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용의 시선] 한국 스포츠는 키 큰 순서로 망한다
지난해 8월 열린 수원여고와 선일여고의 한국중고농구 주말리그 경기에선 수원여고가 고의로 3명이 5반칙을 해 1쿼터에 ‘자격상실패’를 당했다. 이유는 이렇다. 수원여고의 선수는 총 5명. 1쿼터 중반에 선수 한명이 부상을 당해 4명이 경기를 치러야 할 상황이 됐다. 패배는 당연한 일. 결국 상대팀에 양해를 구하고 스스로 자격상실패를 택한 것이다. 이어 열린 숭의여고와 분당경영고의 경기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숭의여고가 자격상실패를 기록했다.
문성은 대한농구협회 사무차장은 “중고 농구에서 제법 나오는 일”이라며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적잖은 학교가 6~8명(농구 엔트리는 12명)으로 운영할 정도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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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출산, 타분야에도 전방위 파장
집값 폭등, 인스타로 변곡점 된
2015년서 ‘역발상 해법’ 찾아야
」
저출생의 경고음은 스포츠 분야에서도 울리고 있다. 복싱·역도·레슬링·하키 등 이른바 비인기 종목에 해당하는 얘기만이 아니다. 생활체육으로 인기가 높은 농구·배구계에서도 “한국 스포츠는 키 큰 순서대로 망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체육회의 초·중·고·대학 등록 선수 자료를 보면 2005년 2758명이던 학생 농구선수는 지난해 2237명으로 19% 줄었다. 학생 배구선수도 같은 기간 2684명에서 2255명으로 16% 감소했다. 0.7대로 추락한 한국의 출산율을 고려하면 감소 추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남식 한국중고농구연맹 사무국장은 “농구·배구는 키가 커야 유리한데, 신체조건이 좋은 어린 친구들이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며 “저출산으로 결국 전체 학교체육의 기반이 흔들릴 것이고, 경제와 함께 성장한 한국 스포츠의 위상도 낮아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해당 종목을 즐기는 사람이 줄면 인프라가 쪼그라든다. 선수가 줄어드는 마당에 입문 기회까지 과거보다 축소되니 선수들의 기량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올림픽 진출 단골 구기종목이었던 농구·배구·하키·핸드볼 등이 올해 파리 올림픽 진출이 좌절된 것은 한국 스포츠의 암울한 예고편이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성장률이 낮아지고, 사회복지 비용이 급격히 늘어나는 마당에 무슨 배부른 스포츠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구문제는 경제·복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는 물론 병력·교육·선거·산업·주거·사회 등에 전방위적 파급효과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있지만, 워낙 다양한 변수가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보니 어디서 매듭을 풀어야 할지 막막하다.
최근 인구학계가 주목하는 이른바 ‘2015년의 비밀’을 풀다 보면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2000년대 들어 1.09명~1.30명을 오르락내리락하던 합계 출산율은 2015년을 기점으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내리막을 탔다. 도대체 2015년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인구학계에서 크게 3가지 요인이 2015년 인구 ‘변곡점’을 만들었다고 본다.
우선 경제적 측면에선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이 처음 5억원대로 진입하는 등 아파트값 폭등의 전조가 나타난 때가 2015년이다. 중위소득 가구가 중간가격의 주택을 살 때 대출 상환부담을 나타내는 ‘주택구매 부담지수’는 서울의 경우 2015년 1분기 83.7로 저점을 찍은 뒤, 2022년 214.6까지 치솟았다. 내 집을 장만하거나 넓히는 게 어렵다 보니 청년은 결혼·출산을 미루거나 꺼리게 된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
사회적 측면에선 20대에 대학·일자리를 찾아 서울에 입성한 뒤, 30대에는 지방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약해졌다. 2010년 이후 2만~3만명대를 오가던 20대 서울 순유입이 2015년 2만9615명으로 저점을 찍은 뒤 가파르게 늘었다. 2030 청년층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경쟁하느라 생존 본능이 출산·연애를 누르고 있다(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것이다.
심리적 측면에선 겉으로 보이는 남의 모습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인스타그램·페이스북 사용자가 국내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때가 공교롭게 2015년이다. SNS에서 접하는 화려한 싱글 라이프에 대한 환상은 결혼을 주저하게 하고, 아이를 위해 수백만 원을 쓰는 사치스런 육아는 부모로서 무력감을 키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센터장)
저출산 재앙의 문이 열린 2015년을 역발상으로 접근해보자. ▶청년의 집값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저렴하고 질 좋은 공공임대 주택을 확대하고 ▶지방 일자리를 살리고 인프라를 확대하는 식으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며 ▶결혼·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하는 캠페인을 진행한다면 출산율 반등 희망도 싹틀 수 있지 않을까.
손해용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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