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장애미학 암중모색
방근택(1929∼1992)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서막을 연 추상미술의 시대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던 미술평론가다. 부산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당초 문학평론가를 지망했지만 순전히 그의 재능을 알아본 박서보(1931∼2023)의 권유 때문에 미술평론가로 선회했다.
박서보가 누구인가. 구상 회화 중심으로 흘러가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의 권위에 반발해 청춘과 항거의 상징으로 추상화를 시작했던 30대 청년 작가들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박서보의 초기 추상화가 ‘앵포르멜’(전후 유럽의 끈적끈적한 추상화)을 닮았다고 ‘해석’ 해준 이가 방근택이었다. 박서보를 한국 화단에 굳건히 자리매김한 것은 단색화로 평가받는 ‘묘법’ 연작이었다. 이를 프랑스어 ‘에크리튀르(Ecriture)’로 번역한 이도 방근택이었다. 그런 재주가 있으니 자신에게 온 원고 청탁을 방근택에게 넘기며 신문 지면을 마련해 주면서까지 그가 미술평론가로 뿌리를 내리도록 도왔던 것이다.
지난해 가을 타계한 단색화의 대가 박서보 선생에게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홍익대 사단을 이끌며 미술계에 군림한 패권주의자라는 비판이 따라다닌다. 그런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바지한 공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미술은 그림 혼자 가는 게 아니라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평론이 함께 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는 점이다. 이는 동시대 다른 화가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식견이었다. 홍익대 교수 시절 미술 실기를 이론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며 예술학과를 만든 것도 그였다고 한다.
미술가에 장애 예술 전시가 넘쳐나고 있다. 민화와 함께 장애 예술이 인사동 화랑가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대통령 부인의 장애 예술에 대한 관심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시가 증가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전시만 우후죽순 열리는 것은 장애 예술의 지속가능한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미술이든지 그것이 지금 시점에 왜 중요한지, 특히 미술사의 큰 흐름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계는 무엇인지, 또 무엇이 보완돼야 하는지 등 비평이 담보되지 않으면 지속되기 힘들다. 2007년 미술시장에서 반짝 유행했던 한국의 팝아트가 거품처럼 꺼진 것은 담론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박서보가 이끌었던 단색화는 미술평론가들이 지속해서 담론으로 뒷받침해줘 국제무대에서 끊임없이 호출된다. 덕분에 ‘포스트 단색화’까지 조명받았다.
장애 예술은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에 서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유입된 이후 페미니즘 미술, 성 소수자 예술 등이 소수자 예술로 조명받아 왔다. 이제 장애 예술이 그 바통을 이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므로 장애 예술을 둘러싼 담론의 생산은 이제 시작이다. 미개척지이자 불모지다.
국민일보가 신경다양성(발달장애) 신진 예술인 발굴을 위해 한국의 실험미술 거장 이건용 작가와 손잡고 제정한 제2회 아르브뤼미술상 수상자 전시회 ‘神經(신경): 신이 다니는 길, 그 길 위의 목소리들’이 3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갤러리에서 개막했다. 이는 단순히 전시 관람 기회를 제공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장애 예술을 둘러싼 새로운 담론의 생산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여타 전시와 차별화된다. 2월 7일 ‘아트 토크: 장애 미학 암중모색’을 개최함으로써 장애 미학에 대해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아트 토크에는 미술평론가인 서울대 미대 심상용 교수, 장애 예술에 특화한 미술평론가 최창희씨, 미술 작가 겸 장애 예술 기획자 유화수씨가 발표자로 참여한다. 아트 토크에서는 수화 통역이 제공된다. 말 그대로 암중모색의 자리가 될 아트 토크에 벌써부터 미술평론가들이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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