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환장하겠네! ‘소년시대’ 임시완의 연기 진심 [OTT 내비게이션⑫]
오랜만에 드라마를 보면서 육성으로 키득거리고 배를 쥐고 웃었다. 한 번이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학창 시절에나 느꼈던 무방비의 즐거움을 터뜨렸다. 드라마 ‘소년시대’(감독 이명우, 극본 김재환, 제작 더스튜디오엠, 채널 쿠팡플레이) 덕분이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웹드라마 아니냐고? 맞다, 뒤늦은 리뷰다. 익히 재미있다는 소문은 들었다. OTT(Over The Top, 인터넷TV) 종류가 많다 보니 모든 앱이 활성화 상태이기 힘들다. 많은 시청자가 시즌2를 희망하고, 심히 고생했음 직한 주연 임시완도 ‘청년시대’ 되기 전에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포털 지식인 코너에까지 등장한 시즌2 제작 확정을 궁금해하는 질문들을 보며 더 이상 시청을 미뤄선 안 된다 싶었다.
지난해 12월 월간활성이용자 수 665만만 명을 기록했고, 필자를 포함해 많은 시청자를 새로 로그인하도록 만들었으니 실로 오랜만에 ‘소년시대’가 쿠팡플레이에 일냈다.
누가 잘했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극본에서 연출, 배우에서 스태프까지 다 잘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뿐 아니라 지역민들의 심성과 특성을 어쩜 그리 잘 녹여 극본을 썼는지 감탄이 절로 일고, 어쩜 그리 맛깔나게 코미디와 액션을 맛있게 버무려 가면서도 학폭에 관한 메시지를 참기름처럼 잘 썼는지 연출에도 박수를 보낸다.
참기름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드라마 처음부터 끝까지 그 분명한 향이 진동하면서도 결코 잔인한 가학과 핏빛 복수로 심각하게 물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무린다는 표현을 쓴 건 뒤죽박죽 섞어놓은 비빔밥이 아니라 김장김치에 물릴 때쯤 봄동을 버무려 입맛을 돋우듯 고소하고 맛나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10화 말미, 작가와 연출자가 한마음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화두로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는 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올바름이 멋지다.
배우들은 단역까지 정말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해야 마땅할 만큼 호연했다. 이선빈은 ‘흑거미’ 지영 역을 맡아 돌려차기 액션도 뽐내고, ‘쿵푸팬더’ 시푸가 되어 병태(임시완 분)를 단련시킴과 동시에 풋풋한 짝사랑 연정을 털털하고도 훈훈하게 과시했다. 드라마 ‘술꾼 도시 여자들’에서 그치지 않고 성장 가능 폭이 넓다는 걸 스스로 증명했다.
드라마 ‘종이달’에서 돈의 맛에 변질돼 가는 신인 영화감독 연기를 인상 깊게 펼쳤던 이시우는 ‘백호’ 경태 역을 맡아 분위기도, 액션에 유리한 출중한 ‘기럭지’도, 꽃미남 외모도 갖췄음을 확인시켰다. ‘부여 공주’ 선화 역의 강혜원은 아이돌 가수의 미모는 십분 살리되 연기는 욕심내지 않고 담백하게 표현하는 현명한 작전을 택했다.
부여농고 2학년 학생들을 맡은 배우들은 일진이든 학폭 피해자든 작품이 원하는 바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성실하게 연기했다. 깻잎 농사 많이 짓는 경덕이(이재학 분)를 비롯해 민이(김관모 분), 두용이(이태희 분), 우청이(정태수 분)를 아우르는 ‘부여농고 지질이 5인방’의 선두 ‘호떡’ 호석이 역의 이상진은 옆집 사는 지영을 향한 순애보와 병태와의 우정을 애잔한 코미디로 차지게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부여농고 일진 5인방’도 개성 넘쳤다. ‘자니 윤’ 영호(김윤배 분), ‘오함마’ 대진(허건영 분), ‘완쓰강’ 상우(박건주 분), ‘쌥쌥이’ 승호(서동규 분)와 같이 외모나 전투법 등 캐릭터에 어울리는 별명들이 있다. 5인방 외에도 주먹 좀 쓰는 ‘짱돌’ 상현(유영근 분)과 ‘빠글이’ 재문(박주아 분)에게도 별명이 있다. 아산 백호가 부여로 넘어오기 전까지, 일진 5인방의 리더였던 양철홍 역의 김정진은 개성적 외모와 안정적 연기력으로 겉으로 강해 보이지만 내면은 약한 ‘넘버2’의 모습을 잘 표현했다.
