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 尹, 취임 후 처음으로 술 담았다…역대 대통령 설 선물의 의미는(종합)
작고한 부친 그리움 담아
대통령실 "전통주 산업 활성화 관심"
"올해 설 차례상에 윤석열 대통령이 보내주신 전통주를 올리려 합니다. 부친의 고향(공주)에서 빚은 술이라 하니 부친을 그리워하는 대통령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1일 오전 대통령의 손글씨가 담긴 메시지 카드와 전통주가 포함된 각 지역 특산물이 담긴 설 선물을 전달받은 한 인사는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이 인사는 "지난해 부친이 돌아가신 후 처음 맞는 설"이라며 "대통령께서도 지난해 부친이 작고하셔서 같은 마음이실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통령실은 전날 윤석열 대통령의 갑진년 설 선물을 공개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 후 설·추석에 각계 원로, 제복 영웅·유가족과 사회적 배려계층 등 각계 인사에게 선물을 전하고 있는데, 취임 후 처음으로 전통주인 '백일주(공주)'를 포함시켰다.
윤 대통령은 메시지 카드를 통해 "갑진년 청룡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국민 한 분 한 분 더 따뜻하게 살피겠습니다"며 "더 큰 미래의 주춧돌을 놓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설맞이 인사말을 전했다.
애주가 尹, 작고한 부친 고향서 빚은 술 선물
애주가로 알려진 윤 대통령의 첫 술 선물은 지난해 8월 작고한 부친 고(故)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의 고향 충남 공주에서 만든 차례용 백일주다. 흔히 계룡백일주라고 불리며 1989년 12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윤 대통령이 부친의 고향에서 빚은 전통주를 설 선물로 선정한 것에는 각별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제1의 멘토'라며 부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도 부친인 윤 교수는 "국민을 제1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를 윤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하며 멘토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올해 설 선물에 술을 처음으로 담은 것은 평소 전통주 산업 활성화에 관심이 많았던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며 "부친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더해 지역 특산물을 골고루 포함해 지역 화합의 의미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백일주는 밑술을 담그고 나서 덧술을 이차로 해 순후한 맛이 나도록 빚어낸 술이다. 익는 기간이 백일이 걸려 백일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원료인 찹쌀 이외에도 첨가물인 솔잎, 황국화, 잇꽃, 진달래꽃, 오미자 등이 포함된다. 이 술은 원래 왕실에서만 빚어지던 궁중 술이었으나 조선 인조가 반정의 일등 공신인 연평부원군 이귀의 공을 치하해 제조기법을 연안이씨 가문에 하사해 부인인 인동장씨가 왕실에서 양조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2005년 2월에는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선정됐다.
역대 대통령의 설 선물로 백일주가 선정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설 선물로 농림부 지정 전통식품 명인 제1호인 완주군 소재 송화양조에서 만든 '송화백일주'를 각계각층에 전하기도 했다. 전통주는 역대 대통령 선물 단골 메뉴 가운데 하나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한산 소곡주·김포 문배주·가야곡왕주,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전북 이강주, 평창 감자술·담양 대잎술 등을 포함시켰다.
역대 대통령 선물 키워드는 '통합·포용·맞춤형'
대통령의 선물은 '선물 그 의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통령의 통치 철학은 물론 대국민 메시지까지 담겨 있어 어떤 물품으로 구성했는지 자체가 세간의 관심거리다. 윤 대통령은 전통주 이외에 유자청(고흥), 잣(가평), 소고기 육포(횡성) 등으로 구성된 선물세트를 준비했는데 여기에는 지역 특산물 소비 촉진은 물론 각 지역 안배를 통한 화합의 메시지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명절 선물에 각 지역의 특산물을 '통합'했던 건 노 전 대통령 시절부터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설을 맞아 평창 동계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평창 특산품을 골랐다.
설 선물에는 대통령의 취향도 반영된다. 전통주를 즐겨 선물했던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명절 선물에 술을 배제했다. 이 전 대통령의 종교적 색채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술 대신 2016년 보은 대추·장흥 표고버섯·통영 멸치 등 지역 특산품 3종 세트를 설 선물로 선정해 지역 안배 철학을 담았다.
군사독재 시절인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은 설날 선물을 하사품(下賜品·임금이나 윗사람이 준 물품)으로 군인·집배원·해외 파견 근로자 등에게 나눠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군 장병과 어려운 국민들에게 담배, 해외 파견 근로자들에게는 고추장과 김치를 선물했다. 담배의 경우 흡연에 관대했던 당시 사회 분위기와 애연가였던 박 전 대통령의 기호가 맞아떨어진 선물이라는 평가다. 전 전 대통령의 경우 신문 집배원·광부 등 추운 겨울 밖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위해 방한 외투 및 내의를 선물하기도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은 봉황 휘장과 대통령 하사품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포장지에 담긴 인삼을 설 선물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설 선물로 식품이나 공산품이 아닌 격려금을 선호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향 특산품을 보냈다. 경남 거제가 고향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부친이 멸치잡이 어장을 소유한 덕에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멸치를 선물했다. 야당 총재 시절에는 해마다 3000상자, 여당 최고위원 시절에는 5000상자를 선물해 'YS멸치'라는 별칭이 붙었고, 국내 멸치가격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향인 전남 신안의 김과 한과를 선물로 보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역대 대통령 선물을 종합해보면 '통합·포용·맞춤형'으로 함축된다"면서 "올해 윤 대통령의 설 선물상자에는 한센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국립소록도병원 입원 환자들의 미술작품을 소개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선물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담겨 있는 것도 공통점"이라고 전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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