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순서 양보하는 노인의 말 못할 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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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종 기자]
커피를 엄청 좋아하진 않지만 가끔 마시며 살아간다. 나의 공간에 흩날리는 커피향에 취하기도 하고, 추운 집에 살다 보니 따끈하게 몸을 데워보고 싶어서다. 지나는 길에 커피점을 찾았다. 커피숍에 앉아 마시려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서 마셔보려는 것이다. 머릿결이 희끗한 고희의 청춘이 커피잔을 든 모습도 괜찮아서다.
50대 정도의 여자 주인장, 키오스크를 할 줄 아느냐 묻는다.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깐의 쉼 후에 할 줄 안다고 했다. 잠시 생각할 여유를 둔 것은 내가 해낼 수 있을까를 의심해서다. 홀로 여유롭게 하면 무난하게 해결하는데, 뒤에 누군가 있으면 늘 당황하기 때문이다.
혹시 뒤에서 흘깃거리며 바라보면 어떻게 할까? 이내 주문하지 못하면 얼마나 창피할까? 얼른 터치 화면을 눌러보지만 엉뚱한 화면이 나타난다. 얼굴이 화끈 거린다. 다시 마음을 되잡고 눌러봐도 오갈 데 없는 손가락이 허공을 헤매다 결국은 뒷사람에게 양보하고 만다.
▲ 음료주문용 키오스크 음료를 주문하려면 만나게 되는 키오스크다. 메뉴도 다양하고 방법도 다양해 언제나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장벽이기에 오늘도 하나씩 배워가며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
ⓒ 박희종 |
카드만 내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던 시절은 가버렸다. 늙을 줄 몰랐던 몸이 쉬이 적응할 수 없음에 조금은 화가 난다. 왜 이렇게 삶은 복잡하게 흘러가는가? 심호흡을 하고 키오스크에 다가서며 용기를 내 본다. 아무도 없으니 걱정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듬거렸지만 무난하게 커피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마음은 씁쓸하다.
세월이 많은 것을 망설이게 하기 때문이다. 순간 젊은이가 들어왔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듯이 주문하고 기다린다. 조금 더 화가 나는 것은 냉정하리만큼 공정한 세월의 무심함이 떠올라서다. 핸드폰이 순간적으로 당황스럽게 하고, 컴퓨터가 쩔쩔매게도 하며 또 앞을 막고 선 큼직한 키오스크가 어쩔 줄 모르게 한다.
느닷없이 사용하던 휴대폰이 먹통이 되고, 컴퓨터 화면이 껌벅거린다. 이것저것을 눌러보아도 소용없다. 할 수 없이 휴대폰을 들고 A/S센터를 찾아갔다. 서비스를 접수하던 직원이 접수할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해결해 주니 쑥스러워 쏜살같이 문을 나서고 만다.
전화기는 해결했다면 컴퓨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한한 인내심을 무기 삼아 아이들이 집에 오는 날만 기다린다. 언제 와서 손을 봐줘야만 한숨을 쉴 수 있다. 오래 전의 내 부모의 기억이다.
오랜만에 시골집을 찾았다.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는 자식들이 반갑기도 하지만, 전등을 갈아 끼우고 텔레비전을 봐줘야 하기 때문이다. 후딱 해결해 주는 자식들이 엄청난 기술자인 양 바라보셨지만, 어느새 내 부모의 세월이 되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해낸 철부지는 순간이 지나 부모의 처지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낯선 기계들은 한층 혼돈스럽다.
▲ 한 대학병원에 설치된 키오스크. |
ⓒ 최은경 |
키오스크는 대부분 상점에서 셀프 주문 역할이다. 도시는 물론이지만 시골 곳곳에도 찾아들었다. 번거로움을 간소화하고 인건비를 줄인다는 기계가 곳곳에 설치된 것이다. 호텔 체크인, 항공권 발권 등 다양한 서비스에 이용되어 삶을 간소화하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당황스러운 것은 키오스크 외에도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오랜만에 나들이를 위해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길가에 목을 늘이고 서 있으면 택시가 왔고, 손을 들면 어김없이 택시가 찾아왔었다. 지금은 어림도 없는 세월이 되었다. 기사가 손사래를 치고 지나가며 '예약'이란 표시등이 약을 올린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나오면 무인 계산대가 기다리고 있다. 디정하게 웃어주던 계산원들 자리에 무인 계산대가 생긴 것이다.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도우미가 얼른 다가온다. 동네 병원에 들어서면 진료접수도 키오스크로 해야 했다. 눈치를 살피자 얼른 도우미가 찾아오지만 쑥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어려워도 배워야 산다
▲ 식당 테이블마다 주문할 수 있는 탭. 종업원을 따로 부를 필요가 없다. |
ⓒ 최은경 |
아침 운동을 하고 나오는 복지센터 입구에 젊은이들이 서성인다. 책상 위엔 홍보물이 있고 한 구석엔 커다란 단말기가 서 있다. 웬일인가 하여 기웃거리자 한번 체험해 보라 한다. 모형 키오스크로 사용법을 알려주고, 핸드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교육팀이다. 언뜻 늙어가는 사람으로 보였는지 조심스레 다가온 것이다.
아직은 그런 나이가 아니라는 쓸데없는 자신감으로 얼른 자리를 피했다. 외모와는 다르게 웬만한 것은 해결하며 살아간다는 쓸데없는 오만함이었다. 핸드폰 사용법도 알려주고, 키오스크 작동법도 알려줄 테니 다음엔 꼭 해보란다. 세월에 거스르고 싶은 심정을 금방 후회하고 말았다. 이왕이면 배우고 올 걸.
여행 중에 지나는 고속도로에도 맞아주는 사람이 없다. 텅 빈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통행료는 자동 계산되고, 모든 것은 우뚝 선 기계가 해결해 준다.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관계가 어느 순간 달라지며 메마른 너와 내가 되고 있다. 세월의 변함은 어쩔 수 없음에도 가끔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세월 따라 변하는 삶의 모습, 오래 전의 푸근한 정은 기억 속에 남겨놓고 어렵지만 배우며 살아가야 한다. 긴 줄 속에 서 있어도 망설이지도, 쑥스러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앞뒤 젊은이에게 물어보고, 도우미이게도 요청하며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만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머뭇거릴 것도 없이 익히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현대를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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