부여농고만이 아니다, 부여공고 3인방의 개성도 악랄함에 있어 보통이 아니다. 선화를 ‘목숨맹키로’ 사랑한 종민(정윤재 분)은 ‘쁘라이어’를, 싸움 제일 잘해 보이는 정배(윤태하 분)는 ‘삼각자’를, 큰 키만큼 흥분도 잘하는 원승(이건희 분)은 ‘몽키스패너’를 폭행에 쓰는데, 도구가 ‘공고생답다’고 해야 할까. 지영에게 혼쭐나는 사자머리 3인방(신윤정·전희정·김신영 분)은 영화 ‘써니’에서 ‘소년시대’로 공간 이동해 온 느낌에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난다.
청춘의 연기자들이 이토록 잘하는데 어른 배우들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다. 야쿠르트 배달하며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병태 어머니 미영 역의 주인영은 현실감 넘치는 모성 연기로 눈물을 일으킨다. 천하의 춤꾼으로 불법 댄스교습소를 하는 병태 아버지 학수 역의 서현철은 너무 솔직한 입과 현란한 춤사위로 큰 웃음을 준다. 지영 아버지 상교 역의 김정태, 바람기 많은 남편을 묵묵히 견디는 상미 역의 조지현은 집주인 표 내지 않고 형편 어려운 병태네를 품는 넉넉한 인심과 티격태격 충돌을 동시에 보여주며 극에 웃음을 보탠다. 부여농고 2학년 3반 담임 선생님 역의 정상훈은 잘생긴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완전히 빙의 되어 교실에서 농업 실습장에서 또 병태네 툇마루에서 리듬 있는 흥을 돋운다.
그래도 ‘소년시대’에서 가장 큰 웃음을 주는 이는 ‘븅태’ 병태 역의 배우 임시완이다. 10부작 드라마의 시작부터 중반을 넘어서도록 귀에 착착 붙는 충청도 사투리에 실감 나는 표정 연기로 ‘연기 참 잘함’의 인증을 수없이 찍어댄다. 사투리를 너무 잘해서 내레이션도 맛있는데, 시큰둥하면서도 의뭉스러우면서도 낙관하면서도 깊은 슬픔의 빠져 있는 표정과 사투리가 만나면 오지게 재미있다.
남 맞는 거 보면 웃으면 절대 안 되는데, 임시완은 ‘어찌케’ 된 일인지 맞으면서도 시청자에게 큰 웃음 준다. 그동안 학폭을 소재로 한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이렇게 세상 달관과 절망과 포기와 야유를 가득 담은 표정으로 맞은 배우는 없었다.
지질해도 너무 지질하다. 사회 부적응자 같은 모습이어서 지질한 게 아니라 어제도 맞고 지난주에도 맞고 지난달에도 맞고 허구한 날 맞고 살아오면서 그나마 영특한 머리로 터득한 건 어떻게 하면 덜 맞고 어떻게 하면 좀 피할 수 있는지의 반사신경밖에 없는 병태의 처절한 일상을 ‘조금의 미화 없이’ 구차하면서도 짠하게 표현했다.
착하긴 또 너무 착해서 학교를 그만두자니 고생하시는 엄니 마음 아플까 봐 울며 겨자 먹기로 교복 입고 책가방 들고 집은 나서는데, 학교 가면 맞고 또 맞는 하루가 다시 시작되니 무서워서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시작된 폭력 피해자의 삶이 고교 2년생이 되어도 변하지 않고 언제나 피식자 입장으로 살다 보니 사는 데 지쳤고 사는 게 지겹다.
‘소년시대’ 임시완의 말투나 표정뿐 아니라 머리 모양이나 교복바지 추켜올려 입은 모양새 하나를 봐도 자신이 보이그룹 ‘제국의 아이들’ 출신 가수거나 스타 배우라는 걸 다 내려놓은 모습이다. 조금도 멋있어 보이려 하지 않는다. 병태가 지질하면 시완도 지질하고, 병태가 초라하면 시완도 초라하고, 병태가 비굴하면 시완도 비굴하다. 연기에 진심이다. 그 너무나 진심인 모습이 비극을 희극, 진한 코미디로 승화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병태의 급변과 일어섬을 응원할 수 있다. 배우 임시완이 우리를 깊이깊이 병태의 힘겨움 속으로 데려갔고, 숨이 쉬어지지 않으니 나부터 살 요량으로 병태의 수직상승을 기원하게 되고, 병태 아니 평범한 우리의 승리를 꿈꾸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어쩜 저렇게 연기에 열심이고 진심일까’, 감탄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뱉어 말했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니 ‘아니 어떻게 이런 드라마를 시즌1만 만들고 끝내나’, 무척 아쉽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병태를 다시 만나고 싶다. 병태와 친구들 모두와 재회하고 싶다.
‘시즌2 제작 확정’ 겨? 쿠팡플레이는 시청자 목 빠지게 아물거리다 ‘노년시대’ 되기 전에 얼른 공식 입장을 발표하라고 병태처럼 확성기 켜고 외치고 싶다. 할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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