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친화도시'라는 구미에서 고공농성하는 두 여성 노동자

정은희 2024. 2. 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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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여성파업조직위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를 찾아가는 이유

[정은희 기자]

▲ 1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 두 명과 함께 연대 동지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 스튜디오 알
 
구미시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에 가면, 가장 먼저 삽을 든 녹색 모자의 마네킹들이 맞아준다. 영락없이 박정희 시대 모습이다. 거대한 박정희 동상도 그때 그 시절인 듯 구미를 내려다본다. 하지만 테마공원 내 북카페에는 제법 진보적인 도서도 꽂혀 있다. 구미시는 박정희의 고향에, 국민의힘 아성이지만, 2018년에는 민주당 출신 정치인을 시장으로 뽑았다.

하지만 노동자의 처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것도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이 그렇다. 테마공원에서 조금만 더 가면 2010년 새벽 기숙사에서 용역깡패가 뿌린 소화기 분말을 마시며 멱살 잡혀 끌려 나갔던 KEC 여성 노동자들이 여전히 승급 성차별 해소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반면 구미 곳곳에서는 미스코리아 경북 선발대회 플래카드가 보란 듯이 펄럭인다. 

그런 구미에서 두 여성 노동자가 약 한 달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이다. 이들은 공장에 화재가 나자 그 동안 누렸던 수많은 특혜와 6조 원의 영업이익, 1300억 원이 넘는 화재보상금에도, 평택공장으로 생산시설만 빼가고 노동자들은 정리해고해 버린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사측에 대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투쟁 중이다. 사측에 "쓰다 버려진" 11명의 노동자가 함께 투쟁한 지는 벌써 만 2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이번 겨울 가장 춥다는 1월 8일, 사측의 강제철거 시도에 맞서 두 여성 노동자가 공장 옥상에 올랐다.

두 여성은 안간힘을 다해 공장을 부여잡고 있지만, 사실 구미시는 여성이 떠나가고 있는 도시다. 경북(49.6%)이나 전국(50.2%)과 비교해도 여성비율이 낮다. 구미시 노동자의 성별 비율은 남성이 62.8%, 여성은 37.2%에 불과하다. 남성 노동자의 비중도 전국이나 경북보다 높은 편이다. 더구나 14세 이하 남성을 제외하면, 20~30대 여성의 이주율이 가장 높다. 지난 5년간 줄어든 약 1만 명의 주민 중 다수의 성별은 여성이었다. 

여성이 텅텅 비는 공동화 현상. 그것은 자본의 책임이다. 구미시의 산업은 광·제조업이 70.3%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며 그다음으로는 기타 서비스가 20.1%다.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체 수가 86.9%, 5~19인 사업체가 10.3%의 비중을 차지하여 소규모 사업장이 절대다수다. 즉 90%에 가까운 사업장이 근로기준법 무풍지대다. 그런 사업장에선 해고가 자유로워 여성이 출산육아 때문에 해고되어도, 막을 방법이 없다. 법정 근로시간이나 연장근로 한도도 제외된다. 물론 그 때문에 가산임금도 받을 수 없다. 위법임에도 5인 미만 사업장 10명 중 3명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은 구미에서도 다를 이유가 없다.

이러한 구미에서 여성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란 애초부터 어려운 문제다. 운 좋게 일자리를 찾아도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할지는 상상이 가능하다. 특히 구미는 수년째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여성의 실업률이 남성보다 다소 낮다 하더라도 보통 여성 일자리가 단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고용 여건이 더욱 불안정할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한 명 두 명씩 여성은 구미를 떠나간다. 물론 고용형태, 노동조건, 임금 어느 하나도 보장된 최종목적지는 없다. 하지만 여기보단 나을 것이라는 가느다란 소망을 안고 여성들은 빠져나간다. 

그런 구미지만, 소현숙, 박정혜 씨는 사력을 다해 구미를, 공장을 부여잡고 있었다. 소현숙씨만 해도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17년을 일했다. 박정혜씨가 일한 지도 12년째였다. 땀과 피와 눈물을 쏟아낸 공장이었다. 여성 노동자는 검사 공장에, 남성은 생산 공정에 7 대 3으로 분명한 성별분업이 이뤄졌다. 그런데도 관리자 다수의 성별은 남성이었다.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이 없기는 하지만, 남성의 직급이 높으니 자연스럽게 남성의 임금이 더 많다. 생리휴가 역시 무급이었다.

더구나 여성들은 하루 종일 암실 의자에 앉아서 불량 검사를 하기 때문에 팔, 어깨, 허리, 목에 늘 통증을 달고 살았다. 필름을 검사하다 눈이 찔리는 경우도 있었다. 소현숙 씨는 일하다 각막까지 손상됐다. 그런데도 늘 그랬던 것처럼, 산재는커녕 치료비 모두 자신이 해결해야 했다. 

