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판된 사전에서 발견한 재미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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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자 박용수 선생께서 오랜 세월 공들여 집필하신 <우리말 갈래 사전> 은 명서로 불릴 만한 사전이다. 우리말>
<우리말 갈래 사전> 을 넘겨 보다가 ㅊ(치읓)으로 시작하는 소리 흉내말만도 한 보따리인 걸 알고 놀랐다. 우리말>
얼핏 보아선 비슷해 보여도 낱말 하나하나가 서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심상을 표현하는 귀한 우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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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기자]
▲ 우리말 갈래 사전, 박용수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부 |
ⓒ 임태희 |
국어학자 박용수 선생께서 오랜 세월 공들여 집필하신 <우리말 갈래 사전>은 명서로 불릴 만한 사전이다. 특히 북한말까지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는 점과 작문 과정에서 찾아쓰기 쉽게 갈래별로 잘 정돈해 묶어놓은 것이 특장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절판되어 헌책방에서만 간혹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운 좋게도 최근 한 헌책방을 통해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장만할 수 있었다.
<우리말 갈래 사전>을 넘겨 보다가 ㅊ(치읓)으로 시작하는 소리 흉내말만도 한 보따리인 걸 알고 놀랐다. 차근차근 음미해 보니 서로 약간씩 변주가 되면서 놀랍도록 다른 심상을 자아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컨대 자음 ㄱ(기역)은 거센소리와 된소리로 변주가 되면서 찰가당-찰카당-찰까당으로 경쾌하게 뻗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전에 없던 색다른 느낌들이 파생된다.
또, 모음에 점 하나를 달리 찍어 전혀 상반된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삭독'과 '석둑'이 그러하다. 삭독은 잔망스러운 모양을, 석둑은 서늘한 기운을 떠오르게 한다. 얼핏 보아선 비슷해 보여도 낱말 하나하나가 서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심상을 표현하는 귀한 우리말이다.
소리 흉내말을 하나씩 천천히 음미하다 보니, 그때 그 시절 추억의 소리가 연상되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엔 두부 장수나 찹쌀떡, 메밀묵 장수들이 쇠로 된 커다란 엿가위나 종을 치며 돌아다녔다. 쇠끼리 부딪는 소리를 표현한 낱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까 영락없이 그 소리가 떠오른다.
생각난 김에 재미난 우리말로 시도 짓고 그림도 그리며 말놀이를 해 봐야지 마음먹었다. 집에 있는 가위란 가위는 죄다 집합시켜 한 줄로 뉘어 놓고 살펴보니 미용가위가 가장 예뻤다. 그래서 오늘 그림의 주인공으로 낙점했다.
▲ 우리말로 놀이하듯 글을 짓고 그림을 그려 보았다. |
ⓒ 임태희 |
재미난 우리말 놀이 - 쇠타령
임태희
가위질로 신명 나게
쇠타령을 하여 보세
엿가위로 하여 보세
재봉가위로 하여 보세
차르랑차르랑 하여 보세
찰그랑찰그랑 하여 보세
찰가당찰가당 하여 보세
찰까당찰까당 하여 보세
찰카당찰카당 하여 보세
철꺼덩철꺼덩 하여 보세
삭뚝 쳐야만 쇠의 도道인가
삭독 오리고
석둑 베어도 보세
삭 삭삭 가르고
석 석석 자르세
가위질로 신명 나게
쇠타령을 하여 보세
보석상자 같은 우리말 사전을 펼쳐놓고 놀다 보니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범람하는 외래어와 신조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아 사라지고 있는 어여쁜 우리말이 늘고 있다.
안타깝다는 감상을 넘어서서 우리말을 지켜내려는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즐거운 방식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래서 나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땅속에 묻혀 있는 재미난 우리말을 발굴하여 즐거운 방식으로 놀이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찰까당, 삭독! 우리말로 신명 나게 제안해 보련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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