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90%" 연임 확실…'43세 독재자' 이 작전 통했다

임선영 2024. 2.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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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국가 엘살바도르는 85년 만에 연임 대통령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는 4일 치러질 대선에서 우파인 나이브 부켈레(43) 현 대통령의 압승이 확실시된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대국민 연설 후 국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부켈레 대통령은 2019년 취임 후 초강력 범죄 소탕 작전을 펴 전국민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지난해 살인 범죄 발생 건수는 전년보다 70% 감소했고, 대통령 지지율은 80~90%대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중남미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이념 성향과 관계없이 그의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포린폴리시는 "엘살바도르는 인구 600만 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이번 대선은 올해 세계 주요 선거 중 하나"라고 했다.

일각에선 그가 연임을 통해 새로운 독재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원래 엘살바도르는 헌법상 임기가 5년인 대통령의 중임은 가능하지만 연임은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부켈레 대통령은 헌법까지 무력화하며 연임 도전을 밀어붙였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부켈레는 독재자"라고 비판한다.


취임 5년 만에 '가장 안전한 중남미 나라'로


그러나 부켈레 대통령에겐 적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갤럽이 엘살바도르 국민 12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3%가 이번 대선에서 부켈레에게 투표하겠다고 했다. 다른 후보들의 지지율은 2~3%대에 불과하다. 엘살바도르 대선은 4일 1차 투표에서 어느 후보도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두 후보가 30일 후 결선 투표를 치르는 구조이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부켈레는 취임 5년 만에 엘살바도르를 '중남미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엘살바도르는 2015년만 해도 세계에서 살인율(인구 10만 명당 106.8건)이 가장 높은 나라였다.

수도 산살바도르는 이 나라 범죄 대부분이 벌어져 '세계의 살인 수도'란 오명까지 얻었다. 살인 대부분은 폭력 조직에 의한 것으로 이들 조직은 주민들을 상대로 갈취와 폭력을 자행하고 마약을 밀매해왔다. 엘살바도르는 1980년대 10년 넘게 좌우 진영의 유혈 내전을 겪었다. 이후 정정 불안와 경제난 속에서 폭력 조직이 활개를 치며 만성적인 치안 불안에 빠졌다.

30일(현지시간) 엘살바도르의 한 상점에서 부켈레 대통령의 모습이 그려진 기념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희망이 보이지 않던 엘살바도르에 혜성처럼 등장한 정치인이 부켈레였다. 그는 광고회사를 운영하다 2015년 34세에 산살바도르 시장이 됐다. 부켈레는 조직 범죄 소탕 작전을 펴는 동시에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이 폭력 조직에 빠지 않도록 교육·복지를 강화하고, 운동장·도서관 등 인프라를 확충했다.

그 결과 1년 만에 산살바도르의 범죄율은 16% 감소했다. 부켈레의 조부모는 팔레스타인계 이민자 출신이고 그의 아버지는 부유한 사업가로 알려졌다. 또 부인 가브리엘라 로드리게스 데 부켈레와의 사이에 딸이 두 명 있다.


"갱단에 돈 안 뜯겨"...주변국들도 벤치마킹


부켈레는 2019년 38세에 자신이 창당한 정당 누에바이데아스(새로운 생각)의 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거대 양당 후보들을 제치고 당선됐다. 이어 2022년 3월 범죄를 뿌리 뽑겠다며 '마노 두라(mano dura·철권 통치)' 작전을 폈다.

경찰이 갱단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누구든 체포할 수 있도록 해 성인 인구의 2%에 해당하는 약 7만5000명을 교도소에 수감했다. 피의자 4만 명이 수용될 수 있는 중남미 최대 규모의 교도소도 신설했다. 그 결과 엘살바도르는 지난해 살인율(10만 명당 2.4건)이 중남미에서 최저 수준이 됐다.

김경진 기자


로이터통신은 "이제 엘살바도르 자영업자들은 갱단에 돈을 뜯기지 않고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으며 아이들은 해가 진 후에도 밖에서 놀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젊은 대통령'인 부켈레는 세계 최초로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채택하고 가죽 재킷과 청바지를 즐겨 입는 파격 행보로도 눈길을 끌었다.

주변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부켈레식 치안 정책을 따라하고 있다. 에콰도르의 우파 다니엘 노보아 대통령은 엘살바도르처럼 갱단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형 교도소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온두라스의 좌파 시오마라 카스트로 대통령은 대대적으로 범죄를 단속 중이며 섬 지역에 갱단 간부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도소를 짓겠다고 했다. 콜롬비아·칠레·페루·코스타리카·과테말라 등 중남미 여러 국가들의 정치권과 시민들 사이에서 부켈레식 정책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엘살바도르 교도소에 수감된 갱단 조직원들. AP=연합뉴스

"니카라과식 독재 국가 우려"


그러나 더 타임스는 "일각에선 엘살바도르가 니카라과식 독재 국가가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고 전했다. 니카라과는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이 20년간 철권 통치 중이다. 매체는 시민단체를 인용해 엘살바도르 경찰이 무고한 이들을 심증만으로 구금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헌법적인 연임 도전도 논란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헌법엔 '대통령 임기 시작 6개월 전에 대통령직을 수행한 자는 대선 후보가 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친정부 성향 판사들로 구성된 대법원은 지난 2021년 이 조항을 '현 대통령이 (연임할 경우) 취임 6개월 전에 물러나면 다시 출마할 수 있다'고 해석해 그에게 연임의 길을 열어줬다. 부켈레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연임을 위해 지난해 12월 6개월 간의 무급 휴직을 신청했고 여대야소인 국회는 이를 승인했다. 그가 이번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오는 6월 취임하게 된다.

부켈레 대통령이 지난 2021년 2월 모자를 쓴 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엘살바도르에서 연임에 도전하는 대통령은 1939년 군사 독재자 막시밀리아노 에르난데스 마르티네스 이후 처음이다. 부켈레는 스스로도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독재자"라고 칭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젊은 부켈레는 연임 성공 후 세 번째, 네 번째 당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로이터통신은 부켈레 대통령의 재임 기간 국가 부채가 급증하고, 물가는 치솟았다며 경제 개선이 과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한편으론 그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지난해부터 나타난 중남미의 탈핑크 타이드(좌파 정부 연쇄 집권 탈피) 경향이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 4월 파라과이, 10월 에콰도르,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우파 성향 후보가 승리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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