이는 두 여성 노동자만이 아니라 여성 다수 직종인 반도체 산업에서의 이야기다.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반도체 산업에서 저임금 노동을 하다 적지 않게 직업병에 걸렸다. 삼성전자 산업재해 희생자의 다수도 여성이다. 그러나 현재 반도체 산업은 오히려 남초 사업장으로 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기계화하기 쉬운 노동을 자동화하여 여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부터 없앴기 때문이다.

옵티칼 여성 노동자의 삶을 지키는 연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사측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여성 노동자들을 차별했지만,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그들을 애지중지했다. 회사는 2003년 구미4국가산단 외국인투자전용단지에 입주한 후로 1만2천 평의 땅을 무상으로 사용했고 법인세와 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을 받았다. 더구나 본사 닛토덴코는 220억 원을 투자해 2021년까지 1983억 원의 세후 이익을 냈고, 1734억 원의 배당금을 가져갔다(금속노조 법률원). 공장에 화재가 난 뒤로는 화재보험금으로 약 1300억 원을 챙겼다. 하지만 회사는 생산 물량을 자매 법인인 경기도 평택 한국니토옵티칼 공장으로 옮겼을 뿐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는 외면하고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본사인 일본 닛토덴코사는 노골적으로 한국기업 편을 들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입으로는 좋은 말을 참 많이 한다. ESG 경영(환경, 사회, 거버넌스를 중시한 경영)과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를 중시하며 생태와 사회, 그리고 여성을 비롯한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경영진과 사업부, 인재본부가 삼위일체가 되어 여성 지도자를 육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성 지도자의 비율을 203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30%, 일본 국내에서는 10%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자를 착취하는 한 그들의 말은 한낱 '퍼플워싱'일 뿐이다. 더구나 지난해 다카사키 히데오 일본 닛토덴코 대표의 소득은 모두 26억5천만 원에 달했다. 이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평균연봉 약 5천만 원의 53배다. 

그런데도 회사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4억 원을 가압류한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매일 950만 원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있다. 그들이 지난 11일 금속노조와 옵티칼지회, 조합원 15명이 철거공사를 방해하고 있다며 낸 가처분 소송을 법원이 인용한 탓이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와 옵티칼지회는 각 200만 원 씩, 조합원 11명은 각 50만 원씩 부담해야 한다. 더구나 가처분 결정 이후 회사는 매일 컨테이너와 포크레인을 대동하고 침탈을 시도하고 있다. 노조는 사력을 다해 막고 있다. 

박정혜, 소현숙 두 여성 노동자는 씻지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한 달째 버티고 있다. 텐트를 제법 튼튼하게 지었지만, 영하 10도의 칼바람이 불 때면 날아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텐트를 붙잡아보기도 한다. 공장을 붙잡는 심정과 다르지 않다. 옥상이 기울어져 있다 보니 차츰 골반도 아파온다. 생리를 피하기 위해 날짜에 맞춰 피임약도 먹는다. 티슈로 몸을 닦고 머리는 3일에 1번 동지들이 길어주는 물을 데워 감는다. 이 물 역시 사측이 단수해 버린 공장에서가 아니라 동지들이 길어온 것이다.

날이 새면 또 철거 이행강제금 950만 원이 쌓일 것이다. 그러나 여성에게도 해고는 살인이다. 그래서 아무리 경찰과 용역과 포크레인이 쳐들어와도 박정혜, 소현숙 동지는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아니 더 이상 밀려나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서 자꾸 이를 더 악물게 된다. 그리고 그런 옵티칼 동지들의 삶을 지키는 이들이 바로, 여성 노동자에게 투쟁이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KEC지회 여성 노동자들이다. 구미시가 지난 1월 23일 여성친화도시로 선정됐지만, 정작 옵티칼 여성 노동자의 손을 맞잡고 있는 이들은 KEC지회와 아사히비정규직지회 같은 투쟁하는 노동자와 연대 동지들이다. 

고공농성 이후 옵티칼 현장에는 더욱 많은 노동자와 구미 시민들이 찾아오고 있다. 2024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도 2월 3일(토) 박정혜, 소현숙 동지에게 달려간다. 세종호텔 농성장에서 진행된 1차에 이어 2번째 오픈 마이크 행사다. 우리는 여기서 옵티칼을 비롯해 여성 노동자의 삶과 노동 그리고 투쟁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동지들의 연대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  참가신청 링크: https://forms.gle/UKxzSVDJJN7J4ofj6
  
▲ 2 웹자보
ⓒ 2024년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
 

덧붙이는 글 | 사회주의를향한전진 기사페이지에 1월 31일 발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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