 들었습니다. 45분에서 1시간 정도 명상을 한 다음 마음을 완전히 비운 상태에서 존재 그대로의 자신을 그리는 그림이었는데 도전적이었지만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남아에서 8개월을 보냈어요. 먼저 태국으로 갔었죠.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마치 제 본거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어서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의 발리와 보르네오섬을 여행했어요."

- 그 여행의 목적은 무엇이었고 그 여행이 당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나요?

"당시 저는 26살이었고 샌디에이고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죠. 그때 사회에 대해, 나와 친구들에 대해 그리고 내가 결정해야 할 많은 것들에 대해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목적을 입증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 등... 그 여행 목적은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주는 모든 압박감을 해소하는 것이었습니다. 나 자신이 여기에 존재하는 곳이 유효하다, 는 쪽으로 나를 이끌었죠."

-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중에서도 남단인 이곳을 어떻게 발견했으며 왜 이곳에 정주할 결심을 하셨나요?

"이곳에 오기 전에는 샌디에이고에서 살았습니다. 팬데믹이 닥쳤고 그동안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이곳에서 한 달 살기를 하기 위해 내려왔죠. 팬데믹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고 나는 계속 이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곳과 사랑에 빠진 것은 100년 전쯤의 캘리포니아 감성이 이랬을 것이다, 라는 느낌 때문이에요. 사람은 많지 않고 여전히 비포장 도로여서 흙먼지가 날리고..."

- 이 공간 안에는 십자가도 있고 불교용품들도 있습니다. 당신은 특정 종교를 믿습니까?

"아닙니다. 어릴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어릴 적부터 종교들의 차이에 대해 질문하곤 했는데 여전히 똑같아 보여요.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신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는 서로에게 신으로 들어가는 문인 셈이죠."

- 당신이 대학 때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서 오늘날 이처럼 타인을 도울 만큼 단단해질 수 있었듯이 여전히 다양한 압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트레스로부터 멀어지는 조언을 부탁드려요.

"자연과 접촉을 늘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더불어 땅으로부터 온 것을 가지고 평소 갈구하던 뭔가를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을 해보세요. 자신이나 누군가를 위해 창조를 해보는 것이지요. 새로운 세대는 휴대폰이나 컴퓨터 화면 앞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느라 자연과 충분히 연결되는 시간이 줄어든 것 같아요.

지금의 우울증의 많은 원인은 바로 이 점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휴대폰에 너무 탐닉되어 있는 것 같아요. 휴대폰이 아니라 나 자신과 접속하여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너무 힘들면 하늘을 올려다 보세요. 하늘은 가장 가까이 있는 자연이잖아요."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이 각자의 여혼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서로는 서로에게 신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생각한다.
ⓒ 이안수
 
- 현재 이 삶의 스타일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 같나요? 가까운 미래에 염두에 둔 계획이 있나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의 꿈같은 비전은 있죠. 가족을 갖고 싶고 더 고요한 어느 곳으로 가서 정원을 만들면서 정말 단순한 삶을 살고 싶어요. 모르겠어요. 그런 일이 내게도 가능해질 수 있을지는... 하지만 그것은 나의 궁극적인 꿈이고 보다시피 저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구태여 치유의 공간이라고 명명하지 않지만, 그리고 사람들도 치유받기 위해 오는 것은 아니지만 떠날 때는 들어올 때와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떠날 수 있는, 영감을 주는 공간을 말이죠."

그녀의 바람은 이미 거의 이루진 것 같다.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마침내 지구와 주변의 모든 것과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관대한 영혼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공간 안에서 이런 영혼의 구원에 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의 많은 부분은 키키가 창조한 공간의 힘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키키는 질문마다 살며시 눈을 감고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답했다. 그가 눈을 감는 것은 아마 세상의 긍정 에너지를 불러 모으는 그녀의 리추얼 같았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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