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를 이끌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동민 기자]
역사 인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일본의 교육학자 사이토 다카시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을 읽었다.
▲ 책<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 뜨인돌 |
이 책은 근래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딱한 내용의 역사책과는 많이 다르다. 인문학자가 역사를 서술할 때 자연과학의 영역인 인간의 본성을 고려하는 것은 본받아야 할 점이다. 인간의 행동은 본성을 반영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찰스 스노우가 <두 문화>에서 강조했던 인문학 문화와 자연과학 문화의 융합이기도 하다.
감정의 산물인 인간의 욕망이 세계사를 움직여왔다?
저자는 인간의 감정이 세계사의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전제에서 그 감정이 만들어낸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등으로 표현된다), 종교의 다섯 가지 힘을 제기했다. 세계사를 통사 차원에서 암기과목으로 대하는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 역사를 큰 흐름에서 파악할 수 있도록 써놓았다. 지금도 학교에서는 역사를 암기 위주로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학생들이 역사 공부에 흥미를 잃고, 역사의식이 희미한 채로 살아가는 게 아니겠는가?
마케도니아 제국을 비롯해서 로마제국과 이슬람제국, 진나라 등 제국이라는 게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남자의 서글픈 천성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 또한 주의를 끈다. 힘을 과시하며 남을 지배하고 정복하려는 욕망, 그렇게 해서 세운 제국을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욕망이 남성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욕망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건 이성이라고 설명한다. 그것도 원천적으로 세습의 본능적 욕망 즉 유전자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는 '궁극의 이성'을 강조한다.
고대국가 시대의 제국과 근대 이후의 제국은 공통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많이 다르다. 고대 국가가 제국을 지향하는 목표는 정복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자원을 확보함으로써 제왕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있었다. 피정복지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쓸모가 없다고 죽였지만,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포로를 확보해 노동력과 군사력으로 활용했다.
반면에 근대 이후의 제국은 시장과 자원 및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위해 노예무역까지 했다. 파생적으로 금융제국이나 미디어제국이 군림하는 것도 다르다. 제국주의 자본은 은행을 예금과 대출을 관리하는 기관에서 금융상품을 판매하고 산업자본을 관리하는 금융자본으로 전환시켰고, 미디어를 장악해 여론을 조작하는 데 활용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제국은 이념과 종교를 강제하지 않았지만, 근대 이후의 제국은 이념과 종교를 강제한다. 로마제국의 카이사르는 정복한 지역의 종교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이슬람제국의 아바스 왕조 때에는 이민족을 차별하지 않는 정책으로 번영할 수 있었다.
반면에 근대 이후 식민지를 개척했던 유럽의 국가들은 침략에 앞서 종교를 앞세웠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남미 지역의 국민들 사이에 가톨릭 신자들이 많은 것은 그 영향이다. 스페인으로부터 1571년부터 1904년까지 무려 333년간 지배를 받은 필리핀도 가톨릭 신자가 80%에 육박한다.
후발 제국주의 국가로서 열세를 만화하기 위해 무력으로 식민지를 확보하려 했던 파시즘의 등장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파시즘을 거론할 때,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비롯해서 폴란드인과 슬라브계 민족들, 뿐만 아니라 동성애와 정신장애인까지 포함해 '인종 청소'를 자행했듯이, 이슬람을 표적으로 삼아 학살을 자행하는 미국은 궁극적으로 나치 독일과 차이가 없다고 저자는 지적하기도 한다.
▲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부상을 입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2023년 11월 12일 |
ⓒ 로이터/연합뉴스 |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는가
와중에 다카시의 책에는 역사적 사실 오류도 발견된다. 저자는 두 번째 주제에서 '베버가 꿰뚫어본 자본주의 탄생의 비밀'을 소개한다. 여기서는 막스 베버의 책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과하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프로테스탄트를 수용한 나라들에서 자본주의가 활짝 꽃을 피운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기독교를 신봉하는 현실을 볼 때, 베버의 책은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다. 저자의 판단에 의하면 근대적 자본주의는 칼뱅신학을 받아들인 네덜란드, 영국, 미국에서 발전했다. 그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같은 가톨릭 국가나 프로테스탄트 국가라도 루터주의가 강한 독일에서는 상대적으로 자본주의가 뒤쳐진 게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베버의 논지와는 다르다. 베버 전문가인 김덕영 교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는 자본주의 정신의 다양한 인과 요소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강조한다.(김덕영, <막스 베버>, 2012, 607쪽)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선행적으로 발전한 반면 독일이 뒤쳐진 이유는 뭘까. 봉건체제를 청산하고 민족단위의 국가로 통일되었느냐의 여부에 따라 갈렸다. 민족단위로 통일된 절대왕정국가는 시장의 통합으로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가 활기를 띠었고, 무역에도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역사를 이끌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 나는 '삶의 의지'라고 본다. 인간은 태아때부터 천부적으로 삶의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다. 생물학으로 보면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의 욕구다. 이것이 자연환경과 인간관계를 겪으면서 인간의 본성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 후 역사의 과정에서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가 관계를 맺으면서 욕망의 화신,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 등이 형성되는 게 아니겠는가.
이 감성의 산물들을 이성 혹은 궁극의 이성이 제동을 걸 수 있을까? 세계사는 여전히 인간의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고 있는 듯 보이며, 역사에서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는데 말이다. 개인은 이성적일 수 있지만, 군중심리가 작동하고 그 심리에 정치가 영합하는 집단과 국가 차원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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